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절 남과 북의 증오와 대립의 시절부터 화해와 협력의 시대까지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이로 인하여 나름대로 남북문제에 관한 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모르지도 않는 반(半) 전문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을 보는 시각과 입장,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호불호 등 다양한 차이로 각자는 나름대로의 주관적 느낌을 지니고 있다.
도올은 “나의 주관적 느낌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객관적 명제들 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네 시각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관점들이 남북문제 그 자체만큼이나 복잡하게 엉켜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객관적 명제들을 지닌 전문가이고, 때로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객관적 명제보다는 각자의 주관적 느낌이 우선하곤 한다.
하지만 현재의 남북관계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진짜 전문가의 객관적 설명이 절실해진다. 남북관계의 내용은 차치하고 언론보도를 따라가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사일 발사와 대규모 한미합동훈련을 주고받던 남북이나 “코피를 터뜨린다니까 나도 주먹이 있다”라던 북미간의 냉랭한 관계가 봄볕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한의 특사 상호방문,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 발표 등은 그야말로 그 형식과 내용의 진폭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잠시 내려놓고 전문가의 통찰이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4월 월례강좌 “평창올림픽과 한반도 대전환”은 적시타도 이런 적시타가 없었다.
이날 강연해주신 이승환 회장은(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2018년 한반도의 봄’의 배경으로 남쪽의 특사단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이른바 3.5합의를 꼽고 있다. 3.5합의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대화, 대화 지속 시 핵·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합의의 배경으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효과론과 북한의 전략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태도변화,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들고 있다. 또한 북한의 태도변화 요인으로는 미국의 트럼프 당선과 남한의 문재인정권의 등장을 꼽고 있다.
이 회장은 제재만능론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동맹의 지속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종의 삼각모순(trilemma) 관계가 있으며, 이를 해소하고 유연화 하는 방안을 찾아낼 때 남북과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가 동시에 달성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등 여러 과정을 통하여 9월 유엔에서 남·북·미가 종전선언을 할 것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민간의 교류는 제한적일 것이므로 남북관계에 대한 다층적 접근을 위한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고 남한의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였다.
지난 10년간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따스한 봄날을 맞는 듯하며, 개인적으로 다시금 평양을 방문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다.
어느 선승의 시처럼 “흐르는 물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한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듯”, 무슨 마음 때문에 생겨난 南과 北, 絶對와 相對, 善과 惡 등과 같은 모든 경계가 사라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일이 구름과 물 같아서 쇠나무(鐵樹)에도 꽃이 피어나듯이 얼어붙은 반도 땅 온 누리에도 봄이 가득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