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의 책 소개 : 별처럼 흙처럼 - 팔십자서
- 속살 아물지 않은 역사의 흉터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90년대, 대학 과 동기에게 한 친구를 소개 받았습니다. 마포에 그 친구의 오피스텔이 있었는데 마침 제 일터가 여의도였고 마포 최대포집 주변은 제 야간활동 구역이었습니다. 술친구가 된 그녀가 갑자기 "우리엄마"를 소개시켜준다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의 부모님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던지라 바짝 긴장했는데 제게 책 한권을 선물해주더군요. 고서점에서도 구하기 힘든 오래된 초기 '현대문학'지였습니다. 그리고 멋진 베레모를 쓰시곤 쿨하게 사라지셨습니다.
20년 뒤 어느 날 집밥이 그리워 근처의 그 친구 집에 밥 달라고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없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님이 손수 차려주신 밥상을 맛있게 먹고 나니 원고 한 뭉치를 꺼내 보여주셨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 버스에 타고 있다 세상을 떠난 여고 단짝의 이야기부터 직장생활 중 여사원에게 반말하는 거래처를 감화시킨 이야기, 그리고 더 거슬러 소녀시절 좋아하던 대학생 오빠가 붉은 머리띠를 하고 북으로 가는 트럭에서 손을 내밀던 6.25의 기억까지 담담하게 써내려간 수필은 어디에서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었습니다.
"어머니! 이 글들 너무 아까워요. 책으로 꼭 내셔야 해요."
친구의 어머니는 이제 저를 "석배"라 부르지 않고 "고서방"이라 부르십니다. 어느 날은 제게 "사는 게 좀 지겨운 나이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직 하셔야 할 일이 있잖아요. 자서전도 마저 완성하셔야 하고요" 어머님은 다시 생기가 도시며 몇 달간 책상에 앉아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목을 정하셨습니다.
"고서방! 돌이켜보니 나는 극과 극을 오가며 산 것 같아. 마치 저 하늘의 별처럼 때론 저 밑바닥의 흙처럼 말이야."
'별처럼 흙처럼'은 한 개인의 자서전이기보다 이 땅을 살면서 피하지 않고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한 한 여인의 삶의 기록입니다. 딱지는 떨어졌지만 속살은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흉터입니다.
장모님이자 제 동지인 최영선 작가님의 '팔십자서'가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 팔십대에 시작하는 작가 인생의 첫 신호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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