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상담자의 태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posted Nov 28, 2018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플로리다프로젝트_합성.jpg

 

상담자의 태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얼마 전에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년, 감독 션 베이커)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주인공은 6~7살 정도 되는 '무니'라는 소녀인데, 엄마랑 디즈니랜드 근처의 모텔을 임시거처로 삼아 살고 있습니다. 영화는 모텔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무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줍니다. 영화에 대한 소개나 줄거리는 인터넷에도 많이 올라와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안 보신 분들께는 권해드리고 싶네요. 연령이나 성별, 취향에 관계없이 어느 누가 보아도 좋을, 잘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인 장면 없이도, ‘무니’의 가슴 아픈 처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영화에서 ‘무니’는 (맨 마지막 장면만 빼고는) 슬프거나 기죽은 기색을 보이는 일도 없고, 친구들이며 엄마랑 조잘조잘 떠들고 장난치고 먹고 뛰어다닙니다. 오히려 이악스러운 악동처럼 느껴져서 처음에는 얄미울 정도죠.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무니’가 실은 얼마나 돌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지, 바라보는 마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이후에 어느 평론가가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가 왜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태도와 상담자로서의 태도가 연결이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어요.
 

- 손쉬운 분노에 호소하지 않는 영화
때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기 힘들 정도의 사연들도 나옵니다. 어떻게 그렇게 착취적이고 나쁜 아버지가 있을 수 있는지, 무슨 엄마는 그렇게도 무능하고 냉담하기까지 한지, 듣고 있으면 어느 때는 제가 더 화가 납니다.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하지만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내담자가 겪었을 고통이나 외로움에는 공감하면서도, 내담자를 그런 처지로 내몬 (것처럼 들리는) 부모님을 비난하는 건 조심해야 됩니다. 순간적인 기분에 휩싸여 상담자가 내담자와 함께 신나게 부모님 흉이라도 보게 된다면, 내담자는 돌아서서 수치감을 느끼고, 상담자와 공모하여 부모를 욕보였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들어서 비난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내담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 빈곤을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 정직한 영화
세상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각기 얼마나 다르게 사는지... 내담자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사연들을 상담실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내담자들의 사연에 때로 상담자가 압도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야 당연히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말하자면 마음속으로 입을 쩍 벌린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는 상황이 되는 거죠. 이럴 때 내담자의 사연은 어쩌면 잠시 구경거리처럼 전시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는 상담자가 나빠서도 아니고 의도하는 바도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상담자도 압도되고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빨리 알아차리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런 상황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책에서 많이 읽었던 비온의 ‘담아주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순간입니다. 내담자를 담아줄 수 있는 상담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럴 때 드러나는 거겠죠. 이런 능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구요? 글쎄요....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 세상을 구하는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영화
아, 얼마나 많은 내담자들이 상담자에게 와서 해법을 구하는지요. 그리고 그보다 얼마나 자주 상담자는 그런 해법을 제시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거나, 혹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자기도 모르게) 품는지요. 상담자로서 내가 얼마나 유능하고 좋은 사람인지 내담자를 통해 확인받고 싶은 욕망은, 끊임없이 점검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슈퍼바이저로부터 가끔 듣는 말들이 있어요. “.... 그런데, 상담자가 그걸 아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 내담자가 그걸 깨닫고 알아야 되는 거잖아요.”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내담자를 어린아이처럼 가르치신 건가요.”

에고, 이런 말을 듣는 날은 잠시 마음이 주저앉습니다. ‘내가 또 그랬구나’ 싶으면서 부끄럽고, 마음이 복잡합니다.

상담자로 훈련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많은 지식을 쌓고 숙련된 테크닉을 습득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떠한 태도나 자세를 지니도록 애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장은정-프로필이미지.gif

 


  1.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지난 4월 초에 77세인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뇌경색 치료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뇌경색이 발병한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최대한 치료...
    Date2019.06.27 Views570
    Read More
  2. ‘힘드니?’ 라고 물어봐주기

    ‘힘드니?’ 라고 물어봐주기 저는 원칙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좋은 말로 원칙적이지만 막히고 용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한 때는 동료의 얼굴보다는 출근 시각을 먼저 확인하고 ‘또 늦었군!’하는 표정으로 ...
    Date2019.05.28 Views348
    Read More
  3. 새 것은 아니지만 작은 위로는 됩니다

    새 것은 아니지만 작은 위로는 됩니다 저는 상담 대학원에서 자아초월상담을 공부했습니다. 가끔 ‘자아초월상담이 뭐예요?’ 묻는 분도 있고 ‘자아초월상담은 왠지 어려울 거 같아요’ 하시는 분들도 가끔 만납니다. 저 자신도 자아초...
    Date2019.04.28 Views433
    Read More
  4.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심심엔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최근에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많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이지요. 일제강점기, 일본군위안부, 한국전...
    Date2019.04.01 Views354
    Read More
  5. 내가 생각하는 내가 과연 ‘나’일까?

    내가 생각하는 내가 과연 ‘나’일까? 내가 생각하는 내가 과연 ‘나’일까?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만나거나, 내가 내담자가 되어 카우치에 누울 때 간혹 떠오르는 질문이다. 이솝우화 하나. 숲 속에 사는 새들이 가장 아름다운 새를 자기...
    Date2019.01.30 Views451
    Read More
  6. 상담자의 태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상담자의 태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얼마 전에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년, 감독 션 베이커)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주인공은 6~7살 정도 되는 '무니'라는 소녀인데, 엄마랑 디즈니랜드 근처의 모텔을 임시거처로 삼아 살고 있습니다. 영화는...
    Date2018.11.28 Views633
    Read More
  7. 내 안의 다른 목소리와 만나기

    내가 정신분석적 상담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정말 내게서 실현된 것 같으니까 말이다. 나는 20대에 정말 미칠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였고 사회에 나가 일하는 ...
    Date2018.07.25 Views407
    Read More
  8. 숨어있는 나를 찾아서 – 자아의 민주화 훈련

    정말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내 무거운 자아는 많은 동시대인이 그렇듯 시대적 아픔이 큰 몫을 차지한다. 대학생이 되면 날개가 돋아 한껏 자유로울 줄 기대하며 제복과 규율의 통제를 견딘 한 고등학생, 그가 진입한 대학이란 아이러니하게도 군사독재에 맞...
    Date2018.06.26 Views354
    Read More
  9.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여정, 상담 이야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노래한 시인은 우리네 삶에 대한 짧고도 강렬한 통찰을 어떻게 알았을까. 꽃들에게 별들에게 물어봤을까?^^ 아마도 시인은 삶이라는 대지의 생살을 찢어 싹을 틔우고 ...
    Date2018.05.25 Views301
    Read More
  10. 나는 괜찮은가요?

    저는 노조활동과 치유활동을 같이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오랜 노조 활동에서 마주한 막막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에 저 역시 힘들었어요. 동아엔지니어링 전 위원장인 신길수 동지가 IMF 직후 회사의 퇴출에 맞서 조합원들의 생존권과 고용안정을 요구하...
    Date2018.04.25 Views24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