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경제(The Making of a Democratic Economy)
저자 마저리 캘리, 테드 하워드 | 역자 홍기빈 | 학고재 | 2021.6.7.
“비전이 없으면 삶도 시든다.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
책의 맨 앞부분에 인용된 잠언 29장 18절의 말씀에 감전된 듯 이끌려 책을 주르륵 읽어 내려갔다.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었나? 기존 한국어 성서에는 다른 어감으로 번역되어 있어 눈에 들어왔을 리 없다.
양극화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기후 재앙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다가는 머지않아 인류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다. 책은 “앞날이 너무나 두렵다고, 대안을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어느 영국 노동당 의원의 발언(202페이지)에 대한 대답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상위 1%가 엄청난 재산과 권력을 쥐고 흔들면서 감히 자유민주주의를 참칭 한 시장 독재가 기승부리고 있다. 저자들은 상층의 지배 엘리트가 금전적 이익을 최대한 추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여 '추출적 경제(extractive economy)'라고 부른다. 이러한 추출적 경제 아래에서 기후 재앙이 급가속하는 암울한 시대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반박과 대응의 수준을 뛰어넘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추출적 경제의 대안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협동조합, 민주적 경제, 재생적 경제, 연대 경제,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추구되었고,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좌초를 불러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실로 체감되는 기후 재앙을 계기로 민주적 경제의 대안 모델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메인 스트리트도 기업에 대한 투자의사결정 시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주요 요소로 반영한다.
저자들은 2000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 ‘협력하는 민주주의’에서 각각 의장과 실행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민주적 경제의 실험과 실현가능성이 높은 급진적 모델들의 전파를 촉진해 왔다. 저자들은 민주적 경제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이며, 핵심은 공공선(common good)이라고 말한다. (29페이지) 옛 시스템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을 때, 시스템은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여 완전히 새로운 구조와 행동방식으로 혁신하게 된다. 이런 자발적 혁신의 실험을 통해 등장한 민주적 경제의 7가지 원칙과 실제 벌어진 사건 이야기들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 공동체의 원칙 : 공공선이 우선이다.
- 포용의 원칙 : 배제된 이들에게 기회를 돌린다.
- 장소의 원칙 : 지역 자산을 마을에 머물게 한다.
- 좋은 노동의 원칙 : 자본보다 노동이 먼저다.
-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 : 공정과 지속 가능성에 기반한 경영 구조를 설계한다.
- 지속 가능성의 원칙 : 생명의 근간인 생태계를 지킨다.
- 윤리적 금융의 원칙 : 투자의 최우선 목적을 사람과 지역에 둔다.
당연하고도 명징한 도덕 원칙이다. 저자들은 좋은 사회란 한 손에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다른 한 손에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도 통할까? 확고한 비전을 품은 실천가들이 계획을 세우고, 설득하며, 연대하고, 실천하니 과연 이루어졌다.
시작은 단순하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어떤 체제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은 근저에 깔린 인식의 틀이다. 하지만 인식 전환에는 물질이 필요하지 않다. 비용이 크게 들지도 않고, 또 아주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229페이지)
모두의 삶을 꽃피우는 경제에 대한 가슴 뛰는 이야기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