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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구, 2019 - 인간의 마지막 권리

posted Jul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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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기수
발행호수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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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지막 권리>

박충구, 2019 

도서출판 동녘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이 말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감명을 주지 못한다. 너무 평범하다. "나의 생명은 유한하다." 이 말은 잠깐 긴장시키지만, 그 긴장은 금방 해소된다.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의 생명은 1년 안에 끝난다."는 선고를 받으면, 엄청난 충격이 된다. 1년이란 시한부가 목을 조인다. 죽음은 너무 낯설다. 어려서 조부모님이 운명하시는 걸 봤고, 커서 부모님이 운명하시는 걸 봤다. 수년 전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가는 걸 봤다. 가까운 친척과 친구의 죽음으로 문상을 다녀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번의 죽음을 눈에 담고 가슴에 새겼지만, 여전히 죽음은 낯설다.

 

저자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성직 후보생들에게 사회윤리학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직했다. 사회윤리학 안에는 생명윤리도 포함된다. 저자는 퇴직 후 평화와 생명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인류가 인간의 죽음을 이해해 온 과거의 방식이 현대세계에서 그 적절성을 상당 부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인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오랜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거친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대에는 '죽음의 과정'이 길어진 사람의 고통에 대해 세심하고 충분한 고려를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과거 사람들은 죽음의 의미를 협소하게 이해하고, 죽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권리를 부정해 왔다.

 

내가 어릴 때, 농촌마을엔 집이든 밭이든 어디서나 농사일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병자가 아닌 한, 남녀노소 누구나 일했다. 아버지 말씀으로, 당신이 어렸을 때는 남자들이 마흔이 넘으면 농사일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뒷짐 지고 다니셨단다. 어려서부터 거친 음식을 먹고 심하게 일을 했기 때문에, 마흔이 되면 체력이 고갈되어 일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누군가 회갑을 맞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

 

말년에 큰집에서 암 투병하시던 큰아버지는 뼈만 남은 몸으로 "빨리 죽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안 죽는지 모르겠다."며 무척 고통스러워하셨다. 마을의 어떤 분은 누가 인삼이나 보약을 챙겨줘도 먹지 않았다. 죽을 때 빨리 죽지 못해 고생한다는 게 그 이유다.

 

19세기엔 인간의 평균수명이 약 45세였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영양과 의료가 발달하여 수명이 늘어났고, 고령사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쇠퇴한 몸으로 죽음을 맞는다. 노인들은 대부분 암, 심장질환, 뇌질환이라는 3대 중증질환으로 죽음을 맞는다. 낡은 기계처럼 노화로 인해 몸의 중요한 기관이 고장나는 것이다. 중증질환이 찾아오면, 몸은 서서히 죽음으로 기울어진다. 그 과정에서 약 3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겪는다. 말기에 이런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노화와 죽음의 과정이 길어지면서 생명윤리도 바뀌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짧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적인 생명윤리는 말기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죽음은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으로 생각했다. 생명윤리는 생명을 옹호하고 연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생명을 옹호한다는 것은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을 유예하는 것이다. 이런 윤리는 이제 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죽음을 육체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본다. 죽음은 삶의 모든 욕망을 정지시키는 사건이다. 죽음 앞에선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불행도 모두 정지한다. 반면에 삶은 기쁨과 행복, 슬픔과 불행이 교차하며 직조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수없이 선택하며 자기 삶을 꾸려나간다.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는 고통의 극소화와 기쁨의 극대화라는 공리가 적용된다.

 

저자는 이런 공리가 죽어가는 시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죽어가는 이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생의 마지막 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극단의 고통 속에 무기력하게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존엄성을 지키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죽음 앞에서도 삶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주체성을 지키려 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또한 죽어가면서, 인간다움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서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저자는 죽어가는 이가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비킬 수 있고, 사회가 그 존엄성을 지켜주는 죽음을 '인간다운 죽음'이라고 설명한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저자는 13가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답한다. 저자의 물음과 답을 읽으며, 독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좋겠다. 나의 마지막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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