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6월 24일이라는 시간에 사는 사람들

posted Dec 08, 2024
Extra Form
글쓴이 조귀제
발행호수 8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조귀제-아리셀_20240626.jpg

아리셀 공장 앞

 

 

불이 난 지 이틀이 지난 6월 26일 아리셀 공장 앞에서 처음 만났다. 메케한 내음이 목으로 밀고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공장 지붕은 폭발에 뻥 뚫렸고 샌드위치 패널은 녹아내려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23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현장이었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중대산업재해였고 오로지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참사였다.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놀라고 불안한 얼굴들이 공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나의 눈과 신경은 온통 낯선 얼굴로 쏠렸다. 젊은 청년이 관리자인 듯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가족이 안에서..."

"사물함이라도 볼 수 없나요?" 이내 불탄 옆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만난 에스코넥 자회사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150일이 넘어서도 만나고 있다. 23명 중 18명은 이주 노동자이자 비정규직 불법 파견노동자였다. 희생자는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는 카드키가 없었고 화재 등 위기 상황에서 어디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도 없었다.

피붙이가 왜? 한순간에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은 유가족의 간절한 바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귀제-아리셀_화성시청분향소_20240820.jpg

아리셀 화성시청분향소

 

 

"OO야 보고 싶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난 네 손을 잡고 안 보낼 거야."

"떠난 가족 얼굴보다 시신이 먼저 떠올라서 매일매일 울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앞날이 너무 캄캄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추모제가 진행되었고 화성시청 현관 기둥에 메시지가 빼곡히 붙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유가족들이 "고맙습니다"라며 말을 떼기 시작했다. 투쟁의 날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함께 손잡고 걸어주는 연대하는 이에게 "동지"라 불렀다. 어느새 "투쟁"을 외쳤고 검찰청, 법원 앞에서 에스코넥 대표이사 박순관의 구속과 처벌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했다.

생산하는 리튬 배터리 대부분을 삼성과 국방부에 납품하는 에스코넥은 여전히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없고 해결하기 위한 교섭에도 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가족들은 한지 꽃을 만들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매듭으로 하늘색 리본을 만들며 분노를 엮기도 했다.

"한 장 한 장 겹치고 오므리고 펼칠 때마다 어떠셨어요?"

"마음이 아파요."

 

조귀제-아리셀희망버스_20240817.jpg

아리셀 희망버스

 

 

투쟁의 날이 쌓이는 만큼 투쟁의 요구도 분명해지고 단단해진다. 지난 10월부터 아리셀 희생자 가족들은 원청인 에스코넥 앞에서 노숙하며 싸우고 있다.

"콘크리트 건물에 보관해야 할 리튬 배터리를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건물에 35,000개씩이나 쌓아놓고, 일 시켜놓고. 죽여놓고. 뻔뻔하게 책임도 안 지고 있습니다."라는 절규는 이어지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희생자와 가족에 진심 어린 사과와 배·보상이 될 때까지 말이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든 것은 언제나 피해당사자였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켜온 반올림 활동가가 얘기한다. "피해자가 앞서서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앞서지 않는다." 10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세월호 엄마가 얘기한다.

먼저 아파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조귀제-아리셀희망버스_20240817_2.jpg

 

 

투쟁 150일이 넘도록 6월 24일이라는 시간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말한다.

"23명만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유가족 모두를 죽인 것입니다."

아리셀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연대를 호소한다.

"고맙게도 여러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저희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습니다. 저희가 힘을 내야 하는 것은 아직 아리셀 참사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진상 규명되고 책임자 처벌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지금까지 연대해 주신 동지들 끝까지 저희 들 옆에서 힘이 돼주시고 같이 싸워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을 지나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지는 겨울이다. 주머니에 따뜻한 핫팩 하나 챙기고 나선다. 핫팩보다 더 뜨거운 연대의 마음으로 에스코넥 본사 앞 희생자 가족을 만나자.

조귀제-프로필이미지.gif

 

  1. 6월 24일이라는 시간에 사는 사람들

    아리셀 공장 앞 불이 난 지 이틀이 지난 6월 26일 아리셀 공장 앞에서 처음 만났다. 메케한 내음이 목으로 밀고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공장 지붕은 폭발에 뻥 뚫렸고 샌드위치 패널은 녹아내려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23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
    Date2024.12.08 Views5
    Read More
  2. 이태원참사 2주기에 부쳐 - 사회적 애도의 길, 진실만이 치유

    사회적 애도의 길, 진실만이 치유할 수 있다 -이태원참사 2주기에 부쳐 지난 26일(토) 시청광장에서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대회가 있었어요. 1주기에 이어 가수 하림 씨가 노래로 위로를 전하는데 특별히 '별에게'를 불렀어요. 최정주(최유진 희생자 ...
    Date2024.11.05 Views30
    Read More
  3. RAIN: 마음에 비가 오면

    어린 시절, 골목길에 앉아 사람 표정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들어도 말하지 못하던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궁금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굳은 얼굴만 보였다. 이상하게도 사람...
    Date2024.10.06 Views50
    Read More
  4.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기

    4~5년 전부터 허리가 너무 아파 가까운 병원에 갔는데 2,3번 디스크라고 했다. 물리치료도 받고 자세도 잘 잡으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호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낫지 않고 계속 오른쪽 허리와 양쪽 골반 통증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다니던 ...
    Date2024.09.10 Views41
    Read More
  5. 진실이 주는 고통과 치유

    대부분 내담자가 상담 공간을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고통' 때문이다. 주로 첫 회기 때, 내담자의 고통은 여러 형태로 진술되는데 가령, 심리적인 이상 증세, 신체적 증상, 가족 간의 갈등, 사회관계의 어려움 등이다...
    Date2024.07.08 Views121
    Read More
  6. 청개구리

    부정적 치료반응(Negative Therapeutic Reaction)이란 상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회기 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의미있는 접촉을 한 후에 내담자의 상태가 다시 악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프로이트(1923)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해결되고 증상이 개선되...
    Date2024.06.05 Views128
    Read More
  7. 자기애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내담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물어온다.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하다가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해준다는 것인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건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
    Date2024.05.07 Views77
    Read More
  8. 마음의 광야 - 우리 안에 감추어진 힘의 근원

    가끔 고즈넉하게 홀로 자기의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극심하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본다. 상담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내담자들이 홀로 못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는 이름 모를 불안으로 인하여, 또 어떤 경우에는 어린 시절 방치되면서 ...
    Date2024.04.07 Views171
    Read More
  9.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운동장이 기울어져 한쪽이 유리한 지점에서 경기를 치르지만 다른 한쪽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내담자 A는 능력 있는, 회사 동료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원이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혹...
    Date2024.03.12 Views102
    Read More
  10. 사기캐릭터

    © glenncarstenspeters, 출처 Unsplash "선생님, 00 캐릭터 이게 진짜 사기거든요..." 아동내담자 A는 능력이 아주 좋은 게임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사기"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현실에서 아이들끼리 무심코 많이 쓰는 말이다. 근데 도대체 능력이 좋은...
    Date2024.02.06 Views9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