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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終] 고상균의 男다른 성교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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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가정 만들기

posted Oct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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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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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소장님, 이번 건은 좀 복잡한데요.......

 

청소년 성/평등 교육이라는, 그 넓고도 넓은 바다에 이제 막 한 발을 담근 내게 늘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를 제안하는 지역 청소년성문화센터장님이 한 분 계시다. 지난해에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 가해 청소년들에 대한 집단 상담을 의뢰하시더니만, 올 8월엔, 이름은 들어보셨나? 가해자와 부모 상담! 심지어 가해자는 초등학교 1학년이니 그나마 경험이 '초큼' 있는 청소년도 아닌 아동.......

 

제가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내게까지 연락이 왔을까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오지랖, 아직 본 적도 없는 그 가정에 대한 염려가 덜컥 하겠다고 답변하기에 이르렀다.

 

막상 한다고 대답한 후부터 점점 걱정은 가중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로부터 시작된 자책으로 여러 날을 보낸 다음에야 '이제 와서 어쩔? 뭐라도 준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심기일전! 잘해봅시다!

 

2

 

가해 아동은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그는 가슴을 꼬집거나 자신의 성기를 수 회 드러냈다. 여러 사건이 이어지자 학교가 인지하게 되었고, 곧 지역 청소년성문화센터로 상담접수가 되었던 거다.

 

다소 긴장된 표정의 양육인 두 명과 가해자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주 많은 경험이 있진 않지만, 가해자 상담을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멀쩡함에 내심 놀라고, 표현은 다양하지만 거의 대부분에게도 발견하게 되는 변명과 저항을 보며 고민하게 된다. 이 나이 어린 가해자 역시 그러했다. 총 네 번의 만남 동안 태권도, 게임 등에 대해서는 줄줄 말하더니만,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거나 그림을 그리도록 하면 '몰라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반복되는 말들에 무슨 청문회 나간 대기업 회장님이나 정치인이 눈앞에 앉아있는 줄 알았다.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잘못한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피해를 겪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생각되었다.

 

아울러 그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그림치료 전문가의 도움 하에 몇 가지 그리기를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사실, 그는 늘 손과 발이 없는 사람을 그린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투명인간이라고 지칭한 자신은 팔다리도 거의 없는 형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이 없고 창문은 매우 조그맣고 불규칙한 집, 회색 빛 로봇인 아빠, 게임 캐릭터 엄마, 개(犬)인 동생 등 가족 그림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림 여섯 장을 가지고 심리상태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또 연령상 그저 장난으로 그리 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소통과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냥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그것은 한 편 함께 온 양육자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해자 알기는 가족 알기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3

 

양육인 중 아빠는 어린 시절, 만취 후 온 가족에 대한 구타를 일삼는 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자신이 맞거나 어머니가 맞는 모습을 봐야 했음을 어렵게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만은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고, 가정은 반드시 화목해야 한다고, 자신은 그 가정을 위해 헌신하겠다 수없이 다짐했었다는 말에 나는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그 어려운 유년과 청소년시기를 지나 성인이 된 후,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다. 이는 양육인들을 더욱 이해하기 위해 병행했던 다면적인성검사와 문장완성검사 등을 통해 확인되었던 인내심, 그 원초적 기질도 큰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삶의 터전도 번듯하게 마련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똘망똘망한 두 아들, 외형상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견디고 홀로 판단할 뿐,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책임감 있는 자신의 헌신을 통해 벌어온 돈으로 아내가 편하게 집에 있으면 행복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외향적이고 도전을 통해 성취한 사회적 활동이 삶의 원동력이었던 아내는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사직하고 옮겨온 도시, 아무도 모르는 아파트 숲에 갇힌 채 고독해지기 시작했다. 남모르게 재취업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어지는 출산과 육아로 점점 시간도, 자신감도 없어졌다. 돈 벌어오는 것은 남자의 일, 집안일은 여자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고 또 과묵한 남편과 가사분담에 대한 상의는 쉽지 않았다.

 

또 남편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인 책임감을 아이에게도 강조했다. 게임은 주말에 하루 두 시간씩, 공부는 하루 얼마씩 등, 정해진 목표를 이행토록 강하게 요구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은 소중한 가정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약속이 아빠가 일방적으로 세우고 아이에게 통보한 것이었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엎드려뻗쳐나 회초리 체벌을 행했다는 것이다. 본인은 책임감 있고 성실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에게 아빠는 지난 시절 그토록 자신이 닮지 않겠다 다짐했던 아버지, 폭력적이고 일방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4

 

무엇보다 제가 변해야겠네요.

 

4번의 만남을 통해 양육인 아빠는 자신의 일방성이 소통을 단절시켰고, 아내인 여성에 대해 남성이 몹시도 위계적이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역할을 찾지 못한 채 우울의 자리가 깊어졌고, 아이는 친구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관심은 많지만 잘 얘기를 나누지 못한다'는 담임교사의 평가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가해아동에게 다시 왜 그랬는지 물었다.

 

꼬집은 건.... 뭘 말하고 싶었는데, 나를 밀쳐서 그랬어요. 소중이를 보여준 건... 같이 놀려고 그런 거예요. 정말 같이 놀려고 그런 건데요?

 

우선 집안일에 대해 양육인 두 사람은 논의를 통해 나눠보기로 했다. 아울러 아내는 적극적으로 직장을 알아보고, 남편은 이를 지원키로 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구술하는 동화와 성평등 영상을 보며 가해아동은 '아! 물어보지 않았어요.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은 잘못이네요.'라며 자신의 행동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깨달아가기 시작했고, 이를 피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아 사과했다. 물론, 엄청 간단한 문장이긴 했지만 말이다.

 

모든 일이 다 부모님 또 가정으로 환원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 사람의 성장에는 혈연적 관계뿐 아니라, 제도 및 사회의 여러 관계들이 영향을 끼칠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구성원의 젠더위계, 소통의 부재를 두고 성평등한 관계 맺기를 구현해 가는 것 역시 요원한 일일 것임에 분명하다. 가족 구성원들의 민주적 소통경험은 추후 넓어질 여러 관계들을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평등한 세상을 염원한다면, 우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존중하고, 내가 속한 가정공동체의 내적 소통이 평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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