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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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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6 - 빨간 앞치마 지비

posted Apr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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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6 - 빨간 앞치마 지비

 

 

아침 일찍 손세차를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었다. 어르신을 처음 뵈러 가는 날이었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을 때 학원장에게 미리 말해 놓았다.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외딴 곳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계시면 한 분만 방문요양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자격증도 나오기 전에 재가요양센터에서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다른 자격증 취득 교육과정으로 시간을 좀 벌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취업이 되어버렸다. 

대상자인 아흔 살 어르신은 자그맣고 고우셨다. 그리고 시력이 매우 안 좋으셨다. 그런데도 내가 여느 요양보호사보다 젊다는 걸 어떻게 아시고는 좋아하셨다.

 

4월 첫날인 첫 출근 날, 오전 아홉시 정각에 맞춰 열린 대문을 들어섰다.

나는 먼저 어르신에게 무얼 해드리면 좋겠냐고 여쭤보았다. 어르신은 다른 요양보호사들은 (다 알아서 했는지) 그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없었다며 청소와 빨래 회수를 알려주셨다. 나는 맨 먼저 늘어진 커튼을 제대로 걸고 집안의 묵은 먼지를 제거했다. 방들과 부엌 겸 거실을 쓸고 닦고 외부 화장실 물청소까지. 그리고 이불 빨래를 했다. 그사이 마당 텃밭 일을 하시던 어르신은 챙 모자를 챙겨드린 내게 “아주 내 마음에 쏙 드네.”라고 반색을 하셨다. 끓는 물에 수저를 소독하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챙겨 점심 밥상을 차려드리고 설거지까지 하니 세 시간이 채워졌다. 인사하고 나오는 내게 어르신은 (내가) 당신 돌아가실 때까지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첫 날이라 센터에 가서 이것저것 업무처리를 했다. 생전 처음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수십 년간 작가로 일했지만 단 한 번도 작성해 보지 못한 계약서였다. 최저시급에 주휴수당을 더한 급여는 매일 세 시간씩 한 달을 일해도 내가 간간이 하는 서너 시간짜리 심사비 이틀 치 내지  지난겨울에 했던 두 시간짜리 강의료 2회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소득 일들은 간헐적으로 들어오기에 생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 

원고료와 비교하며 최저시급에도 감지덕지하는 내 처지 때문이었을까? 건강보험공단과 군과 센터의 원활치 않은 행정 때문이었을까? 시골 독거노인을 정성껏 돌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에 조율을 종용하는 현실적 조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첫 날부터 몸 사리지 않고 무리한 탓에 오른손 중지에 박힌 가시 때문이었을까? 활기차던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는 선운사로 향했다. 

 

내가 선운사에 가는 이유는 동백 때문이다. 선운사 대웅전 뒤에는 거대한 병풍처럼 동백 숲이 둘러쳐 있다. 지난해 포토청 사진전 <마스크>에 출품했던 ‘동백나무 아래에서’의 동백나무 숲은  비오는 여름 원시림의 신비를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그 신비의 숲이 붉게 물들 날만을 기다려왔었다. 설날 다음 날인 2월 중순에도, 3월 중순에도 갔었지만 번번이 기다림이 재촉한 때 이른 방문이었다. 4월 첫 날, 벚꽃 만발한 선운사 입구를 지나 만개 직후 낙화하기 시작하는 동백 숲으로 갔다. 동백나무 그늘 밑에 울창한 건 동백꽃들이 아니라 새들의 지저귐이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새들은 모두 동백꽃의 꿀을 먹는 동박새일까? 요란한 시냇물처럼 조잘대는 새들의 청아한 합창에 매료되었다. 기대했던 시각 대신 화려한 청각이 요양보호 첫 날에 복잡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이부자리를 털어 널고 집안을 쓸고 닦았다. 청결한 어르신은 비교적 흡족해하셨다. 다만 냉동실의 유효기간 지난 식품들이 갈등 요인이었다.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힘들게 돈 벌어 사온 음식들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신다. 아끼고 쟁이다 결국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모른 채 냉동실만 미어터진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된 재료로 요리를 할 순 없다.  

 

사흘째 되는 날, 산책을 유도했다가 텃밭 잡초 뽑는 일에 동원됐다. 요양보호사 업무에 밭일은 없다. 하지만 시골집에 딸린 텃밭이 비어있는 경우는 없다. 쪽파, 대파, 상추, 마늘, 솔(부추) 등 갖가지 채소들이 심겨 있다. 어르신은 일단 밭 가장가리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맨손으로 잡초를 뽑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나더러 밭 가운데로 들어가 잡초를 뽑으라셨다. 평소엔 좋아하는 밭일이지만 요양보호사로서 하는 일은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닷새째 되는 날, 드디어 어르신을 집밖으로 모시고 나가는 데 성공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대문 밖에 나가신다고 했다. 오른손은 지팡이를 짚고 왼팔은 내게 잡힌 채 걷기 시작했던 어르신은 얼마큼 가자 혼자 걸어 동네 한 바퀴를 다 도셨다. 몇 달만의 첫 걸음에 1km나 걸으셨다. 대상자의 잔존기능 유지 및 향상은 요양보호사의 의무다. 남은 신체기능을 계속 사용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 걸으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르신은 자녀가 마련해 놓은 산소자리 자랑을 하시며 대상자가 죽으면 요양보호사도 장지까지 온다고 하셨다. 아마도 내게 당신의 멋진 산소를 자랑하고 싶으셨나 보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음 이후 이야기를 하는 건 품위 있게 남은 날들을 누리는 경험이다.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그 죽음을 함께 준비하는 태도, 그것이 대상자와 요양보호사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아침에 차를 몰고 7.2km 시골길을 달리면 어르신 댁이 있다. 요양보호사 유니폼인 빨간 앞치마를 입는다. (색은 센터마다 다를 것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180분간 방문요양을 한다는 증거를 남기려면 스마트 폰에 장기요양 앱을 깔고 대상자 집에 붙어있는 스티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태그(접촉)를 해야 한다. 한데 그 태그가 안드로이드 폰만 가능하다. 아이 폰을 사용하려면 ‘비콘’을 따로 달아야 하는데 공단에서 가져와 달아도 태그가 되지 않는다. 아이 폰의 보안기능을 비콘이 뚫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여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해야 한다. 그 센터에서 아이 폰 사용자는 나뿐이라고 했다. 앱을 깔고 아무리 비콘에 태그를 해도 접속이 되질 않았다. 태그 대신 요양기록지에 수기로 기록을 자주 하면 태그율 저조로 공단에서 센터로 문책이 들어온다고 한다.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도 얼마 안 되는 나는 안드로이드 폰이 없이는 일을 원활히 할 수 없는 장기요양보호 시스템 때문에 일주일 만에 다른 폰을 대여했다. 그에 따른 지출을 청구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어르신은 나를 ‘지비’라고 부르신다. ‘지비’는 당신, 자네 등과 같은 2인칭 호칭의 전북 방언이다. 

“지비도 같이 밥 먹으면 얼마나 좋아.”나 “지비는 내가 완전히 믿지.” 이런 식이다.  

내가 밥상 앞에서 반찬을 숟가락 밥 위에 얹어드리면 어르신은 자꾸 같이 먹자고 하신다. 거절하면 마당의 쪽파나 상추를 가져가라고 하신다. 내가 어르신 재산 축내는 것 같아 싫다고 하자, 요양보호하면 식구나 다름없다고 하셨다. 말씀이라도 고마웠다. 

집안일을 다 하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어드린다. 동화, 시, 성경(어르신의 종교와 연관이 있으므로)을 읽어드리고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 아주 시원해 하신다. 건조해서 일어난 각질을 자꾸만 긁으셔서 바세린 로션을 발라드리니 막둥이 딸이 생겼다고 하신다.    

어르신은 대문을 열어두신다. 당신이 죽으면 누군가 들어와서 발견해야 할 텐데 그때를 위해 문을 열어두신다고 했다. 죽음이 문지방을 넘어올 때 그것을 맞이하는 모두는 혼자다. 임종을 지키는 건 효자 몫이라고 하지만 현대사회의 독거노인에게 그런 마지막은 호사 중의 호사일 터. 독거노인의 주검을 처음 대하는 일은 요양보호사에게 가장 힘든 관문일 것이다. 그만큼 외로운 이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장기요양보호는 숭고한 일이다. 

 

DSC02079_resize.jpg

 

상추 아가들을 이사시켰다. 

행여 다칠 새라 조심조심 옮겨 심고 날마다 지켜봐주니 

한 뿌리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사랑은 기적을 이룬다.

 

상추를 쳐다보던 어느 날 떨어진 분홍 꽃잎이 하도 예뻐 

위를 보니 모과나무에 화사한 꽃이 피었다.

모과나무가 그렇게 독특한 수피를 가진 줄 처음 알았다. 

사랑은 점점 퍼진다. 

 

어린 것을 돌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지독히도 약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노인을 돌보는 일은 그처럼 쉽지는 않다. 

사랑의 확장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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