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분석적 상담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정말 내게서 실현된 것 같으니까 말이다. 나는 20대에 정말 미칠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였고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것이 무서웠다. 20대 후반에는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집안에만 있으려고 하였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그래서 정신분석적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나의 온 힘을 다해서 주변에 내 어려움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사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있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회피하거나 어려워하고 있지 않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속담처럼 사실 내가 겪은 20대의 어려움은 나를 호랑이가 둘러싼 것처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이 곤경을 어떻게 살펴서 헤쳐 나가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 망가져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망가지거나 고장 난 것을 알고 느꼈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면 될 텐데, 이때는 다른 사람만 잘 되고 나만 안 된다며 세상과 사람들을 탓하면서 내 주변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었던 것 같다. 이때 친한 사람들의 조언과 충고는 나를 오히려 불쾌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나를 모르고 나를 이해 못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말 다른 사람의 말은 들을 수가 없었고,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였던 내가 상담치료를 통해 현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못 듣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나를 살리기 위한 나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그 목소리를 못 듣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내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그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며, 내가 보기 싫어서 듣지 않았던 것들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내안의 목소리 중 하나는 엄마와 샴쌍둥이처럼 붙어있고 싶다는 목소리였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나를 모래밭에 깊이 처박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런 내 목소리들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는 변화했다. 사실 지금도 내안의 다른 목소리들을 만나고 있고 풀어가는 중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변화했다가 아니라 변하고 있다고 다시 수정해 말해야겠다.
상담이 내게 내안에 다른 목소리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그것을 듣는 방법을 알게 도와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정말 그때의 심정이 느껴져서 참 힘들지만, 내 어려움을 나누어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자신을 살리려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참으로 어렵다. 어렵지만 자신 안의 다른 목소리를 만날 용기를 낸다면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