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How Minds Change)
저자 | 데이비드 맥레이니
역자 | 이수경
웅진지식하우스 | 2023.3.6.
"역시 사람은 안 바뀌지."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들어."
50여 년을 살면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남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아무리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하고 논쟁을 벌인 들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 지인들과 정치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소득도 없고 오히려 감정만 상하여 후회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아예 입을 다무는 게 현명한 처신이다. 책은 인지신경과학자의 입을 빌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박당할 때 곰을 마주친 것과 같은 신체적 위협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탈진실(Post-truth)과 확증편향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자신이 보고 싶거나 듣고 싶은 콘텐츠의 좁은 바다에 푹 빠져서 살고 있지 않은가?
자칭 '심리학광'인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음모론자, 정치 극단주의자, 광신도 등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가치관이 한순간 뒤집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수년간에 걸쳐 설득의 원리를 파헤치는 장대한 여정에 들어갔다. 이 책은 저자가 맹렬한 호기심과 집요함으로 완강했던 믿음을 바꾼 이들을 인터뷰하고,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설득 전문가, 사회활동가 등과 협업하여 분열과 갈등을 이기는 '과학적 설득법'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딥 캔버싱'이나, '동기 강화 상담'에서 '길거리 인식론'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열심히 배우고 훈련한 최전선의 설득법 기술의 근본 원리는 단순하다. 우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서는 무조건 실패한다. 상대방이 메시지 전달자를 신뢰할 수 있다고 느껴야(!) 그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데이비드 흄의 가르침은 진리이다. 그래서 대화의 1단계에서 라포르를 형성하여 열린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존재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지닌 이력을, 자신이 특정한 동기와 목표를 갖게 된 원인을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모를 때가 많다. 따라서 과학적 설득법의 목표는 대화가 끝날 때쯤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나 의심에 도달하는 더 나은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다.
결국은 경청과 스토리 텔링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이렇게 요약 정리한다. "그러니까 먼저 '나도 사회적 동물이고 당신도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지금 우린 둘 다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라는 신호를 보낸 다음, 상대방이 반박하며 논쟁해야 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끔 정보를 전달하는 거군요."(357페이지)
책의 말미에는 개인을 넘어서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커다란 사회 시스템은 비록 안정되고 변동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의 구성원들이 감지할 수 없는 미묘한 방식으로 항상 변화하고 있다. 담배꽁초가 숲에 수없이 던져지다가 어는 날 대형 산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똑같은 충격이 시스템에 10억 번 가해지다가 10억 다음 회의 충격이 가해질 때 대규모의 폭포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시스템에 반복적인 충격이 가해져도 이전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헛되게 느껴졌지만, 임계점에 도달했을 즈음에 이르러서는 그 충격이 세상을 바꿀 잠재력을 갖게 된다. 노예제 폐지, 동성 결혼에 대한 생각의 변화, 종교 개혁, 냉전의 종식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많은 중대한 사건들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 옳다고 믿은 것이 틀린 것이 되고 사실이 거짓이 되고 평범한 것이 금기가 되었으며, 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하였다.
네트워크가 민감해지고 서로 연결성이 강화되어 조건이 형성되면 과거에는 아무 효과가 없던 충격이 네트워크에 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핵심은 기존 시스템을 두드리는 망치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시도하는 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408페이지)
꽉 닫힌 사람들의 마음마다 조각조각 분열된 사회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생활 가운데 변화에 이르게 하는 대화법에 관심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고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으로 책장을 덮으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