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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저물녘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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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脫線) 2

posted Apr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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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오낙영
발행호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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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우는 밤새도록 토굴 앞마당의 좁은 평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아직은 서늘한 밤기운에다 바다에서 피어올라온 해무에 먹물 옷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옅어진 해무를 뚫고 직진하는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가 이곳 작은 포구의 한쪽 귀퉁이에 둥지를 튼 지도 십 오 년 여를 넘기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는 포교랍시고 뱃사람들 틈에 끼어 중 냄새를 풍기며 먹물깨나 뿌려대곤 했지만, 서너 해를 지나면서는 오히려 그들의 잔인한 팔뚝 근육과 험한 욕지거리로 점철된 대화 속에서 펄떡거리며 살아 숨 쉬는 법어를 보았었다. 현란한 수사와 애매한 개념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교의의 숨은 속살을 한 번 보겠다고, 선가에 풍문으로만 전해지는 그 속살의 향기와 촉감에 정신을 잃어 보겠다고 수마의 멱을 틀어쥐고 정진을 했지만, 정작 풍년옥 술판에서 보았던 가시투성이의 줄기 끝에 간신히 매달려 핀 들꽃의 역한 내에서 관음이 들렸던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성숙의 끝에 다다른 석류가 한순간 저절로 툭 터지듯, 욕지거리로 포장된 저들의 거친 만담에 희열 가득한 법어가 숨어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깨치고 나면 더 이상 닦을 것도 없다던 도의 경지는 말짱 헛 거였던 것이다. 번뇌는 여전하였고 망상은 수시로 고개를 들어 혀를 빼어 물고 희롱했다. 풍년옥 술판에서 얻을 수 있는 경지는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온몸에 비린내를 풍기며 간간이 팔만 사천 법문의 그림자를 일별하던 어부의 언어는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

감우는 절망했고 입고 있던 누더기 승복을 벗어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리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이끌고 포구로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었다. 포구의 사람들은 드디어 그가 미쳐간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는 욕지거리를 퍼부었고, 어떤 이는 손가락질로 비난을 대신하였으며, 개중에 어떤 이는 그의 옆에서 같이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러다 뒤통수가 무엇엔가 뜨거워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지서의 유치장이었고, 몸엔 헐렁한 청색 체육복이 걸쳐져 있었다. 지서장의 훈계에 이어 최순경이 들이민 알 수 없는 서류에 억지로 지장을 찍고 나서야 지서를 나설 수 있었다. 중천에서 내리 쏟아붓는 햇살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그 후로 그는 꼬박 보름을 토굴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대로 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건 참선도 아니었고 화두도 없었다. 그저 하나의 무정물이 거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열하루를 바르도에 처한 축생의 몸이 되었다고 여겨졌다. 온몸으로 수효를 가늠할 수 없는 바늘이 수시로 날아와 박혔고, 극한을 가름하는 통증에 대갈통이 터져 버렸으면 하고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그랬던 것 같았다. 사방에서는 세상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끔찍한 비명이 그의 몸을 휘감았고, 현란한 어둠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물질이 그의 눈으로 견딜 수 없는 통증과 함께 쏟아져 들어왔다. 차라리 의식을 놓아버렸으면 하였지만 그러나 그의 의식은 점점 명료하고 오롯해져 갔다. 열이틀 째 되는 날에 홀연 형언할 수 없이 감미로운 음악과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촉감과 한없이 평안해지는 향기가 거의 동시에 그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때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너의 어리석음을 거부하지 말거라. 네 명호가 감우(堪愚) 아니더냐?'

그는 그대로 열반에 드는 것 같았다.

'어허! 다비목도 준비 안 했는데……'

죽은 그를 발견한 것은 풍년옥 찬모 현씨와 삼번 리어카꾼 김씨였다. 그러니까 감우가 무정물이 되어 있은 지 보름이 되는 날 새벽이라고 그랬다. 아침 일찍 부둣가로 나왔는데, 감우의 토굴에서 한 줄기 빛이 솟구쳐 오르더라고 했다.

"뉘 것들이 안 찾아왔으면 난 부처가 되아 있었을 터인데, 내 신세를 아조 조져 놨구나!"

삽시간에 감우가 득도했다는 소문이 포구일대를 싸고돌았다. 그러자 토굴로 향하는 좁은 산길은 금방 봉물 보자기를 든 사람들로 시장골목이 되었고, 멀리에서 번쩍번쩍하는 고급승용차에 몸을 의지해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생겨나자, 그는 홀연히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가 다시 비어있던 토굴에 나타나 향을 피운 건 서너 해가 흐른 뒤였다. 그가 사라지자 입맛을 다시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잦아들었고, 그를 내세워 대규모 불사를 기획하던 교구본사가 그의 승적을 박탈했다는 풍문조차 희미해지던 때였다. 몰골은 더 처참해져 있었다. 뼈다귀 위에 가죽을 걸쳐놓은 모습이었다. 그는 예불과 참선만 할 뿐 법회도 열지 않았고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들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시님은 깨달으신규?'하고 묻는 대중 앞에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일 수 있는지도 터무니없는 일일뿐더러, 그렇게 묻는 그들에게서 아주 짧은 순간 보여졌던 부처의 모습이 헛그림자는 아니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단박에 확 깨우치먼 더 이상 닦을 것도 읎다메유.'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들에게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생각뿐이었다. 풍년옥에서 술병깨나 깨트리던 선부들은 거울을 깨뜨려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건만, 정작 자신은 자꾸 거울을 사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헛갈리던 것이었다.

'어떤 시러베아들 눔이 그런 소리를 했는 디? 기껏 육조의 흉내만 내면서 살아 온 것들이, 지 목소리도 못 내는 것들이, 넘의 목소리 흉내나 내먼서 강아지 풀 뜯어먹다 사레들려 켁켁거리는 소리나 허고 있지 않던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5.

 

감우는 토굴을 나서면서 일주문 삼고 있는 마당 입구의 나무 밑에서 토굴 법당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세 번 허리를 숙였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아예 하직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한 통의 부고가 전해졌다.

'도를 깨쳤다는 선사들이 또렷한 정신을 잡고 있다가 열반에 드는 게 아니라, 혼수상태에서 절명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라며 산문을 박차고 나갔던 사형이 열반에 들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새벽 예불 중에 날아들었던 것이다.

'허! 사형이 선수를 쳤구나.'

사형이 총림의 선방에서 수행할 때였다. 어느 해인가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조실스님의 법문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혈기 방장한 사형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뛰어나가 조실스님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애매한 수사로 숨통을 죄는 죽은 언어를 법문이라 던지지 말고, 숨통을 틔워주는 명료한 길을 내 손바닥 위에 놓아주시오!'라며 소리쳤다가 조실의 문도로부터 거의 초주검 되도록 폭행을 당했었다. 당연히 호법국에서 징계절차를 밟았고 산문출송이 결정되었다. 그때 은사스님이 나서서 징계를 만류했고, 조실스님도 징계철회를 요구했다. 대중은 조실스님의 품 넓은 도력의 은사라며 탄복했으나, 한 편에서는 그의 얕은 정치감각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빈정대었다.

사형은 육조단경이나 달달 외워 마치 자신의 언어인양 포장하여 대중을 기만하는 선가의 풍조에 크게 실망하였고, 간화선만 최상의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화석덩어리들을 깨부수고 싶어 했다. 그러다 조실스님이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좌탈입망은커녕 혼수상태로 입적하자, 법당에서 한바탕 춤사위를 선보이고는 그대로 산문을 뛰쳐나갔던 것이다.

감우는 승객이라곤 그뿐인 버스를 타고 읍내 터미널로 향했다.

다비랍시고 번거롭게 하지 말고 화장장에서 육신을 해제하라고 했다는 상좌의 말을 떠올리곤, '거기 갈 돈은 마련해 놓으셨나 보구려!'하고 차창 밖 허공에 대고 말을 던졌다. 차창을 통해 불어드는 바람이 더없이 상쾌했다. 도의 길에서 벗어난 파계승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 그는 크게 웃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이 땅의 선가에 가득한 게 그런 도인들 아닌가? 그저 혜능이 던져준 지도만 유일한 방편이라고 따라가지. 그러고 보면 탈선이야말로 수도자가 가야 할 길 아닌가?'라며, '가끔은 나 같은 또라이가 나와 줘야 대로를 질주하는 자들이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까?'라 말하며 크게 웃었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토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아, 저 하늘의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느닷없이 임희숙 명창이 부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란 노래가 정수리를 뚫고 내리 꽂혔다. 노래는 임희숙 명창의 것이고 백창우 시인의 것이었지만, 목소리는 사형의 것이었다. 원래 그의 독경은 젊은 보살들이 몰래 녹음해 듣고 다닐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늙은 보살들이 좋아하는 청아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인생의 신산을 다 맛본 듯 심사를 훑어 긁는 것 같은 그의 목소리는 젊은 보살들이 좋아했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세속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일까. '시다림염불도 아니고 좋아하던 화엄경도 아니고 유행가라니, 그것도 색기 충만한 여가수의…' 감우는 기분 좋은 당혹스러움에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무한 반복버튼을 눌러 놓은 듯 끝없이 반복되는 환청은 어느덧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그의 낱낱의 뇌세포에 아주 들어박힌 듯했다. 읍내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홍주행 버스에 올랐다. 이 번에도 승객은 꼴랑 그 혼자였다. 버스는 지루한 듯 웅크리고 있다가 정시에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막 터미널을 벗어나 외곽 간선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 무렵이었다. 감우의 눈에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헉! 저거 삼번 아닌가? 그 옆에 있는 건 풍년옥 찬모?'

차창 밖의 남녀는 다름이 아니라 삼번 리어카꾼 김씨와 풍년옥 현씨였다. 그들은 제법 큼직한 손잡이가 달린 캐리어 가방을 끌고 있었다. 그들은 더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 여기도 탈선?'

감우는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애써 눈에 담아두려 했다. 이제야 토굴 속에서 돌덩어리로 변해가는 그를 처음 발견한 것이 하필 그들이었는지, 그리고 포구 등받이 없는 긴 의자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맨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겠노라 선언하던 김씨의 낯선 모습이 이해되었다.

'김씨가 전생의 족쇄를 풀어낸 모양이구먼.'

빠르게 달리는 버스의 속도로 인해 차창 밖 근경은 뭉그러져 갔지만, 원경은 그대로 또렷하였다.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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