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5일이 되면 한 달 동안 만났던 내담자들에 대한 상담일지를 작성해서 간사님께 보낸다. 간사님께 보낼 이번 달 상담일지를 작성하면서, 그동안 만났던 내담자들의 얼굴과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번 달에는 유난히 종결된 내담자들이 많다. 내가 만나는 심심 내담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30회기를 꽉 채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회기를 채우기도 전에 무단결석으로 자동종결 되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내가 10명의 내담자를 만났거나 만나고 있다면 그건 내가 10명의 내담자와 헤어졌거나 헤어져야한다는 걸 의미한다.
심심 내담자들과의 만남은 다른 개인 상담과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나도 내담자들도 끝이 있음을 알고 시작하는 만남이라는 것이다. 만나는 동안에는 어쩌면 가족들이나 절친한 친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되면 우리는 헤어진다. 이해하고 이해받으면서 회기 내에서의 그 순간이 충만할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헤어짐이 더 아쉽고 슬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헤어진 후에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회기가 끝나고 내담자들이 상담실 문을 닫고 나가고 상담실에 혼자 남았을 때, 어떨 때는 외롭기도 하고 어떨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렇게 나는 내담자를 만나고 또 헤어진다.
어느 날 건널목을 건너면서 보이는 앞사람의 뒤태를 보며 내담자A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특정한 단체나 장소를 접할 때는 또 다른 내담자B가 떠오르기도 한다. 잘 살고 있는지, 상담을 통해서 그래도 조금은 편해졌는지,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그냥 궁금한 채로 있을 수밖에 없다. 상실의 경험을 계속 겪어야하는 것이 상담자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기도 하다.
상담일지를 작성하다보니, 이번 달 30회기를 끝낸 내담자K와의 마지막 회기가 떠오른다. 그는 내게 좀 특별하게 여겨졌는데 왜냐하면 그는 회기에서 통찰하거나 새로 알게 된 내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주일 동안 생각을 해보고, 다음 회기에 가지고 와서 계속 이야기를 연결해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된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에게 분명 좋은 변화들이였는데 왜 힘든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항상 기쁘게만 다가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겪어봤기에 K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나는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자신에게 좋은 방향일지라도 오랫동안 몸에 밴 생각이나 행동의 습관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사실은 평온한 평형상태가 깨지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많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는 그동안 자신이 왜 힘들었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많이 안심하는 듯 보였다. 이렇듯 사람의 신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이 되지만 마음은 그렇게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이것은 인생의 과제와도 같다.
K는 상담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K를 보면서 ‘나는 과연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담자 뿐 아니라 내담자와 상담자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이 상담이고 이것이 성숙한 만남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아마 K가 어떻게 지내는지 상담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자신을 통찰해나가고 있는지 당분간은 생각나고 궁금할 것 같다.
간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새로운 내담자가 올 모양이다.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을 던져준 K를 감사히 잘 보내고, 새로운 내담자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