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심심공부의 별미

posted Aug 28, 2019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음그림--사람과-나무_resize.jpg

( 그림 : 김애자)

 

심심공부의 별미 

 

 

요즘 내가 늙었다. 전에 없이 생긴 버릇 - 한산한 전철을 타면 재빠르게 사람들을 스캔하곤 보다 어린 사람 곁을 나의 선택지로 한다. 푸릇한 젊음이 주는 긴장되지 않는 안전감, 덜 형식적인 자유로움, 최신의 세련미, 덧붙여 옆 사람에 더 무관심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나를 차별자로 비난 말라. 나 또한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무언의 회피를 받을 중년임을 알고 있으며, 누구나 잃어가는 것에 대한 자연스런 그리움 일터니. 

 

요즘 내가 더 늙었다. 지나가는 아가들은 내 시선의 지남철이 되어, 또 하나의 할머니로 자처하며 아무 존재도 아닌 나는 천연덕스레 여린 생명에게 온갖 축복을 퍼붓는다. 윽, 소싯적 남의 아기들에게 왠 소란을 저리 피우나 얼굴 찌푸렸던 그 상황을 내가 연출하고 있다니!

 

행동뿐이랴, 내 늙음을 의식케 하는 모습이? 미래 - 그 미지의 불안과 기대를 머금은 세계가 존재감을 잃어간다. 내일? 주어진다면 그리 특별할 것 없이 가벼운 감사를 보낸다. 과거? 무지막지한 현재 앞에 존재감 전혀 없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내 어린 시절 하면 빈 집 하나 덩그머니 그려 넣을 추억의 집. 최근 새로 들어선 은평성모병원 주변으로 흔적도 없는 물푸레골의 그 집을 그대로 볼 수 있다면 나의 빛 바랜 추억을 얼마나 연결해줄까? 

 

산 아래 우리 집. 바로 산으로 연결되는 오르막이 있다. 오빠랑 싸워 둘이 함께 쫓겨나면 난 싸움 뒤끝으로 화가 넘실대지만, 우리는 함께 산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각자 회초리를 가지고 돌아가야 했기에, 상대가 더 근사한 (혹은 더 매서운) 나뭇가지를 먼저 찾게 놔들 수 없었던 경쟁심. 사실은 서로의 수준을 맞춰 언젠가 고스란히 그것을 통해 되받을 고통의 크기를 손해보지 않겠다는 번득이는 계산으로 금새 말을 틀 수 밖에 없었던 화합의 뒷산. 큰 비에 한번 축대가 무너져 부엌 한 켠이 무너진 수재를 제외하곤 꽤 튼튼하고 낭만적이었던 빨간 벽돌집.  봄, 여름이면 온 마당 가득 향기를 뿜어내던 커다란 라일락 꽃나무하며, 담장을 풍성히 감쌌던 황홀한 미색과 붉은 장미들의 넝쿨, 해당화, 봉선화, 채송화 등등으로 새들이 깃들던 꽃밭. 꼬마가 이를 악물고 아버지와 대등하게 배드민턴을 치던 마당. 더운 여름 엄마의 걸레질 따라 앞뒤로 구르며 냉기를 즐겼던 마루. 거기서 늘 쪼개지 않고 아껴 파먹는 수박이 끝이 보이면 그 수박 통을 그릇 삼아 고소한 미숫가루와 설탕, 얼음을 넣고 수박의 흰 속살이 드러나도록 박박 긁고 또 긁어 가능한 많은 양의 화채를 만들어 호사라 생각하며 즐겼던 여름 나기. 그리고. . . 나의 장소 - 대문 옆 장독대. 학교간 언니 오빠, 외출한 엄마가 오실 때까지 늘 홀로 하염없이 기다리던 곳. 동네를 내려보며, 집 바로 옆 굿을 하던 빈 공터까지 포함하면, 난 그 당시 알라딘에 나오는 쟈스민 공주의 궁궐 못지 않은 규모를 혼자 짊어진 듯하다. 단지 차이라면 공주는 궁궐 밖을 탐험할 수 있었지만, 난 곁에 라자도 없이 닫아건 대문을 결코 여는 일 없이 지켜야만 하는 어린 파수꾼. 

 

3남매의 막내로 언니, 오빠를 둔 덕에 빨리 보고 따라 할 수 있었고, 형제들을 이겨먹으려는 악발이 성질까지 성숙함으로 돋보여, 엄마는 자랑스레 그에겐 유치원교육을 생략한 탓에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우는’ 유치원 대신 홀로 세상을 등지며 짊어지는 기이한 인생을 겪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아침, 참기름냄새 폴폴. 소풍날도 아닌데 특식 김밥이 만들어지고, 분위기는 북적북적. 뭔가 기대가 가득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설렘도 함께 하지 못하는 외톨이다. 어딘가를 가는데 국민학생만 가능하다는 엄마의 설명에 그 미취학 아동은 말 못할 갈망을 의연히 삼키며  맛난 김밥으로 위로는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시 후 함께 가는 일행이 모두 우리 집에 모였을 때, 나와 동갑인 그들의 동생이 끼어있다. 엄마의 거짓말은 너무 자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난 국민학생이 아닌 쟤는 왜 가느냐고 사실관계를 따지지도 않으며, 울며불며 나도 가고 싶다는 욕망은 더더욱 발설하지 않는다. 엄마는 감히 거스르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절대자. 훗날, 그 소풍장소는 당시 새로 선보인 남산의 어린이회관. 아이 셋을 감당하기 너무 벅찼던 엄마에게 막내는 참 수월한 희생양이었다.  

 

아이는 부모의 절대적인 존재감–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쥔-으로 엄마의 뻔한 거짓말도 절대 그럴리 없다는 현실부정으로 자기보호막을 친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믿음을 조작하는 내적구조를 그때의 나를 통해 어림잡아 본다. 

 

인생의 아이러니 – 새로 배우고 깨치고 나니, 이미 내 아이들에게 추억의 집은 오간데 없이 외로움이 꼭 닮은 과거를 만들고 난 뒤다. 그 뉘우침에선가 엉뚱한 남의 아이를 붙잡고, 너는 행복하게 많이 깔깔거리며 살라 염원하는가보다. 오랜 나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재미. 문외한의 심심공부가 별미다. 함께 공부하실 분?

 

 

심심스터디.jpg

 

김애자-프로필이미지.gif

 


  1. 아기가 만나는 새로운 세상

    아기가 만나는 새로운 세상 지난 늦가을, 둘째를 본 조카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4살 첫째가 동생이 태어난 난 후 이상한 행동을 한다며 걱정과 불안을 털어놓았다. 큰 아이 출산했을 때 한두 가지 조언을 했는데 듣지 않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터라...
    Date2020.03.29 Views341
    Read More
  2.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 혹은 상담자?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 혹은 상담자?”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소아과 의사, 정신분석가였던 위니캇(Donald Winnicott, 1896-1971)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위니캇은 사회적 의제와 일반 대중에도 관심이 많아서, 1948년 영국...
    Date2020.03.01 Views373
    Read More
  3. 사회정의상담과 심심(心心)

    사회정의상담과 심심(心心) 사회적협동조합'길목'의 심리치유프로그램'심심(心心)'은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네트워크인 통통톡에 참여단체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2020 노동자 건강권 포럼'(3월 13~14일)에서 통통톡이 사회정...
    Date2020.02.02 Views445
    Read More
  4. 문제는 우리다

    문제는 우리다 연극심리상담과 병행하여 노동조합에서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청년조합원들의 인식이 기성세대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들은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에게 쫄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며, 이전에는 당연시 해왔...
    Date2019.12.29 Views258
    Read More
  5.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 언제부터인가 이 업계에서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 대세이다. 존 카밧진이라는 의사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이라는 것이 미국에 소개된 지는 근 40년이 지난 것 같지만 한국...
    Date2019.11.30 Views317
    Read More
  6. 10월 월례강좌 : 상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우울 – 이은경

    10월 월례강좌 : 상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우울 –이은경 상실의 고통, 절망, 우울 ... 특별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일까요? 그 무게와 색깔, 무늬를 달리하지만 상실, 고통, 절망, 우울 ... 누구의 마음에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Date2019.10.31 Views292
    Read More
  7. 흔들리며 피는 꽃

    (사진 : 편집자 스토리북작업 자료) 아주 귀한 글을 받았습니다. 심심 개인상담을 받으신 내담자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조용히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큰 울림이 전해집니다.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힘을 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
    Date2019.10.31 Views283
    Read More
  8. 매일 심심心心운동 해볼까요

    매일 심심心心운동 해볼까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습관과 버릇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몸을 관찰해 보세요. 목이 굽은 이도 있고, 팔자걸음을 걷는 이도 있고, 어깨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도 있고, 어깨가 뻣뻣해 두 팔을 올릴 수 없는 이도 있고... ...
    Date2019.09.28 Views324
    Read More
  9. 심심공부의 별미

    ( 그림 : 김애자) 심심공부의 별미 요즘 내가 늙었다. 전에 없이 생긴 버릇 - 한산한 전철을 타면 재빠르게 사람들을 스캔하곤 보다 어린 사람 곁을 나의 선택지로 한다. 푸릇한 젊음이 주는 긴장되지 않는 안전감, 덜 형식적인 자유로움, 최신의 세련미, 덧...
    Date2019.08.28 Views285
    Read More
  10. 심심 세미나,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심심 세미나,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나답게 살고 싶다”라는 질문과 욕구는 최근 5-6년간 나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참으로 다양...
    Date2019.07.28 Views31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