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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이면서 역사 관련 글을 쓰는 - 김형민 조합원

posted Jan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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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장명숙
발행호수 52

김형민1_resize.jpg

 

 

방송인이면서 역사 관련 글을 쓰는 김형민 조합원

 

 

김형민님은 그간 길목인들에게 공감편지를 통해 친숙해진 조합원입니다.

주제는 늘 개인과 사회의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맛깔스런 문장과 

풍성하고도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흥미 있고 재밌게 받아들여집니다.

방송일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글을 쓰는 작업을 본인은 고급취미라 하였지만 이미 여러 권의 책들을 내보였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 <썸데이 서울>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1,2>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전1,2> <한국사를 지켜라1,2>등 다수가 있으며 집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제작된 방송 프로그램도 다시 떠올려집니다.

인터뷰 요청이 하필 가장 바쁘다는 연말이었습니다. 그나마 서면으로라도 선뜻 응해 주었습니다. 

 

Q: 거의 매달 공감편지를 조합원들에게 보내고 계십니다. 그간의 내용들을 반추해 보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사건들, 열악한 사회환경 속에서도 정의를 외쳤던 소시민들, 또한 이념이나 사회제약으로 희생된 약자들을 주로 소개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관심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학부에서 사학 (史學)을 전공했습니다. 점수를 맞춰간 ‘과’는 아니고,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옛날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학문적으로 사학을 연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학문의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고 생각해 직업을 가진 후 취미로 이런 저런 역사 이야기를 해 오고 있습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되면서 유명한 사람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 꼭 알았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보려는 마음을 갖게 됐고, 그렇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여러 권의 책들이 출간되어 전업 작가이신가 했는데 직업은 피디님이십니다. 현재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나요. 이제까지 작업해온 프로그램중에 특히 반응이 많았던 작품을 소개한다면...

 

지금은 기획제작팀장, 즉 관리직을 맡고 있어서 특정 프로그램을 맡고 있지는 않습니다.  과거 현장을 뛸 때에는 <리얼 코리아>와 <긴급출동 SOS 24> <특명 아빠의 도전> 등을 연출했습니다. 역사란 결국 사람들의 일상의 총합이라 제가 만든 프로그램 역시 하나의 작은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에서 ‘현대판 노예’라는 아이템을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50년간 어느 농가의 노예처럼 학대받으며 사는 노인을 구출하는 내용이었지요. 당시 그 노인의 삶을 보면서도 우리 역사의 변화를 절감했습니다.  그때 면사무소 직원은 그런 말을 했지요.  “50년간 노인을 거둬 온 공도 있다.”  그 때문에 직원은 뜻하지 않은 여론의 폭격을 받아야 했지만 그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한때 여유 있는 집에서 지적장애인 등을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일을 시켜도 미덕으로 칭송받는 때가 있었으니까요. 50년이 흐른 지금에야 오갈 데 없는 노인학대로 단죄 받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역사는 항상 변하고 우리는 그 도상에 서 있는 사람들인 셈입니다. 

 

Q: 오직 TV앞에 앉아야만 모든 볼거리를 봤던 과거와는 달리 스마트 폰 안에서 원하는 볼거리를 찾아보는 등의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즉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유료방송도 보게 됩니다. 방송 환경변화에 대해서 또는 앞으로의 방송흐름은 어떨까요.

 

사실 TV 방송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플랫폼은 상상 이상으로 늘었고 사람들은 ‘닥치고 본방 사수한다’는 개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드라마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던 것은 옛말이고, 신문의 tv 프로그램 안내를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 방송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콘텐츠를 만드는가가 중요한, 콘텐츠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내와 함께 유튜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종의 개인 방송국인 셈입니다. 유튜브는 개인 일정이기에 편집을 아내가 하고 있습니다만, 나름 저희 가족도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 번 기회 있으면 들여다봐 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xZtp1oPrlbe-ZTEfrH_riQ  산하의 썸데이tv입니다.  

 

Q: 방송일과 글 쓰는 일을 병행하다보면 두 가지 일의 균형이 궁금해집니다. 두 가지 일의 상호간의 작용이나 괴리감 같은 것이 있을 텐데요.   

 

많이 듣는 질문인데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끄적이는 것을 즐기는 터라, 특별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일이라기보다는 재미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물론 정해진 원고는 일에 가까우니 재밌지만은 않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큰 괴리감(?)은 없습니다. 균형을 맞출 필요도 그다지 못 느끼고요.   

 

Q: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는 대학생활을 하였고 사회에 나오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만큼 본인에게도 1990년대는 특별한 연대이겠습니다. 

 

2014년께 한겨레신문에 <응답하라 1990>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습니다. 그 1회의 일부를 발췌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1990년대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다 싶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때까지 철석같이 탄탄했던 것들이 짚단처럼 스러져 갔다. 크게는 인류의 거대한 실험이었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던 것도, 30년 넘게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군부의 그림자가 걷혔던 것도, 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밀어닥쳐 수천만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위협한 것도 모두 1990년대였다. 어디 거창한 것뿐만이랴.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제작팀의 고민 중 하나는 불과 10여 년 전 당시를 재연하는 데 필요한 소품들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듯 90년대는 “어떻게 이런 게 나왔을까” 탄성이 그치기도 전에 새로운 물건이, 생소한 매체가 연속부절로 등장하며 이전의 것들을 구닥다리로 몰아붙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피시(PC)통신, 전동 타자기, 플로피 디스크, 도트 프린터 등이 그랬고 수십 년 사용하던 버스 토큰이 사라졌고 ‘주산학원’이 사멸돼 가던 때였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꽃다지 노래 ‘전화 카드 한 장’ 중)며 선물로 전해 주기도 했던 전화카드의 효용 역시 휴대폰의 보급과 함께 급격한 사양길을 걸었다. 1990년대를 두고 전쟁 이후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가 가장 급속도로 일어났던 시대였다고 하면 과장이 될까. 1990년대는 마치 파도가 모래성을 허물듯 그 이전의 역사가 쌓아올린 자신만만한 성채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렸고 그 성벽 위에서 안주하던 사람들, 성벽 안에서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들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그 거센 파도는 많은 것을 쓸고 가 버렸고 더 많은 것들을 휘몰고 왔다.“

 

 

김형민2_resize.jpg

 

 

Q: 쓰시는 글 속에는 가부장 사회와 여러 불평등 사회조건에서 희생된 여성들, 권리를 찾으려던 여성들, 민족을 위해 투쟁했던 용감한 여성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딸들이며 어머니인 여성들은 이들에게 빚지거나, 혜택을 누리게 된 바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시대상황에서도 여성문제는 여전히 그전과 같거나 다른 모습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향유했던 남성의 일원으로서 여성의 권리와 존엄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던 측면이 너무 명확하고 광범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페미니즘 운동의 일면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점을 발견하고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극히 일부의 모습이겠으나 과거 학생운동이 보여준 오만과 독선을 다시 보는 느낌도 있지요. 저는 모든 ‘운동’은 곧 휴머니즘, 모든 차이를 넘어선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며 페미니즘도 그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Q: 교과서 밖의 인물들을 발굴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을 찾아 들려주시곤 합니다. 지금의 국사 교과서에 대해 느끼시는 점이 있으시겠습니다.

 

박근혜 정권 때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하여 홍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저 역시 역사학 전공자의 일원으로 역사 관련학과 졸업생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성명서일부를 가져와 봅니다. 

”역사가는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기반하여 과거, 그 시대를 해석하는 이들이다. 특정한 이념이나 신앙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며 권력의 행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이미 역사가 아니다.

 

역사의 본질은 과거 사실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이다. ‘하나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 전달하도록 강요받은 역사가는 학자가 아닌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우리는 2015년을 살아가는 역사학도로서 그리고 역사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역사 서술이 정치권의 손에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 

 

역사의 본질은 과거 사실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입니다.  이 ‘자유로운’ 탐구를 막는 것은 수구꼴통들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도 자신들의 역사 해석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지요. 민족주의적 열정은 좋으나 그 때문에 북한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한다거나 한국 현대사를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투쟁 구도로만 바라본다거나 자신의 주관에 맞춰 역사를 끼워 맞춘다거나 하는 모습이 많이 발견됩니다. ‘팩트’가 아닌 ‘의견’이 주를 이룰 때 역사 공부는 후퇴하게 마련입니다...... 교과서는 그 자유를 보장하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면 가장 좋겠죠.  

 

Q: 김형민님 인성을 형성한 한 축에는 ‘신앙’이라는 기둥도 있을 거 같습니다. 신앙이 비롯되었던 시작점과 그 여정을 듣고 싶습니다. 

 

모태신앙이고 저까지 4대째 기독교인입니다. 조선 말엽 두만강을 건너가셨던 제 증조할아버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셨으니 거의 120년 동안 기독교인 가문을 이룬 셈입니다. 물론 그 세월에 비해 신앙은 그리 돈독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주류 교회의 ‘믿슙니다.’에 동참하지 못했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무당 주문 같은 교리에는 화를 냈으며, 그나마 터 잡은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그저 유령으로 지내는 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우리에게 전한 가르침대로 ‘하늘나라가 땅에서 이뤄지는’ 날을 위해 노력하는 이 가운데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Q: 새해입니다. 조합원들에게 덕담 한 말씀 전해주시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뭣보다 질병으로부터 안전하십시오. 이 역병의 시기가 빨리 지나 마스크를 쓰고 등산을 하고, 대학생들이 학교를 전혀 가지 못하고 졸업을 하는 가슴 아픈 때가 있었음을, 그렇게 다급한 과거가 있었음을 평온하게 돌아보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하시길.  

 
장명숙-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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