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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정형외과 의사 - 고한석

posted Apr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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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석사진2-1-2.jpg

 

 

고한석 조합원은 영월의료원에서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평일에는 영월에 있고 서울에는 주말에 있는 관계로 토,일요일만 인터뷰가 가능하다. 전화로 연락하니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고 약속 당일에 갑자기 몸이 편하지 않았는데도 최선을 다하여 인터뷰를 응해 주어서 토요일 오후 1시간 정도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선입견인지 모르겠으나 의사하면 미소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친절하게 잘 웃는 분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참고했던 책은 ‘의사가 말하는 의사’(부키, 2017년)이다. 고한석 조합원이 쓴 글의 제목은 ‘정형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이며 인터뷰 내용 중 정형외과에 대한 자세한 생각을 읽어볼 수 있다.
 
현재 영월의료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계신데 영월에는 어떤 연고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말씀 해주세요.
영월은 대학시절에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온 경험 밖에 없어요. 덧붙이자면 후배가 영월에서 원장으로 있는데 추천을 해주어 영월에서 일하고 있어요. 영월하면 과거 석탄산업의 중심지역으로 탄광과 광부들이 많았지요. 지금 이렇게 경제가 발전된 상태가 된 것도 그분들의 땀과 노력이 밑바탕이 된 것이라 생각되고 그래서 영월에 관심이 생긴 측면도 있어요. 역사적으로는 단종의 묘가 있고 풍광도 참 좋아요. 평일에는 영월에서 일하며 지내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주말부부로 살아요. 월요일에 환자 수가 많고(오전에 70-80명) 제일 바쁜 날이라 일요일 오후에는 영월로 돌아와야 해요.
 

주말부부가 되면 나이든 남자들에게는 축복이라고 말하던데 어떠세요.
아내가 시민운동(참여연대)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그 덕분에 거의 20년간 저녁을 내손으로 해먹거나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 익숙해져서 영월에서도 혼자 생활하는데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최근에는 의대를 거의 비슷한 이유(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보장됨)로 가게 되는데 그 때는 조금 달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대를 진학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주세요.
나는 역사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나를 잘 아는 사촌형이 내가 하고 싶은 일(봉사활동)을 하려면 역사학을 공부해서는 쉽지 않을 것 같고, 의사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말을 따르게 되었어요.
 

쓰신 글을 보면 정형외과 의사가 되게 된 설명을 ‘우연히’ 라고 설명을 하셨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지 말씀해주세요.
학교 졸업을 하면서 일반내과를 하고 싶었는데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 남을 수 없었어요. 군대를 제대하고도 내과를 지원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어요. 학교에 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백병원에서 정형외과에 자리가 있어서 정형외과 의사가 되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우리 학교 다닐 때는 데모를 하면 학교에 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내과가 인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정형외과가 좋은 점은 개업을 해도 수술을 할 수 있고, 환자도 노인들이 많아서 인기가 있는 편이지요.
 

정형외과 의사는 한가함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운동은 건강에도 아주 중요해요지금도 환자를 보면 운동을 소홀히 하는 환자는 급격히 쇠퇴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뇌를 생각하는 기관으로 인식하는데 뇌는 운동을 위한 기관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발달된 뇌는 기억된 수많은 운동 조합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발생학적으로 보면 운동을 위하여 뇌가 생겨났고 원래 운동이 없으면 생각도 없으며 뇌도 없게 되요. 예를 들면 멍게는 올챙이 때는 운동도 하고 뇌도 있지만 바위에 붙어 운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 뇌가 없어져요진화론적으로 사람이 직립을 하고 손을 사용하면서 많은 것을 하게 되었어요그래서 뇌가 많은 운동을 기억해야 했고 그런 이유로 커다란 뇌가  인류의 문화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뼈는 원상회복이 가능한 유일한 기관이라고 언급하시면서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많이 하는 경향을 비판하는 내용을 책에 쓰셨어요. 보충 설명을 부탁합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대퇴부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데 이 때 뼈를 붙이는 게 쉽고 시간도 적게 걸리고 환자에게 감염 같은 부작용도 적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인공관절 수술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의사가 뼈를 붙이는 기술이 부족하고 또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인센티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인공관절 수술로만 치료가 되는 환자들은  수술을 해야겠지요하지만 관련 학회에서 인공관절 수술이 좋다는 내용으로 발표가 나와서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방향을 이끄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의사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론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페이스북에 '농촌의사와 도시의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셨던데 내용이 공감됩니다.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 환자가 와서 심하게 호소를 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됐어요한번 읽어볼게요. “농촌에 있는 의사는 농민의 부담을 될수록 적게 하도록 검사를 적게 하고 말을 많이 해 환자를 설득한다도시 의사는 말은 적게 하고 검사를 많이 한다의사들의 말은 돈이 안 되고 검사는 돈이 된다농촌에 사는 사람이 자식의 부름으로 도시에 나갔다 오면 왕창 돈 쓰고 와서는 농촌에 사는 의사에게 불평을 한다더구나 하나 마나 한 수술까지 받고 와서는.

 

 

인도주의의사협의회2-1크기조정.jpg

 


2014년부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잘 모르는 조합원들을 위하여 소개도 해주시고 활동 소감도 얘기해 주세요.

이름 그대로 인도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사들이 중심이 되어 1987년에 창립되었어요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다는 설립 취지문이 인의협의 목표를 분명하게 표현해주고 있다고 봐요. 초대 이사장은 홍창의 선생님이 하셨고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 피부로 느끼듯이 갈수록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의료 현실에서 의료 활동의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목표이지요. 현재 공공의료의 비중은 대략 9% 수준이지요.(병상 수 기준지금도 의료 민영화가 대세로 지속되는 환경에서 민영화를 저지하려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얼마 전 구성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활동을 표방하고 있는데 인의협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듣기에는 인의협이 좋은 의사들이 모임으로 보이는데 의사 내부적으로는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닐 것 같은데요.
의사들을 정치사회적으로 보면 보수적인 사람들이 90%는 될 겁니다. 그러니 의사 내부에서는 인의협을 의료사회학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의사들의 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KakaoTalk_resize.jpg

 


기사를 찾아보면 북한에 가서 인공관절 수술을 하신 내용이 있는데 베트남에서도 같은 수술을 하셨다고 쓰였네요.
2006년에 처음으로 평양에 갔는데 기억으로는 당시 상황은 무척 험했어요. 그래서 평양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동행자들은 미국 교포의사  10명과 목사 10명이었는데, 정형외과 의사가 없어서 내가 동행을 하게 되었지요. 그 때는 인공관절 1세트만 가지고 가서 수술을 했어요. 이후 또 가고 싶어서 북한 병원을 돕는 단체인 ‘나눔인터내셔널’에 가입하고, 기부 받은 인공관절을 가지고 가서 2007년 5명, 2008년 7명을 수술했어요. 2009년 10명을 수술하기로 하고 기부를 받아 모든 준비를 했는데, 5.24 조치로 방문이 불가해져서 포기했어요.

3년 동안 북한을 방문해 보니 한국에서 북한 병원에 원조를 많이 해주어 그런지, 갈 때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환자 치료 뿐 아니라 의료기술 전수도 방문 목적이었으므로 환자와 의사를 직접 접촉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또 하나 찾아봤던 기사는 강경대 열사의 사인 진상 규명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당시 검찰은 부검을 해서 사인을 밝히자는 입장이었고 이러한 주장에 검찰 측 법의학자들은 동의를 했지요. 하지만 강경대 열사의 가족이나 우리는 심장 쪽에 야구방망이로 맞아서 생긴 큰 멍이 있었고, MRI 검사로 대동맥 파열이 확인되었으므로 외부 요인에 의한 죽음이라고 주장을 했어요. 결국 검찰은 피해자 측의 의사 의견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통상 부검을 하여 사인을 밝히는데 이번 경우는 사인이 명확하니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 시체에 MRI 검사를 하여 사인을 밝힌 것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얼마 전 있었던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규명하는 과정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봐야겠지요.


우연히 사회의학연구회가 언급된 글을 읽으며 1960, 70년대 의대 분위기에서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현재의 인의협를 만든 바탕이 됐을 거라 생각됩니다.
예방의학의 한 분야로 사회의학이 있는데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의사나 예과에서 사회과학 서적(금서)등 독서회 모임을 하면서, 의대생활을 했던 의사들이 현재 인의협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요산업의학 분야에도 인의협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요. 당시 서울 의대에 재일동포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을 중심으로 간첩단 사건을 엮어서 졸업생 70명이 전부 잡혀간 사건이 발생했어요. 검찰에서는 당시 우리들을 자생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는데재일동포 학생을 한번이라도 언급한 사람은 모두 보안사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았고간첩 불고지 죄로 검찰에 넘겼어요. 그때  실형을 산 선 후배들이 최근 보안사가 민간인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하여 모두 무죄로 재심의 판결이 났지요.

 
한국사회에서 의사 집단의 분위기는 보수적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다른 의사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인의협 이사장이라는 직함도 있으신데.

의사 집단에서 다수의 의사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급적 하고 싶은 얘기를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참고 또 참다가 한번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때는 엄청 세게 합니다. 그러면 작은 모습이라도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되요. 물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모임에서 한 사람이 박근혜를 왜 지지하지 않느냐고 따지길래 어떻게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냐고 큰소리로 얘기한 적도 있어요. 오래 동안 관계를 맺고 지내다보면 어떤 계기로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찾아지는 경험도 많이 했어요. 2년 전에 영월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분에게 인의협을 소개했더니 뜻밖으로 가입도 하고 회비도 내며 활동하는 경우도 봤어요.

 

 

고한석사진1-1_크기조정.jpg

 


길목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된 계기나 그 동안 기억나는 활동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홍영진 이사장의 권유로 조합원이 됐으며, 신영복선생의 담론을 1년 정도 같이 공부한 기억이 있어요. 그 때 많은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어요.

길목조합원으로 다른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바로는 어떤 활동이든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해내는 것을 봤어요. 길목이나 인의협도 크게 보면 같은 목표를 가지고 활동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는 인간 간의 연대를 하면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연대를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면서 연대(하방연대)하는 것이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권력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연대를 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길목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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