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막막한 봄 골목
털썩, 조간신문 기척에 새벽잠을 이불 속에 남기고 대문을 나선다. 싸리비가 골목길 구석구석 새벽 어스름을 쓸어낸다. 속 빈 골목은 밥내, 국내, 도마 소리, 밥그릇 국그릇 달그락 소리로 금세 고봉밥처럼 그들먹하다. 구두 발소리가 아침밥 설친 어른들을 볶아치고, 깔깔거리는 아이들 아우성이 큰길로 빠져나가면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은 더러는 대문 앞에 자리 잡고 몇몇은 살짝 너른 꺾인 골목길 모노륨 장판 깐 널평상에 모여 앉는다. 대문 밖 내어놓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장기판에 말을 늘어놓는다. 바둑알 몇 개가 탈영한 졸을 대신한다.
새벽 쓸쓸함으로 움츠렸던 비둘기들도 참새들도, 내기 장기 훈수 두던 할아버지도 아침 봄볕에 꾸벅꾸벅 선잠으로 설친 새벽잠을 갈음한다. 멀찍이 라디오 노래가 들릴 듯 말 듯 하고 달걀, 두부, 고등어, 사과 트럭 행상 확성기 맴도는 녹음테이프 목소리가 번갈아 골목을 휘젓고 지나간다. 식은 찌개 데우는 냄새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엄마 찾는 고함도 장기짝 내리치는 장군멍군 소리도 없어 골목길은 잠깐 잠잠해진다.
노곤한 한낮 햇볕에 녹진녹진한 장판 냄새가 골목 가득히 풍긴다. 나른한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책가방 던져놓은 아이들이 고무공 쫓아 석필로 그은 줄을 따라 골목길 요쪽으로 조쪽으로 뛰어다닌다. 어른들의 오전은 영겁 같았지만 아이들의 오후는 삽시에 지나간다. 저녁놀에 김 굽는 냄새로 골목이 한껏 들어찬다.
당연하고 떠들썩하고 구수한 내랑 살냄새 그득한 골목길 동네 풍경을 괴괴한 올봄에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