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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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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3 – 배움이 있는 정원의 고양이들

posted Nov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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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3 – 배움이 있는 정원의 고양이들

 

 

나의 네 번째 정원인 <백련재 문학의 집>은 문학인들을 위한 집필실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집필실에서 입고 먹고 자고 산다. 정해진 기간 동안 작품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입주한 작가들은 서로 최대한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아침에 눈 뜨는 시각이 점점 늦어진다. 10여 분에 불과 하지만 요가 겸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난 날과 벌떡 일어난 날은 차이가 크다. 그것은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을 내어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기 전의 몸을 깨우고, 길고 어수선한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피곤한 몸을 먼저 정리한다. 이부자리를 개고 세수를 하고 산책하거나 독서를 한다. 

 

가을이 깊은 요즘은 고산윤선도유적지 앞 황금빛 논을 빙 둘러 산책한다. 알알이 여물어 처지기 시작하는 벼 이삭을 보며 겸손은 최고의 미덕이지만 너무 익기만 해도 쓰러지는구나 싶었다. 또 알곡과 가라지는 어차피 수명을 똑같이 하며, 곡간에 가거나 아궁이로 들어가거나 베어지는 건 마찬가지란 생각도 한다. 

 

오전에는 보통 독서를 한다. 

요양보호사를 하던 올봄 몇 달 동안 9시면 KBS 음악 FM 시그널뮤직이 그렇게 듣고 싶었다. 9시부터 12시까지 근무했기 때문이었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시간은 진행자의 음성만큼 우아하고 여유로워서 동 시간대 바쁘고 정신없을 직장인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9월에는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갖듯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하루에 한 단원씩 읽었다. 1845년 미국 생활이 176년 지난 한국의 내게 적용되는 건 정말 신비롭다. 그만큼 자연의 속성이 지구상의 진리처럼 변함없기 때문이다. 더 읽고 싶어도 한 단원만 읽고 아쉬움에 책을 덮는 독서법은 예전과는 다른 색으로 밑줄 긋는 재미만큼이나 고소하다. 8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연필로 줄을 그었고, 이번에는 색연필로 줄을 그었다. 되도록 한 번 밑줄 그은 데를 다시 치지는 않았는데 연필과 색연필로 두 줄이 그어진 문장이 있다.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온다.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p.331

 

다시 읽은 <월든>에서 소로우는 시인이었다. 그는 진실을 원했다. 

 

죽음이든 삶이든 우리는 오직 진실만을 갈구한다.

(같은 책, p. 150)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같은 책, p. 489)

 

<월든>을 두 번이나 정독했으니 다른 책을 읽어야 할 텐데 무슨 책을 읽을까? 

 

나는 형설출판사 <論語譯註>(논어역주)를 꺼냈다. 손바닥만한 표지 속지에는 붓펜으로 내 본명이 쓰여있다. 오래전 작고하신 고전문학 교수님 글씨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그분 연구실에서 논어를 공부하던 대학교 2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한 제4권 里仁(이인)의 몇 문장을 베껴 써보았다. 

 

子曰자왈 朝聞道조문도(면) 夕死석사(라도) 可矣가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

 

한때는 정호승 시집처럼 사랑하다가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 사랑을 아직도 이루지 못했으니 도를 깨닫는 게 더 빠를까? 공자는 향년 73세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전에 사랑이든 도든 만날 수 있을까?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 화요일 밤 7~9시에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전통문학강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만나다>를 듣는다. 나는 그 강좌 안내를 8월 해남 첫 도보순례 때 읍내 현수막에서 보았다. 지난 6월 도보순례 때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들러 사의재에서 묵었기에 다산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런데 그 강좌를 백련재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서 하는 것이었다. 

 

집필해야 할 저녁 시간에 하는 강좌라 고민 끝에 참석해 본 첫날, 나는 행운을 잡았다는 걸 알았다. 강진다산실학연구원 윤석호 교수는 자신이 박사가 되기까지 눈물겹게 공부한 깊이 있고 풍부한 지식을 해남의 연로하신 30여 명의 수강생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옆 백련재에 묵고 있는 나에게까지 주옥같은 가르침을 퍼주었다. 나는 책으로 알자면 수십 년을 공부해도 이해할까 말까 한 지식을 편히 앉아서 고스란히 배웠다. 

 

작년 토지문화관에 이어 이곳이 두 번째 레지던스지만, 백련재 문학의 집이 전국 그 어느 레지던스와 비교해 최고라고 할 만한 조건을 말하라면 단연코 이 강좌를 꼽겠다. 나는 해남읍 연동리의 지하 영상실에 앉아서 강진의 다산과 백련사 혜장과 대흥사 일지암 초의의 옷자락 끝을 만졌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반달이 다 되어가는 상현달과 흰 구름 한 조각과 별 몇 개가 반짝이는 하늘 아래 깜깜한 땅끝순례문학관을 가로질러 가는데 벅차오르는 가슴에 어둠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子曰자왈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타인에 의해 속절없이 좌지우지되는 사랑을 찾느니 차라리 혼자 배워 깨닫는 공부를 하는 편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데는 그날 오후 텃밭에서의 일도 한몫했다. 

 

 

화창한 시월 오전, 상주 작가님과 박 주사님이 내게 배추밭 벌레를 어찌할 거냐고 물었다. 내게 의사를 물어봐 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백련재 텃밭에서 나는 빈 밭을 매고 씨를 뿌리고 모종이나 심었지 여사님이 물도 주시고 비료도 뿌려주셨다. 가끔 잡초나 뽑고 대파와 막 돋아나는 상추나 뜯어다 먹었지 내가 뿌리고 심은 무와 배추에 대한 소유권이 없으므로 경작권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화학비료나 농약은 쓰고 싶지 않았다. 남원의 나무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더니 은행 퇴치법과 벌레잡이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박 주사님이 친환경유용미생물 액상 사료를 구해 오셨다. 다섯 가지 액상 사료들을 물에 희석해서 밭 전체에 뿌려주었다. 

심기만 하고 가꾸지도 거두지도 못했던 지난 정원들의 시간이 떠올랐다. 내 소유가 아니니 소유주에 의해 좌우되는 게 당연했다.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오고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가꾸고 거둘 기회가 생겼다. 적어도 12월까지는. 

사유재산을 원치 않으니 처음부터 소유권엔 관심도 없었다. 하는 데까지 하고 못 하면 말았다. 물질에 대한 욕심도 없어서 먹게 되면 먹고 말면 말았다. 그런데 심은 자에게 가꾸고 거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산책 후, 배추벌레를 잡았다. 배추벌레가 배추를 먹는 게 아까워서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심은 것을 거둬보고 싶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월든>, p. 251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만나다> 시간에 배웠다. 

<맹자(孟子)>의 등문공장(滕文公章)에 나오는 ‘有恒産者有恒心’(항산이 있는 자가 항심이 있다). 위민(爲民)은 항심(恒心)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은 항상(恒常) 항산(恒産)이 있어야 한다고. 먹고 살 기반 마련이 인정(仁政)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얼 먹고 사는가. 

 

다산이 윤종문에게 주는 증언문에 이렇게 나온다. 

 

가난한 선비가 산업을 경영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경작은 너무 힘들고 장사는 명예가 손상되니, 손수 원포(園圃)를 가꾸고 희귀한 과일과 맛좋은 채소를 심는다면 왕융(王戎)처럼 찬리(鑽李)하고 운경(雲卿)처럼 참외를 팔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으며 좋은 꽃과 기이한 대나무로 아기자기 꾸며보는 것도 지모(知謨) 있는 일이다.

 

정원과 텃밭에 과일과 채소를 심고 좋은 꽃과 대나무로 아기자기 꾸며보라니……. 내가 늘 꿈꾸던 풍경 아닌가. 나는 지금 백련재에서 공부하며 내 정원이 생길 날을 위한 연습을 하는 중이다. 

 

*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이틀 후……. 

 

*

 

노랑이는 세 마리 아기고양이 중 가장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저녁에 내 방에 불이 켜있으면 창호지 문과 방충망 사이까지 들어와 앉아있곤 했다. 

한 번은 문이 열려있을 때 방 안까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세 마리 중 힘은 가장 약했지만 호기심만은 제일 왕성해서 노랑이가 먼저 무언가에 다가가면 그제야 나머지 두 마리 고양이들이 따라오곤 했다. 

노랑이는 그래서 나를 보는 듯했다. 

작고 여리고 힘도 없어서 번번이 다른 아이들에게 먹이를 뺏기지만 호기심만큼은 왕성해서 힘센 고양이들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방에 겁도 없이 다가가는 고양이. 

 

나는 세 마리 고양이들에게 순서대로 먹이를 던져줬었다. 

제일 먼저 노랑, 다음은 까(망)하(양), 마지막엔 요즘 까하를 제치고 더 먹성이 좋아진 회(색). 그리고 나선 어미 고양이 (백)련재-오른쪽 겨드랑이 상처 때문에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이름을 묻기에 급조한 이름. 

 

그날 밤, 내 툇마루 앞에 온 고양이들에게 종합보양간식을 세 알씩 던져주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늦은 밤 방문을 긁는 소리가 난 듯했지만 열어보지 않았다. 

이상하게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났다. 

오전에 빨래 널러 가보니 툇마루 아래 까하가 뱀을 잡아 놓고 있었다. 

고양이가 뱀도 잡는구나 했다. 

 

낮에 어미 고양이 연재의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주자고 부르신 월실 선생님께서 도망치는 연재에게 약 발라주기를 포기하신 후, 

 

노랑이가 죽었다, 고 하셨다. 

독사에게 물려서. 

몇 시간 동안 경련을 일으키다 죽었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묻어주셨다고. 

 

노랑이는 세 마리 아기고양이 중 아마 제일 먼저 뱀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리고는 대표로 물렸을 것이다. 

나머지 두 마리는 노랑이 덕에 물리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외롭다, 고독하다 따위의 단어로 감정을 단순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다시 아침이면 아침대로 쉬지 않고 글을 써도 미래라곤 보이지 않는 여기서 나에게 친구라고는 고양이들뿐이었다. 

유독 혼자였던 추석날 밤에도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고는 달을 기다렸고, 해남에서 진도까지 홀로 다 걸은 날도 고양이들에게 내가 먹을 훈제연어를 나눠주며 자축을 했었다.

  

 

저녁이 어스름 내릴 무렵, 나는 선생님께 노랑이를 어디에 묻어주셨냐고 여쭤보았다. 가서 꽃과 간식이라도 뿌려주며 애도하고 싶었다. 전날 밤에 간식이라도 아끼지 말고 많이 줄 걸, 후회스러웠다.

알려주지 않으셨다. 

나는 울었다. 

엉엉 울면서 땅끝순례문학관을 돌아서 백련재로 왔는데 연재랑 회랑 수고양이가 마치 날 마중이라도 나오듯 주차장으로 나오고 있었다. 잠자리를 찾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연재는 그 밤에 몸을 풀지도……. 배가 많이 불러 오늘내일하는 중이었다. 

 

어두운 백련재 내 방 옆에는 까하가 앉아있었다. 

뱀을 잡아 노랑이의 복수를 해 준 까하에게 간식을, 댓돌 위에 올려 놓아주었다. 

 

다음 날 아침, 까하와 회가 내 방 툇마루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 

간식을 나눠주자 어디선가 연재도 뒤뚱거리며 나타났다. 

 

 

노랑이가 간 지 사흘 후, 나는 언젠가 어디론가 갈지도 모르는 까하와 회에게 간식을 주다가 둘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둘은 백련재를 벗어나 길 건너 아래 무덤가에서 놀고 있었다. 사람의 직감이란 참으로 이상하기도 하지. 난 그 비탈길을 내려갔다. 아기고양이 두 마리는 내 발소리에 벌써 다른 데로 가버리고 무덤을 지나친 내 눈에는 노랑이가 보였다. 둘은 죽은 제 혈육 근처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랑이 여기 있네.”

그 여리고 깜찍하던 노랑이는 뻣뻣하게 누워 있었고 그 위로 파리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그제야 월실 선생님이 묻어주신 데를 알려주지 않으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구덩이에 놓아두신 거였으니 애초에 묻어주신 데가 없었던 거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월실 선생님은 어미고양이인 연재가 백련재 창고에서 몸을 풀자마자, 그러니까 새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거두신 분이다. 누구보다 고양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지만, 자연의 법칙이 무엇인지 역시 잘 아실 터이다. 그 자리는 노랑이가 흙으로 돌아가기에 어울리는 자리였다.

나는 차로 가서 연장들을 가져왔다. 노랑이에게 마른 검불을 덮고 무덤가 흙을 호미로 파서 손으로 퍼서 덮어주었다. 오래 쓴 오른쪽 목장갑 손가락이 쩍 달라붙었지만 흙을 퍼 나르는 데는 무리 없었다. 내 울음은 짧았다. 동그랗게 무덤 모양이 간신히 갖춰지자 톱과 낫으로 근처 벌목된 나무를 치우고 덩굴을 쳐냈다. 너무 그늘 지면 노랑이가 더 추울 것 같아서. 이름 모를 묘지도 듬성듬성 벌초했다. 노랑이 주변을 정돈해 주고 싶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고 노랑이 무덤 위에 내 방에 있던 금잔화 한 송이와 간식 일곱 알을 올려 주었다. 그것으로 내 애도의식을 마쳤다. 

 

 

지난 8월, 백련재 앞에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가득 있었다. 꽃병에 꽂는 꽃 한 송이도 망설이다 이미 상한 걸 골라 꺾는 내게 밭의 코스모스는 쳐다보기만 하는 꽃이었다. 그런데 9월이 되자마자 예초기 소리가 진동하더니 코스모스 밭이 싹 사라진 걸 보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소중히 여기던 생명이 사라질 때마다 놀라고 슬퍼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애달프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존재에게 내어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준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므로. 

 

 

* 정말이지 이상한 건 노랑이 무덤 위 간식 일곱 알이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들도 제삿밥엔 입을 대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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