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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이 읽은 책 : 종교 없는 삶(Living the Secular Life)

posted Jun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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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이 읽은 책 : 종교 없는 삶(Living the Secular Life) | 필 주커먼 | 판미동

코로나 시대 종교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지금 없이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다 

 

 

“이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아이의 삐뚤빼뚤 손글씨가 집 거실 식탁 위에 놓여있다. 작년에 모 신문 기고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가족과 식탁을 마주할 때 식사 기도를 대신하기 위한 문장이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두 아들과 함께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부모는 비굴모드로 아침부터 갖은 공을 들여야 하고 그나마 금쪽같은 식사시간마저 아이들은 머리 숙여 핸드폰을 향한 기도에 열중한다. 그래, 애초부터 종교적 교육적 목적이라는 불순한 의도로 저 문장을 식탁 위에 놓았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였던 초심으로 돌아가 주변을 돌아보고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 그렇게 자신을 위안하며 식탁 위 심드렁히 놓여있는 “종교 없는 삶(Living the Secular Life)”을 집어 들었다. 

아이를 종교 없이 키워도 될지 삶에서 고난이나 죽음에 맞닥뜨릴 때 종교 없이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은 나에게 없다. 아마도 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위기는 종교 없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가지는 믿음의 위기라기보다는 더는 성장을 원하지 않게 되는 것, 아무런 자극도 질문도 없는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내 정체성을 종교 없이 설명할 수 없음은 왜일까. 또 책을 읽는 내내 학창시절 잘 통하는 친구라도 만난 듯 수다를 떠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음은 왜일까.

약자들을 향한 애끊는 마음을 가졌던 예수는 스스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내 고향 교회는 시장통 한가운데의 신학과 질문이라곤 없는 매우 보수적인 교회지만 마을의 생활공동체로서 깊이 뿌리내려져 있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겼던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다. 물론 교회다 보니 병자(?)들도 있고 사건 사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선출된 장로나 권사 원로 혹은 그 가족이라고 하여 헌금을 많이 한다 하여 교회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대접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도 없었다. 장로들은 교회에서 마시는 물 한 잔에도 감사했고, 헌신적인 교사와 봉사자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간식과 교재를 만들고 평일에도 나와 일하면서도 티 내지 않았으며, 평신도들은 낯선 이방인들을 환대하고 소박하게 어울려 지내는 삶을 소중히 여겼다. 내게 이러한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며 절대선과 절대악에 대한 환상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질 때, 이 세상과 종교의 진리를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혔을 때, 이러한 어린 시절 교회에서의 생생한 기억이 곧 나에게는 신앙이 되었다. 무종교자들이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더 합리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하지만 종교 가진 이들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마음도 고마운 일이라는 책의 내용에 그래서 더욱 공감되었는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이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안의 이기심을 볼 때가 있다. 어설픈 이타심이 아닌 자신에게 충실히 하고자 하는 투명한 이기심은 타인에게 결코 최종적 해를 끼치지 않는다. 투명한 것이 옳은 것이다. 운동이네 개혁이네 갱신이네 떠드는 조직에서 에러가 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대에 공감하기보다는 네 편 내 편 어설프게 갈라 현재의 숙제에 직면하기보다 미래를 위하는 척 흐릿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종교는 그 고마운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오히려 종교 없는 사람들이 도덕성과 인간애,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연대의식,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 등에서 더욱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라는 성서 말씀대로 온 마음을 다해 투명해질 때 선한 열매는 맺힐 것이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스스로 바른길을 고민해서 실천한다면 그 과정과 결과는 아름다울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종교 없는 부모들이 공감적으로 타인을 대접하는 방법을 자녀에게 더 진지하게 가르칠 것이라고 하지만 종교의 핵심부에 다다른 부모들이라면 필연적으로 자녀에게 공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초등학교 때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 이유를 아이와 이야기 나누던 중 절대선이니 인격적 신이니 하는 단어를 아이 입에서 듣고서 놀랐다. 내가 20대 때 고민했던 것을 요즘 아이들은 10대에 이미 거치는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보수 개신교의 태극기부대와 진보사회단체인 정의연의 문제는 무엇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념을 지닌 인간군상의 희로애락과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추한 감정들 그리고 어른들의 위선과 민낯에 대해서, 아이들과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코로나로 등교를 못 하게 되니 아이들과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기대치 않은 좋은 점이다.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앙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기성세대의 사고라면 그런 이들이 리더인 교회교육이 과연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몇 해 전 아이들이 참가한 타 종교와의 연합수련회 퀴즈대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속한 그룹이 비록 성서의 단편적 지식은 좀 부족했을지라도 사회 이슈에 대한 지식과 의견 그리고 스스로 건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욕은 넘쳐났었다고 들었다. 하긴, 어른 말이나 얌전히 잘 듣는 애들이 커서 과연 뭐가 되겠냐고 호기롭게 말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그 대가로 매우 저항적이고 의사 표현이 자유로운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발랄한 사춘기를 겪어낸 아이들이니 머지않아 나로부터 잘 독립할 좋은 징조로 여기고, 빈 둥지 증후군에 대한 염려는커녕 부부만의 홀가분한 웃음소리 넘쳐날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이 세계와 이번 생 지금의 삶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지금 이 순간이 신비로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듯 이번 코로나로 우리가 누렸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그리고 생각이 달라도 여기 지상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함을 서로 확인해 가며 식탁에서의 아이들과의 대화는 한동안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책을 덮고 식탁 위의 아이 어린 시절 손글씨를 다시 바라본다. 환하게 웃던 아이들의 얼굴과 단란한 식탁의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많은 이야기가 담긴 밥상이 지금 여기 우리 앞에 와있다. 고슬고슬 갓 지은 구수한 밥 냄새, 보글거리는 찌개 냄새에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과 따스한 사랑이 배어있음도 잊지 않고 꼭 기억하려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지금 여기 이것만이 전부이자 가장 확실한 것일지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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