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2022). ㈜휴머니스트출판그룹.
깨꽃? 깻잎이 아니고? 이 책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다. 너무 토속적이다. 깨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꽃밭에는 없다. 농사짓는 밭에만 있다. 깨밭에서도 사람들은 깻잎을 보지 깨꽃을 보지 않는다. 농부는 깨꽃 뒤에 맺히는 열매인 깨를 거두어서 기름을 짠다. 깨꽃은 없는 듯 있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저자 이순자의 삶이 그랬다. 저자는 향기로운 삶을 살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의 삶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62세부터 65세까지 취업을 위해 분투한 경험을 기록한 <실버 취준생 분투기>였다. 그리고 사후에 발간한 이 책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가 진한 감동을 준다.
이순자는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전쟁 중에 전사했다. 어머니는 홀로 오남매와 시동생 둘의 생활을 책임졌다. 이순자는 선천적 청각장애(난청)로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재치가 있어서 주변에서는 저자가 청각장애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과 행실이 착해서 언니와 오빠들에게 ‘천사병 중증’이란 소리를 들었다. 본인도 오지랖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종갓집 종부로 시댁과 그 집안의 살림을 모두 챙겼지만, 남편은 폭력적이었다. 견디다 못해 결혼생활 25년 만에 이혼했다. 이순자는 20년 넘게 호스피스 활동을 했다. 이 책의 여러 이야기들은 그녀의 호스피스 활동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남을 돌보는 활동과 그에 관한 기록이 이 책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진솔한 감정과 사람들의 거친 반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깨꽃 이야기는 이순자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강원도 평창에서 지낼 때의 생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순자는 이웃집의 아흔이 넘은 노부부와 어울려 지냈는데, 그들이 깨꽃을 보면서 이순자를 닮았다고 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고. 정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삶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저자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고소한 냄새가 난다. 다 그런 건 아니다. 저자의 삶의 주변에는 악취를 풍기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듯이.
이 책은 저자가 노년에 기록한 내용을 사후에 펴낸 것이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고통을 견뎌낸다. 사랑하고 희망하는 데서 고소한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