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태계 위기에 있어 다양한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지구 생태계 위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쉽게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일수록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구 생태계 위기는 인간의 끊임없는 성장과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구조와 삶이 낳았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 즉 살림터를 공유하며 상부상조하는 생활공동체로 살았다. 각 마을마다 고유한 문화, 언어, 얼(가치)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삶의 다양한 당면 문제를 두레, 품앗이, 울력 등의 형태로 마을에서 해결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독재 및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촘촘했던 마을 공동체는 와해되었다. 지구 생태계 위기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문제에 있어 이를 대응할 토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지구 생태계 위기를 해결할 방향은 인간 사이의 건강한 관계망을 회복하여 기존의 습속을 벗어나는 새로운 생활양식의 사회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덴마크는 많은 정책가, 전문가들이 기후대응, 에너지 전환사례를 보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대다수, 눈으로 보이는 성과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 산업군에만 주목한다. 덴마크를 오가며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가시적 열매를 맺게 했던 토대인 덴마크의 조직된 시민의 힘, 즉, 관계망이었다.
1973년 세계적인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0년대까지 에너지 수요의 99%를 수입에 의존했던 덴마크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적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체 에너지를 물색했다.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등으로 1980년대 서북〮유럽 일대에까지 반핵운동이 펼쳐졌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인접국인 독일이나 스웨덴 등과는 달리 덴마크는 핵발전을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덴마크는 세계적인 양자역학자인 닐스 보어와 코펜하겐 학파를 낳았고, 덴마크 역사상 최대 규모 연구소를 갖춰 핵발전 연구 매진하는 등 핵발전 기술에 앞서가는 국가였다. 그러나 이런 기술 경쟁력을 포기하고, 당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풍력을 기존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로 선택했다.
그 배경은 바로 덴마크 어딜 가나 있는 크고 작은 공동체, 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1980년대 덴마크에서 반핵운동이 일어났을 때 덴마크의 생활 공동체들과 그룬트비 철학에 입각한 민중학교 (Folkehøjskole), 연구소, 협동조합이 국가 전력망에서 독립하여 에너지를 자급하기 위해 풍력발전기를 개발 설치했다. 현대적 풍력발전기 형태를 최초로 설계했던 곳은 기업이 아니라, 폴케센터(Folkecenter)라고 하는 민중 연구소였다. 폴케센터에서는 기술 개발에 성공 후에도 특허를 취득하지 않았고, 누구든 아주 적은 돈만 내면 풍력발전기 설계도를 제공했다. 학교가 마을을 돕고, 마을이 학교를 도와 풍력발전기뿐 아니라,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연구하고, 제작, 운영하였다. 거리 시위를 넘어 실제 대안을 공동체 삶으로 구현하는 적극적인 형태의 에너지 전환 운동을 해 나갔다. 이것이 앞선 언급한 여타 나라와의 차이점이었고, 이 차이점이 결국 선택의 차이를 낳게 되었다.
나는 밝은누리에서 '한몸살이'를 하고 있다. 즉, 살림터를 바탕으로 함께 하는 이들과 한 몸으로 연결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 마을을 일구며 살고 있다. 마을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은 당면한 문제에 있어 구호를 외치는 것을 넘어, 생각의 전환과 더불어 사는 일상을 재구성함으로 창조적 살림과 지속가능한 삶의 구조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밝은누리는 서울 인수, 강원 홍천, 경기 양평과 군포 등 농촌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살리는 농도상생마을 공동체이다. 먹고, 입고, 살고(住), 노는 일상적인 삶의 전 주기적 생활양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통전적인 차원에서의 새로운 대안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삶을 바탕으로 한 공부와 수련을 통해 마을의 얼을 공유하며, 상호적 신뢰 관계를 쌓는데 역점을 둔다.
8살, 4살 아이들과 함께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 한 해 평균 전기요금을 계산해 보니 7,200원이 나왔다. (우리나라 4인가족 기준 평균 가정 전기요금은 57,000원 내외이다.) 더운 여름 한 달 전기요금도 12,000원 남짓이었다. 어디 가서 우리 집 전기요금을 이야기하면 곧바로 집에 태양광을 설치했냐고 묻거나 전등은 켜고 사는지 묻는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특별히 더 허리띠를 졸라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그 해법은 바로 '더불어 사는 삶'에 있다. 주중 끼니를 함께 나누는 마을밥상은 우리집 부엌살림을 단출하게 해 주었다. 각 가정마다 흔히 있는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전기레인지 등이 우리 집엔 없다. 마을밥상에서 함께 밥을 먹으니 웬만한 주방용품은 다 마을밥상에 있다. 더운 여름 무더위를 피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 역할은 마을찻집이 한다. 책 읽고, 공부하고, 소소한 실내 활동을 할 공간도 마을 이곳저곳에 있다. 따라서 넓은 거실, 쾌적한 서재 등이 딸린 넓은 집에 대한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자동차도 나누어 탄다. 자동차를 소유한 집에서는 자동차를 누구든, 언제든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차를 이용한다. 소유한 이가 소유한 차를 쓰는 우선순위를 반드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각 가정마다 차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물건은 마을 누리집에 있는 나눔터에서 나누고 구할 수도 있다. '단순 소박하게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얼(가치)이 마을 안에 자리 잡으니, 그 삶이 가능 한 구조를 함께 만들어 모두가 누리는 자연스러운 열매가 된 것이다.
나는 주말이 되면 강원도 홍천을 오가며, 공부하고, 놀고, 쉰다. 이 풍경은 각 마을에 흩어져 있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다. 밝은누리의 첫 마을 터전은 서울 인수마을이었다. 도시에서 마을을 일구고 살며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농(農)이 지닌 소중함이었다. 흙에 터해 살 때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공동체 귀촌 중심에 하늘땅살이1)를 두었다. 이런 깨달음으로 밝은누리는 강원도 홍천으로 분화 개척했다. 착한 소비를 넘어 생산하고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삶을 일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밝은누리 홍천 터전에서는 곳곳에서 쉽게 생태 뒷간과 그 뒷간에서 모은 똥과 오줌, 밥상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모아 삭히는 퇴비간을 찾아볼 수 있다. 씨앗을 심고, 꽃 피워, 열매 맺고, 그 열매가 먹는 이의 몸에 들어와 그 생명을 살리면, 먹는 이는 똥과 오줌, 밥상 부산물을 모아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생명 순환을 구현하는 것이다. 마을 내 두레와 울력, 품앗이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위적인 화학물질에 기대지 않은 채, 필요한 만큼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늘땅살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렇게 하늘땅살이를 하면 흙이 살아난다. 건강한 흙(부식토)의 탄소저장 능력은 풍력과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설치로 인한 탄소절감효과와 맞먹는다고 하니, 이 역시 주목할만한 지구살림 대응이다. 매년 봄가을마다 마을 씨앗 잔치를 하는데, 이 땅에서 자란 토박이 남새/곡식들의 씨앗을 모아 마을마다 서로 나누고, 대를 물리며 다양한 생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가고 있다.
우리나라 안팎으로 다양한 마을 공동체들의 이야기는 이것 말고도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마을 공동체들이 구현하는 구체적 대안은 그 안에서 문화와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자산은 마을 내에서는 세대를 걸쳐 전수되고 재생산되며, 마을 밖으로는 다양한 마을 공동체 간 자발적인 연대를 통해 공유한다. 이를 통해 한정된 세대와 영역, 장소를 넘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마을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지구 생태계 살리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
1) '하늘땅 안에서 사람이 행하는 모든 생명살림'이라는 의미로, 논밭에서 생명을 살리는 농생활을 포함한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살림학 연구소> 살림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서 기후, 에너지 관련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