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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신참 상담교사 일기

posted Oct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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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신참 상담교사 일기

 

 

2020년 3월. 늦은 나이에 전문상담교사 임용이 되어 서울의 한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사실 임용고시 합격의 기쁨은 잠깐 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말하라고 하면 바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로 인해 발령을 받은 몇 달 동안 직접적인 대면상담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가 없었고, 그사이 나는 상담교사와 상담사가 어떻게 다르며, 일반 상담의 틀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나의 상담관을 수정 할 수 있었다. 뭐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학교상담에서 가장 불편했던 사실은 비밀보장이었다. 처음 발령 당시 상담실과 복지실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상담교사와 복지사(지역사회전문가)가 같이 있는 형태였고, 복지 관련 업무로 다른 교사들도 자주 오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누가 상담을 받는지도 공개되며, 때로는 학교 관리자로부터 어떤 내용으로 상담하는지 알려달라는 상황까지 있게 되었다. 또한 전화로 상담하는 경우 주변에 사람이 있어 상담에 집중하기 어려우며 상담내용의 비밀보장도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문제로 상담실 독립을 주장했으나, 학교 관리자는 오히려 비밀보장의 중요성에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니냐며 학교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까지 말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8개월 정도를 지내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학교 교육과 조직, 교사들과 관리자들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학급에서 한 학생의 문제를 담임교사만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와 전 학년 담임, 보건, 영양, 방과 후 돌봄, 복지, 그리고 지역사회 유관기관까지 연결이 되어 있어 일반 상담에서 다루는 상담처럼 비밀보장이 다루어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상담의 비밀보장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즉 상담교사는 일종의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늘 말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름 고민하던 차에 의외로 학교 조직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 학생의 현재 담임과 전담임을 만나 이야기 하다보니 그 경계가 명확해지게 되었다. 일반 교사들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교사의 역할은 교사들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상담교사로서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자발적으로 비밀보장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일례로 한 아이가 나에게 여자친구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는 상담을 했었는데, 아이는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기를 꺼렸다. 편부모와 조부모로 이루어진 가정의 아이였다. 부모의 이혼이나 편부모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대신에 “외로우니?”라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상대는 같은 반의 아이이고 SNS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고 있으며, 그 아이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담임교사에게 아이에 관해 묻자 아이가 너무 나서고 때로는 과하게 행동해 힘들었고, 야단을 치게 된다고 했다.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경우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좀 더 과장되게 행동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의 경우 그런 행동이 혼나게 되는 상황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당일 상담 수업 전에 담임교사에게 혼나는 장면을 이미 보았던 터였다. 성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혼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일인가를. 

 

고민 끝에 담임교사에게 이 아이가 편부모 슬하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고 반에 좋아하는 이성 친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하나하나의 마음을 읽어주기보다는 평가의 잣대로 아이들을 보기 쉽다. 아이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말에 담임교사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교실 속 일상에 치여 아이의 가정환경을 알면서도 미쳐 그 행동의 의미가 무언지를 몰랐던 것이다. 

 

사실 나도 수업에 들어가면서 교사의 어려움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내 역할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이들에 대한 부담이 많이 덜어지고 있다. 두려움에 직면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최수인(민자)-프로필.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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