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에서 떠난 철원 평화기행은 DMZ 평화공원, 고석정, 도피안사, 그리고 철원노동당사까지 다녀오는 코스다. 지난번에 참가한 서촌기행과 오키나와 평화기행의 기억이 너무도 좋아 이번에도 무조건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향린교회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 차는 막히지도 않고 잘도 달려 DMZ 평화공원에 도착했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군인들이 신원확인을 한다.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경비를 서는 보초병들의 얼굴을 보면 작년에 제대한 아들이 떠올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 그 부모님은 아들 걱정을 엄청 하고 있겠지?
방문자 센터에 도착하니 안내원들이 3분 나오셨다. 안내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용양보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보니 하얀색 숫자가 크게 쓰여 진 빨간색 입간판 같은 것이 군데군데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여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비행기가 비행할 때 휴전선에서 얼마만큼 떨어진 거리인지를 알려 주는 표지판이라고 했다. 이런... 땅에만 휴전선이 있는 것이 아니었군. 하늘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휴전선이 있구나. 처음 알았다.
용양보 통문을 지나 철책선 근처까지 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기념사진을 남기려고 카메라를 들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선생님, 그곳은 안돼요.” “지시에 따라주세요. 거기도 안 돼요.” “그럼 여기는 됩니까?” “도대체 왜 안 되는 겁니까?”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다. 안내원은 사진 찍는 것을 여러 가지로 제한한다. 구글 지도만 치면 초소위치까지 다 나오는데도 사람들을 자꾸 제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 멀었구나. 우리 땅인데도 풍경 한 장 마음대로 사진 찍지 못하다니.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다시 방문자센터로 향한다. 날이 시원해지면 십자탑 탐방로를 다시 걸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고석정으로 향했다. 임꺽정이 놀았다던 고석정, 찾는 사람이 많아져 예전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골짜기의 경치는 일품이다. 입구에 있는 임꺽정 동상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꼭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 서 있는 안내판이나 상징물을 보며 드는 안타까운 마음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일정은 도피안사와 철원 노동당사. 전부터 한 번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도 인연이 닿지 않아 숙제처럼 남겨 놓았던 곳이기에 엄청 기대가 되었다. 도피안사의 부처님은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실려 있기에 꼭 보고 싶었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대웅전 앞에서 그 안을 기웃거리며 부처님을 만나기보다는 아예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불을 드리러 온 신자처럼 부처님을 한참 쳐다본다. 느낌이 새롭다. 부처님을 정식으로 만난 느낌이다.
일정이 잘 진행되어 보너스로 가게 된 노동당사.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이지만 웅장함에 감동한다. 하지만 안내판에 씌여 있는 적대적 해설에 많이 실망하고 착잡하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노동당사를 한 바퀴 돌다 철원군 농민회에서 세운 조그만 입간판을 발견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이 나무그늘 아래에서 남과 북이 막걸리 한 잔 나누기를 기다려 봅니다. 2009년 식목일에 철원군 농민회”라고 적혀 있다. 좋지 않았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그래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날 서로를 얼싸 안으며 나눌 것이 어디 막걸리뿐이겠냐? 그 날이 좀 더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여행팀이 노동당사에 왔다. 우리처럼 팀을 짜서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코스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그 명칭이 안보관광이란다. 안보가 어떻게 관광이 될 수 있을까? 이름 안에 많은 것이 들어있다.
평화기행. 말 그대로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며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으로 다음 번 평화기행은 북녘 땅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마음에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