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은밀하게! 위대하게?

posted Oct 03, 2022
Extra Form
글쓴이 최수인
발행호수 6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5465420.jpg

 

여름방학 전 4학년 여학생들이 상담실로 쉬는 시간마다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학급의 여학생들이 모여들어서 10여 명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2-3명 정도가 재미 삼아 타로점을 보러 왔다. 학교 상담실에서 갑자기 무슨 타로냐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의외로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한다. 처음 상담실 문턱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해 보았는데 나름 성공적이다. 애정운으로 시작해 우정, 학업, 가족문제 등등 다양하게 고민을 상담하러 온다. 타로점으로 방문하던 4학년 같은 학급의 여학생들이 쉬는 시간 간간이 오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이 아예 놀러 왔다. 그런데 그 양상이 좀 이상했다. 왜 한 학급의 10명 정도가 되는 여학생들이 무리 지어 상담실에 쉬는 시간마다 오는지 이상했던 것이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던 중 한 여학생인 A가 따로 조용히 상담하고 싶다고 신청이 왔다. 하교 후 만나보니 아이들이 왜 그렇게 무리 지어 다녔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은 따돌려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학급에는 이른바 중심이 되는 여자아이 B가 있었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또 몇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B는 담임교사에게도 칭찬받고 인정받는 아이였다. 교우관계도 좋고 리더십도 있으며 매사 적극적이고 성격도 좋다고 한다. B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같이 움직였던 것이다. A는 약간은 내성적이고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였고, 같은 반인 C가 저학년 때부터 단짝이었다. B를 중심으로 같이 다니기도 했지만 A와 C는 절친이었다. 아이들도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학기 중반쯤이 되자 어느 날부터인가 A는 C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쉬는 시간에 같이 가던 화장실도 자신과 함께 가지 않았고, 점심시간에 자신과 같이 이동하지 않았으며 점심 식사 후 밥을 좀 느리게 먹는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C는 B와 유난히 더 친한 아이들과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A는 헷갈렸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이 없는 방과 후 교실과 학원에서는 C가 예전과 똑같았기 친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A는 C에게 왜 예전과 다르게 차갑게 말하는지, 쉬는 시간에 왜 이제 같이 화장실에 가지 않는지, 점심시간에 왜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는지 물어봤고 섭섭하다고도 했다. 그런데 C는 그냥 다른 아이가 같이 가자고 해서 그랬을 뿐이라며, 오히려 A에게 오히려 자신에게 너무 집착해서 피곤하다고 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버려지는 기분을 느꼈었고, 나는 이런 감정이 너무 힘들어 꽤 우울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무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를 함부로 대하는 느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내가 깔끔하지 않고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시면서 내 잘못이라고 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C가 원하는 것을 무엇일까? 절친이고 꽤 오랫동안 우정을 다져온 A를 그렇게 대하는 C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B와 더 친해지는 것이 그 학급에서 자신의 위치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B가 A보다 더 좋았을까? 여자 아이들의 이러한 은밀한 따돌림은 꽤 많은 아이들이 경험하고, 여자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힘보다는 누군가의 권력에 기대어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A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며 무척 상심이 크겠다고 공감했다. 그리고 C 말고 다른 친구들과 더 절친이 되어 보는 것을 권했다. A는 성격이 온순하고 따뜻해서 아이들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다른 그룹으로 A가 편입이 되자 C의 태도가 다시 달라졌다. 예전처럼 화장실도 가려고 했고, 점심시간에도 기다려 주었다. 둘의 관계는 겉으로는 예전과 같아졌다. 하지만 A는 진실한 우정에 대한 혼란은 여전하다.

 

나의 우정의 문제를 내 탓으로 돌렸던 나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틀렸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담임선생님의 표정과 비난하는 말, 그날 창에서 비췄던 햇빛,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느낌이 생생하다. 나는 상처받았다. 최소한 나에게 상담을 왔던 A에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어 여성들에게 은밀하게 위대해지는 가르침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래본다.

최수인(민자)-프로필.gif


  1. 진상고객, 감정노동자를 다시 말하다!

    감정노동이라 하면 “고객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말하고 그러한 감정노동을 하는...
    Date2022.11.02 Views201
    Read More
  2. 은밀하게! 위대하게?

    여름방학 전 4학년 여학생들이 상담실로 쉬는 시간마다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학급의 여학생들이 모여들어서 10여 명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2-3명 정도가 재미 삼아 타로점을 보러 왔다. 학교 상담실에서 갑자기 무슨 타로냐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의...
    Date2022.10.03 Views168
    Read More
  3. 돌봄으로 의존성을 안아주는 사회를...

    돌봄으로 의존성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사회를 꿈꾸며 30년 동안 가족을 돌보신 분의 굽이굽이 인생사를 들으면서 돌봄이 ‘사랑의 노동’으로서 삶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성장시키는지를 배우며 존경의 마음이 절로 일어납니다. 물론 그 오...
    Date2022.09.03 Views180
    Read More
  4. '아픔'에 긴 시간 귀 기울이기

    올해로 군유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3년차이다. 첫해 여름에 시작했으니 만으로는 2년이 된 셈인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다지 성공적인 프로그램은 아닌 듯하다. 초기부터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처음 군유가족을 위한 개인상담 매뉴얼...
    Date2022.07.05 Views196
    Read More
  5. 내 안에 있는 나의 아이

    심심 기고 3월 이재경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마음이 울렁거렸다. 빈 밥통의 말라비틀어진 밥알을 반짝반짝 귀한 것인 줄 알고 꼭 안고 있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아프다. 말라비틀어진 밥...
    Date2022.05.26 Views250
    Read More
  6. 진실된 안내자

    내가 생일 파티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참사람 부족_호주 원주민)은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케이크와 축하 노래, 생일 선물 등을 설명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케이크 꽂는 양초의 수도 하나 더 늘어난다고 이야기 했다. 그들이 물었다. “...
    Date2022.05.03 Views348
    Read More
  7. 지난밤 어떤 꿈을 꾸셨나요?

    지난밤 어떤 꿈을 꾸셨나요? 지난밤 꿈을 꾸고, 이게 무슨 꿈이지?, 왜 이런 꿈을 꾸었지? 라고 궁금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꿈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어 답답한 적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꿈을 반복...
    Date2022.04.05 Views286
    Read More
  8.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심리부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부검이 시신을 해부하여 사망의 원인을 검사하는 것이라면,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의 가족, 친지 등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고인의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인들을 살펴보는 ...
    Date2022.03.02 Views277
    Read More
  9. 혼자 남겨짐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혼자 남겨짐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지금은 이사했지만 예전 살던 동네에서 다니던 스포츠센터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스포츠센터였는데, 그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그 스포츠 센터도 꽤 오래 왔다갔다 다녔습니다. 이 종목도 등록했다가, ...
    Date2022.01.31 Views302
    Read More
  10. 삶이 변화를 요구할 때

    삶이 변화를 요구할 때 자살 계획을 세우고 친구를 찾아갑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떨어져 죽을 것인지 세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 계획을 바꿀 생각은 없는데 자신이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 자신의 결론이 맞는지 누군가에게 얘기는 해봐야겠다 싶어서 ...
    Date2022.01.03 Views28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