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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책이 가슴에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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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 좀 남다른 어머니, 또는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

posted Sep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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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서옥경
글쓴이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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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Olive Kitteridge)

- 좀 남다른 어머니, 또는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

 

 

누가 말했던가. 말에 영혼이 깃든다고. 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행여 내 말 한마디에 남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편이다. 조심한다고 해도 뒤돌아보면 말실수로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퍼붓고 싶을 때도 있지만 참고 견딘다. 소심한 탓도 있고 자신감 결여일 수도 있다.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싶다. 그런 사람은 한결 편하게 살 것 같아 부럽기까지 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주인공 올리버는 정화되지 않은 말을 마구 뱉어낸다. 은근히 대리만족을 하다가도 너무 낯설어 조바심이 일어날 정도다.

 

소설은 바닷가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집에 사는 듯 미주알고주알 서로 속속들이 환하게 알고 지낸다. 사람들은 슬픔, 고통, 상실, 사랑 등을 마주하는 바다 물결에 실어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연대하며 살아간다. 젊음과 사투를 벌이고, 중년의 위기를 통과하는 다양한 삶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속내를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보는듯하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는 독특한 캐릭터인 주인공 올리브가 중심에 있다. 그녀는 불같은 성격에 아무도 참아내지 못하고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남에게 사과할 줄 모르고 결코 울지 않을 것 같은 여자다. 올리브는 학교 수학 선생이었다. 학생들도 그녀를 무서워했고 아들도 엄마를 무서워하며 자랐다. 선량하고 사람 좋은 남편이 어떻게 그녀를 참아냈는지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가고 싶으면 가라고 올리브답게 말한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위로받고자 하지만 잘못인 줄 금방 깨닫기도 한다. 너무 솔직하게 속을 드러내어 거칠게 보이는 그녀도 내면의 비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올리브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보이고 등을 돌린 아들을 그리워하는 70대 노인이 된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사랑했지만, 방식이 남다를 뿐 아내와 엄마로서 성실하게 살았다.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뭔가를 깨닫는 것처럼 올리브도 흐르는 세월 속에서 시나브로 성장해 간다. 며느리의 옷에 매직을 긋고 구두를 꺼내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괴팍스러운 기운이 옅어진 자리에는 외로움만 남는다. 그녀는 외로움이 너무 깊어 치과의사의 친절한 손길에 샘솟는 눈물을 삼킬정도다. 소설의 속편인 "다시, 올리브"에서 유명한 시인이 된 제자의 시에서도 올리브가 감춰둔 외로움이 잘 드러난다. "삼십사 년 전 내게 수학을 가르쳐준 누군가는/나를 겁에 질리게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겁에 질려 있었다/그녀는 내가 아침 먹는 자리로 와서 앞에 앉았다/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채/내가 늘 외로움을 탔다고 말했다/그 말이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줄어든 나이가 되고 보니 외롭고 겁에 질린 올리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늙으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되어 외로움이 슬그머니 똬리를 튼다. 하지만 외로워도 외롭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외로움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고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어느 시에서 위로받는다. 그래도 매 순간이 축복이고 기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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