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내담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물어온다.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하다가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해준다는 것인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건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하는 물음을 다시 물어보라는 오랜 가르침(?)을 떠나서 나 역시도 잘 모르겠기에 주로 "글쎄요. 나를 사랑하는 건 어떤 걸까요.."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곤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고 우리가 사랑장(章)이라고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란 오래 참고, 친절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스스로에 대한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물의 님프 리리오페의 아들로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먹지도 자지도 않고 죽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이 신화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은 카렌호나이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간극으로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자아와 이상적이고, 되어야만 하는 자아 사이의 괴리는 여러 신경증적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많이 알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그 양상이 타인에 대해 이기적이고 착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정신분석학에서 자기애적(narcissistic)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외부의 확인을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중심으로 성격이 조직된 사람"을 의미한다. 이기적이고 착취적인 사람이 아니라(외부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외부의 확인을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하는, 혹은 그렇게 해야만 자존감이 유지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외부 대상과 관계를 맺고 타인의 인정이나 승인이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늘 그렇듯 균형이 아닐까 싶다.
자기애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는 부모들이 자녀를 대할 때의 태도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기애적인 욕구와 진정한 공감을 섞어가며 자신의 아이들을 대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 부모 역시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으쓱하기도 하지만 부모를 으쓱하게 해 주든지 아니든지 간에 아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부모에게 충분한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자신의 야망과 소망을 아이가 이루기를 바라면서 아이를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대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정신분석적으로는 부모가 아이를 자기애적 부속물로 다루었다고 이야기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디어에서 보이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감이 어렵고 착취적이고, 늘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으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장된 지각을 가지고 과도한 찬사를 요구하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최근 선거를 통해 자주 보았던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하여튼 그럼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 행복하긴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착취적이라면, 타인을 괴롭히는 과정에서 자신이라도 행복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사람들의 '가장 슬픈 점은 사랑하는 능력이 성장을 멈추는 것'이라고 정신분석학자인 맥윌리엄즈는 말한다.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존재 자체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인내하고, 친절한 태도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엔 유튜브를 열면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에 대한 콘텐츠가 정말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나르시시스트다 아니다 저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다 등등. 그만큼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100년 전에 카렌호나이가 말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의 자기애적 성향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쓰다 보니 글이 여기까지 왔지만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20대 초반에 봤던 Leaving Lasvegas라는 영화가 늘 떠오른다. 내용 중에 알코올중독자인 남자주인공에게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주인공이 술을 담아 다닐 수 있는 자그마한 술병을 선물로 주는 장면이 있다. 알코올중독으로 가족과 직장을 잃고 라스베가스에 와서 생을 마감하려는 남자주인공에게 술병이라니..!!라는 생각과 함께 30년이 지나도록 기억이 나는 것은 자기애적 속성을 띄지 않은 어떤 극단적인 사랑이라는 형태를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OECD 가입국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자살률이 1위라고 한다. 자살에 이르게 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수단으로 혹은 도구로 여기며 살아가도록 부채질하는 사회에서 내가, 우리가 "어떤 존재를 몹시 아끼고, 인내하며, 친절하게 대하"며 살아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