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유진상가
개미나 벌과 다를 바 없이 떼 지어 사는 사람도 다른 무리를 약탈하는 본성을 가진 듯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쳐들어오는 무리가 없나 경계도 하지만 까마득한 먼 옛날의 주거지는 하나같이 높은 담을 두르고 있다. 하지만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섞여 살면서 어떤 어린아이가 중국의 만리장성은 사람들이 놀러 오라고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듯이 물리적인 담의 의미는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군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경계이듯이 보이지 않는 담은 아직도 바깥 침략자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위성이나 시시티브이나 세콤과 같은 첨단 장비는 지금의 담이 되었다. 서로 쳐들어가려는 무리가 대치하는 상태인 우리나라에도 수 없는 담이 있다. 담은 쌓되 돈 쓰러 오는 외부인은 환영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 폐쇄성을 숨겨왔다. 홍제동 유진상가는 세워질 때는 서울 시내로 출퇴근하는 엘리트들이 사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였지만 그 화려함에는 통일로를 넘어 쳐들어오는 땅크를 막아서는 마지막 담장이었다. 초여름 새벽 몰려오는 땅크에 속수무책으로 땅을 내어주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할 때 높고 두껍고 튼튼한 담장을 두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으리라.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이 없고 무기를 잔뜩 실은 비행기가 하루 스물네 시간 담을 치고 있는 지금 유진상가는 그저 도심 속 답답하고 낡은 건물이 되었을 뿐이다. 그늘진 거리를 만드는 높은 담은 사람들이 돈 쓰려 모이지도 못하게 하는 흉물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유진상가 같은 눈에 띄지 않는 담의 흔적이 많이들 남아 있다. 손길이 소홀해지며 삭고 낡고 먼지 나는 폐허와 같이 되었지만 멀지 않은 우리 조상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듯하다. 조만간 헐리고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유진 상가처럼 담은 헐리겠지만 담이 있었다는 기억은 남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것이 높은 담이 필요했다는 기억일지 그런 건 필요 없었다는 기억일지, 판단은 보고 듣는 사람에게 맡기면서.
알림 : <강재훈 포토 아카데미> 20주년 기념 전시 ‘분단 70년의 표상'
- 기간 : 12/4(수) ~ 12/10(화)
- 장소 : 경인미술관(인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