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
언제부터인가 이 업계에서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 대세이다. 존 카밧진이라는 의사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이라는 것이 미국에 소개된 지는 근 40년이 지난 것 같지만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으니 20여년정도 되는 것 같다. 사실 존 카밧진의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은 1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읽기도 여러 번 읽고 CD 역시 여러 번 들었지만 깊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저 아는 선생님이 추천해주었었고 ACT(Acceptance Commitment Therapy)관련한 책을 번역해보자해서 번역을 하면서 그저 재미있는 이론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마음챙김(mindfulness)는 매우 유명해져 있었고 많은 심리학자들이 마음챙김에 기반 한 치료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여차저차해서 파리에 2년간 가게 되었고, 가자마자 파리 지하철역에서 “Sitting Still like a frog"이라는 어린이를 위한 마음챙김 책 광고를 돌아오기 몇 개월 전까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10년간 구도를 했다는 젊은 처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교회에서 알게 된 그녀는 10년간의 구도 끝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불안 등으로 인해 힘들어했고 오지랖이던 나는 그녀를 초대해 밥을 먹다가 친구가 되었다. 그 젊은 처자는 그간 자기가 구도를 해오면서 읽었던 많은 책들, 생각들, 경험들을 나에게 폭포수처럼 쏟아놓게 되었는데 나는 그녀가 경험했던 많은 이야기들과 책들을 통해 내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mindfulness라는 것에 대해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챙김이라는 것을 어떤 각도에서 접근했을 때 가장 이해하기 쉬운가는 개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구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가 가장 이해가 잘되었던 것이다. 사실 근래에는 마음챙김 그 자체보다는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을 정도로 유발 하라리, 빌게이츠, 스티븐 잡스 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인구들이 명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내가 알게 된 그녀는 그러한 힙한 문화에서도 몇 발자국은 더 나간듯한 모습이었다.
마음챙김의 핵심은 늘 어디서나 그리 쓰여 있듯이 here and now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너무 식상하고 뻔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늘상 알고 적용하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매우 상반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사실 프로이트의 이론은 there and that time에 가깝다. 그때 그 시간 그 일로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 지금을 강조하는 마음챙김과는 접근 방식이 사뭇 다르다. 내 생각에 프로이트가 190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물질문명이 번성하던, 물질이 모든 것의 토대가 되어온, 유물론에 기초한 시대의 심리치료 이론이었다면 이제 마음챙김, 또는 자비(compassion)에 기반 한 심리치료는 의식이 물질보다 더 선행한다는 유식학에 기초한 다른 방향의 심리치료 같아 보인다. 물론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오히려 마음챙김 치료의 토대가 형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챙김은 불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서양에서 수입해온 듯하지만 실제로는 동양의 수행과도 유사하다. 실제 존 카밧진이라는 의사는 한국에서 건너간 숭상스님의 제자였다고 하고, 오랫동안 명상을 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적용 가능한, 임상적으로도 우울이나 불안 이외에도 많은 심리적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듯이 보인다.
여하튼 나는 파리에서 그 젊은 구도자 덕에 평소 같으면 읽지 않았을 법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모든 부분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동의가 되기도 했다. 그 여러 책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수용 가능한 책이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었다.(그녀가 추천해준 책은 사실 마법사들이 읽을법한 책도 많았기 때문에) 사실 이 책은 이미 한국에서 매우 유행했던 책이었지만 나는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읽다보니 결국은 유식학의 흐름에서 가장 일반인이 읽기 쉽게 풀이해 놓은 책 같아서 매우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두 달 전쯤 한국에 돌아와서 둘째아이가 학교에서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면서 이 책을 읽다가 어느 부분을 펼치더니 이게 말이 되냐고 물었다. 내용인즉슨 주인공 남자에게 웨이터가 물을 쏟아서 화를 내는 장면이었는데, 이 주인공의 친구이자 스승을 자처하는 철학자는 이 주인공이 웨이터가 물을 쏟아서 화를 낸 것이 아니고 화를 내고 싶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라고..ㅎㅎㅎ 물을 쏟아서 옷을 버리게 된 것이 문제였다면 화를 내지 않아도 해결책은 무지 많다는 것.
이 책을 읽다보니 대학교 1학년 심리학 개론시간에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 생각났다. 슬퍼서 우는 것인가? 혹은 울어서 슬픈 것인가? 나뿐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단 한명 그 부분을 이해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무척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하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친구도 지금 돌이켜보면 좀 이상하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보통은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친구의 아버지는 처음엔 사소한 일로 화를 내기 시작해서 점점 자신이 화를 내는 행동에 의해 정서가 더욱 고양되어 걷잡을 수 없는 화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며.. 상황설명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제서야 모두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여전히 90대 10 정도로 정서적 반응은 외부의 상황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같으면 양쪽 모두, 혹은 후자에 더 가까울 수도.. 라고 대답을 하겠지만 20대 초반에는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모두 슬퍼서 우는 것이라고 강변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돌아와 보면 마음챙김에서는 지금 이 시간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므로 무의식이 넘볼 틈이 없다. 물론 이 작업이 쉽지 않은 까닭에 생각이 과거나 미래를 왔다 갔다 하지 않은 상태로 몇 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다양한 기법을 통해서 들고나는 생각들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는 늘 이 과정에서 쉬이 잠이 들곤 하지만)
그 이후로 한국에 와서는 우연히 그리스인 조르바.. 그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읽었다. 애들 말로 헐~ 대박~과 같은 용어는 이런 때 쓰는 말 같았다. 이 조르바야말로 마음챙김의 대가가 아닌가! 오로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그런데 몇 주 전에 같이 마음챙김을 공부했던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만나고 싶다고.. 일 년 반전에 헤어졌던 남친 때문에 상담을 받고 있다면서.. 위로를 기대했던 그 선생님에게 그 마음챙김은 논문 쓸 때만 쓰지 말고 삶에서 적용해보시라고,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용기를 내시라고..
조금 전에 교회를 떠나는 조은화 목사님의 설교를 잠시 들었다. 설교말미에 하시는 말씀이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하는 여러 학자들도 보았으나 과거나 미래와의 단절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다. 파리의 그 처자가 늘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사람들 많은데서 미친 듯이 춤추면 되게 자유롭다고. 파리 세느강의 한 노상카페에서도 그리 춤을 추자고 여러 번 권유했었는데 한번을 못해봤다. 그리고는 이제야 왈츠를 배우러 다니는 내가 가끔은 찌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