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폐기물을 양산하는 패스트 패션... 나의 소비형태는?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옷은 200톤 이상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가정에서 분리 배출된 폐의류가 일 년에 8만 2천 톤 규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량제 폐기물에 담겨 배출된 폐섬유가 연간 37만 톤 이상으로 추정되고, 생산과정에서 버려진 폐섬유도 6만 6천 톤 이상으로 집계되니 실제 버려지는 양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따라가는 패스트패션은 의류 소비량을 급속하게 늘이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만, 옷의 평균 수명은 그만큼 줄어듦으로써 결과적으로 의류 폐기량을 급속하게 증가시키고 있다. 매년 생산되는 섬유의 약 85%가 폐기되는데(세계경제포럼), 2030년 세계 의류폐기물은 2015년 대비 62%나 늘어날 것으로 전망할 정도로 그 증가속도도 매우 빠르다고 한다.
의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폐수는 세계 폐수의 20%를 차지하며(2018 유엔유럽경제위원회 보고서), 의류산업과 면화 생산에서 나오는 탄소량은 세계 배출량 약 10%에 해당된다. 섬유의 소비는 식량, 주거, 이동에 이어 환경과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4번째 요인이며, 특히 자연생태계에 유출되는 미세플라스틱 35%가 섬유제품에서 나온다고 한다.(EU 지속가능하고 순환적인 섬유 전략 보고서)
한편, 일상생활에서 휴대전화, 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고 전자폐기물도 따라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세계 전자폐기물 양은 6,200만 톤으로 40톤 트럭 455만 대로 적도를 둘러쌀 수 있는 양이라 한다. 이 양은 2010년 대비 82%가 증가한 것으로, 2030년에는 2022년보다 32%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9년 세계 전자폐기물 1인당 평균 배출량은 7.3㎏인데, 우리나라는 15.8㎏으로 세계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2030년이 되면 1인당 세계 전자 폐기물 평균 배출량은 9㎏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자폐기물 배출량의 20% 내외만 재활용되고 수십조 원의 가치로 평가되는 자원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의류 폐기물과 전자폐기물은 저소득국가로 모인다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나라나 선진국에서 사용 후 수거된 의류와 전자제품의 다량은 덤핑 수출 혹은 원조의 형태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저소득국가로 이동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매년 30만 톤 이상의 중고 의류를 수출하는 전 세계 5위 수출대국이라 한다. 선진국들의 떠넘기기 식으로 저소득국가에 모인 폐의류들은 결국 그곳에 다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남기게 된다. 저가의 노동력으로 세계에 의류를 공급했던 나라가 최종 폐기물까지 떠맡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생산과 소비형태는 과연 지속가능할까? 패스트패션으로 양산된 의류폐기물, 유행에 맞추어 교체하면서 발생된 수많은 전자제품 폐기물들을 처리할 공간이라는 자원은 무한한가? 나의 패션스타일과 전자제품 소비 형태는 어떠한가? 이들을 내가 살지 않는 다른 곳에서 처리하면 안전할까? 그리고 그것은 공정한가? 패스트 패션 시장이 커질수록, 전자제품이 더 개발될수록 우리가 사는 지구는 그만큼 더 아프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연생태계에는 폐기물이 없다
이제 자연생태계를 살펴보자. 자연생태계에는 폐기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로 촘촘하고 다양하게 연결된 먹이사슬 구조 때문이다. 어느 한 개체의 분비물이나 사체는 다른 종의 먹이가 되어 영양자원이 지속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폐기물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근래 인류 건강의 적으로 취급받는 비만도 본래 인류의 생존과정에서 필수적이었던 영양분축적 능력으로 인한 것일 터이다. 과거 먹거리 확보가 불확실한 여건을 극복하고자 잉여 영양분을 체내에 꼼꼼하게 저장하여 둠으로써 생존 확률을 높이고자 했던 영양분 축적 능력이 영양공급이 안정화된 현재의 인류들에게는 비만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리라. 즉, 영양분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필수 자원이지만, 그것이 순환되지 못하고 과다하게 축적될 경우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독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 자연 생태계의 원리라 보인다.
폐기물은 인간의 선형경제 구조가 초래한 구조적 산물
세계 인류의 큰 골칫거리로 등장한 폐기물은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 온 경제생태계가 보여 준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할 것이다. 인류의 경제구조는 인간 경제활동 과정에서 발생되었으나 사용되지 못한 자원을 특정 공간에 누적시켜 놓음으로써 주변에 다양한 위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우리는 폐기물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자연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폐기물이란 잘못된 시간과 장소에 과다하게 몰려 있는 본질적으로 유용한 잉여자원일뿐이다. 그런 점에서 폐기물이라는 용어도 앞으로는 잉여자원, 미사용자원 혹은 잔류자원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잉여자원의 축적은 그동안 추구해 온 선형경제 구조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연에 산재해 있는 자원을 채취하여 필요한 일부만 선택적으로 추출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추출된 성분들도 수많은 가공공정을 거치면서 부산물 혹은 폐기물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진다. 그로 인하여 인간의 선형경제는 광범위한 자원들을 채굴하여 소량만 최종제품에 사용하는 낮은 자원효율성을 갖게 되고, 제조과정에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 생태계에 위험을 초래하며, 투입과 산출의 균형이 고려되지 못한 생산과정에서 발생된 폐기물을 축적함으로써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로켓을 타고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는 햇빛을 받고 일부를 반사하는 것 이외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거의 없다. 고립된 시스템인 셈이다. 그런 고립된 시스템에서 자원을 계속 캐내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지만, 경제활동의 결과로 발생되는 폐자원들을 처리할 곳은 더더욱 없다. 폐기물 문제의 심각성은 제한된 원료와 공간으로는 현재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모두 충당하기도, 그리고 배출되는 폐자원들을 처리하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선형경제를 순환경제로 전환해야
이러한 인간 경제의 선형구조를 자연 생태계의 순환구조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 자원순환이고 그러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 순환경제이다. 즉 지금까지 자연에서 추출해 온 원재료를 인간의 경제시스템에서 발생되는 잉여자원으로 대체하고 이를 순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천연자원의 사용량과 경제의 발전을 디커플링시키는 것이다.
최근 세계 많은 나라가 순환경제에 대응하고자 여러 정책과 로드맵, 그리고 다양한 시도로 분주하다. 특히 순환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지난 7월 18일 에코디자인 규제(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 Regulation, ESPR)를 발효시켰다. 이 규제는 유럽연합이 지속가능한 제품이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들에 적용된다. 이 규정은 제품의 내구성, 유지보수성, 재생성, 안전보건성, 탄소중립 수준, 자원효율성 등 매우 많은 규제항목들을 포함하고 있으나 핵심은 자원을 순환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유해한 성분을 엄격히 통제하고 탄소중립을 강화하며 이러한 제품의 주요 정보들을 사용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디지털 여권의 형태로 공개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유럽에 제품을 판매할 산업체들과 원재료 공급자들은 물론 이 정책이 확산됨에 따라 세계 모든 이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이 외에도 여러 정책들을 통하여 순환경제를 강력하게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위에 언급한 ESPR과 "지속가능하고 순환적인 섬유 전략" 등을 통하여 2030년까지 패스트패션을 사실상 폐기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전자제품들도 그 재료에 포함된 재생자원의 비율, 제품 사용 후 재생가능성 등 자원순환에 필요한 요소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순환경제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나?
순한경제는 기존의 선형경제를 대체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을 수 있는 정책적, 산업적 그리고 문화적인 변화에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순환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설계하고 구현하려면 수많은 이슈들이 논의되고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생태적인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패스트 패션을 폐기할 수 있을까? 폐전자제품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성찰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