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예사롭지 않다.
노란 셔츠, 희끗희끗한 단발머리, 주름진 얼굴,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다가 문득 카메라를 바라보는 이 여자.
살짝 젖은 듯, 그러나 강렬한 눈빛을 가진.
이 여자, 예사롭지 않다.
무대미술가이자 극단 <자유> 대표 이병복. 애석하게도 이병복은 지난 2017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사진작가 박영숙의 사진이 그녀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2월 17일까지 열리는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는 사진작가 박영숙이 80~90대 여성을 인터뷰하며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준다. 무대미술가이자 극단 <자유> 대표 이병복, 판소리 명창 ‘최승희’,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 서양화가이자 패션디자이너 ‘김비함’, 기업인의 아내 ‘박경애’, 안동할매청국장 사장 ‘이상주’, 서호미술관 대표 ‘이은주’.
나이 듦이 결코 내세울 것이 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들 모두는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여성으로, 아내와 엄마로, 며느리자 딸로서 살아온 그들의 시간은 노인의 삶이 아닌 한 여성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위해 뛰었을 것이고, 차별 있는 세상에 맞섰으며, 때로는 참아냈을 것이며, 때로는 살아냈을 것이다.
그녀들의 사진에서는 나이든 사람의 넋두리 또한 찾을 수 없다. ‘결혼과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을 포기해야만 됐다’는 식의 말하기 방식도 수정된다. 탄식과 후회보다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녀들 앞에선 노인이라는 단어 역시 무색해진다. 빨간 재킷과 빨간 매니큐어를 젊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닌 삶의 일부로 녹여낸 이들, 나이가 들었다고 자신이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여성’을 지레 두고 갈 필요는 없다. 그들의 삶을 통해 나이 듦이 결코 정해진 종착점을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닌 계속 진행되는 삶의 과정임을 배우게 된다.
사진작가 박영숙(출처 여성신문)
박영숙의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작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을 찍고, 영상을 기록하며, 때로는 추임새를 넣는 참여자로 변해 삶의 공간을 파고들며, 가장 빛나는 순간을 끌어냈다.
그 순간을 통해 우리는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하여, 나이 듦에 대하여, 고정관념에 대하여, 자존감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그 끝에 서 있는 작가와 만나게 된다.
박영숙, 그녀 역시 주인공이다.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았고,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였고,
최선의 삶을 살았고, 살고 있고,
또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사진작가 박영숙의 이야기이며,
또 그들을 닮고 싶은 여성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