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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언니의 깨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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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언니의 깨는 일상 7 - 다큐시각(Docu Sense*)으로 일상을 보다

posted Sep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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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시각(Docu Sense*)으로 일상을 보다

 

 

‘인생은 그 자체가 완벽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렇다면 그 작가/감독은 누구일가?

질문을 여기 남겨두고 가보자.

 

우리 각자는 아니 내 자신은 살아온 생을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순간들, 필름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를 눈여겨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지나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수십 년이나 쌓이면서 어찌 할 바 모르다가 우연히 내 자신의 생애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 DMZ국제다큐영화제(DMZ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가 2017년에 제9차 세계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전례 없던 ‘Senior Project’를 하게 되었다. 여기 고양시민도 아닌 내가 5명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기회는 내 삶의 작가이신 그 분이 주신 거라고 믿어진다.  기도 없는 안타까움까지 포착하시는 그 분이시니까........ 이래저래 나는 다큐와 더 가까워지는 기회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큐는 현실을 다루는 장르이다.’

다큐에서 ‘현실’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상황 근저에 흐르는 그 무엇까지 포착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개의 현실세계를 다루어야 한다. 첫째로 주어진 현실, 소재(fact)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카메라에 담긴(찍힌) 현실, 이는 선택되어 frame안에 있다. 셋째로 편집으로 재구성된 현실, 이는 기획된 것이다. 다큐의 특성이기도 한 현실을 다룬다는 말은 현재의 삶을 다룬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의 삶’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들어 있어 복잡해진다. 과거든 미래든 지금 내 안에, 나의 기억, 나의 의식, 나의 느낌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물리칠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본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다큐에서는 가장 어려운 핵심이다. 눈만 뜨고 생물학적으로 보는 것(Look)은 다큐에서는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하고 선택하는 행위가 함께 갈 때 ‘본다’(See)고 한다. 이렇게 본 것을 작가는 통상적인 해석을 넘어 ‘재해석’을 해야 한다. 그 재해석 없이는 다큐를 세상에 내 놓을 이유가 없다. 이때 감독/작가는 독창성과 자기만의 스타일이 담긴 작품을 자식처럼 세상에 내 놓는다. 

       

필자가 다큐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다큐자체를 소개하려는 뜻보다 다른 관심 때문이다. 내 삶의 영역이 되어 온 다큐멘터리와 스토리텔링과 설교가 가진 공통점과 각각 지닌 특성이 필자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storytelling과 설교(preaching 아닌 Sermon making), 다큐영화 (Documentary film) 만들기-이 세 분야는 각각의 개성을 지니면서도 그 목적이 같은 예술장르라는 점이다. 여기 ‘영언니의 깨는 일상’ 시리즈에서는 이 세 분야를 개성적으로 다루기보다 다큐멘터리 시각(Docu Sense)을 살려 ‘일상’의 기록 ‘Docu Journal’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깨어나(awaken) 그 목표를 향해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Docu도 스토리텔링의 한 형태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다큐는 작가가 ‘본 현실’을 영상매체(film)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그러나 소재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선택과 재구성 편집을 통해 주관적 해석을 하므로 메시지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다. 용즘 다큐영화들이 그 시장을 확보하는 일환으로 경쟁과정에서 관객들의 인기투표도 실시하고 상도 준다. 반면에 필자가 개발한 스토리텔링은 ‘삶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다. 구성이나 편집이나 해석을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이 스토리텔링은 듣는 이의 몫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청중이 아닌 경청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의 비워진 마음에 storyteller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된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태도는 성스러움의 경지이기에 ‘거룩한 경청’(Holy listening)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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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02년 효순, 미선 사고’ 직후 필자는 그들의 사진을 들고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세계 비폭력평화연대(Global Nonviolent Peaceforce) 국제대회에 참석. 여러 나라 전쟁폭력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기획, 공연했다.)

 

 

이 스토리텔링 방식에서는

이 듣는 이(들)은 이야기 도중에 질문을 하거나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다. 인터뷰처럼 주고받는 대화형식이 아니다. 이야기를 하는 그 행위 자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들은 후에 그 이야기와 자신과의 만남의 경험을 나눈다. 이런 feedback을 할 때는 절대로 평가(critics)나 판단(judge)하지 않는다. 감성적으로 후원 해준다. 이것은 예술행위가 아니고 performance도 아니다. 인기투표도 상품도 없다. 서구에서 전통적으로 전문직으로 하는 스토리텔링 방식과 다르다. 그 전통방식은 예술행위로 하기 때문에 청중이 평가 할 수 있다. 그들은 훈련된 테크닉을 사용한다.

다큐는 ‘예술작업’이요, 스토리텔링은 ‘치유작업’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최종목표는 같다. 즉 자기발견과 사회적 변화,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설교가 지향하는 것과도 같아 내게 더욱 흥미롭다. 

 

‘일상의 과제 Docu Journal*’ 쓰기, 찍기, 그리기 만들기 등등....

다큐적 시각(Sense)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면 어떨까? 

이것이 오늘 나의 질문이다.

자신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고, 신앙적 해석을 하며 살아 갈 때 날마다 새로움을 경험 할 수 있으리라. 삶의 단편마다 의미 있는 한 장면으로 어쩌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기억 될 삶을 우리는 오늘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카메라를 대듯 마음의 frame안에 들어온 장면을 자세히 보자. Close Up도 해 보고 사라져 버리게도(fade out) 해보자. 우리의 하루 삶속에서 한 장면만 건저도 좋다. 그 그림/장면안에 자신의 초상화가 보이는가? 자기를 보고 대화도 해 보자. 지극히 평범한 날이 비범해 질 수도 있다. 스쳐지나 갈 번 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문득 대단한 의미를 지닌 것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누가 이런 자세로 살 수 있을까?

 

날마다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사실상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중에 여러종류의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고 사귀고 대화도한다.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찬처럼. 우리들의 단 하루의 삶도 족히 장편소설감이 되고 남는다. 장편 또는 단편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가슴에 깊이 새겨진 대목이 있다. 그 감동적인 독후감을 누구와 나누고 싶을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하루 여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그 날의 행복감 또는 견디기 힘들었던 일등을 되새기게 된다. 이 때 마음속에 찍힌 사진이나 동영상을 놓고 Docu적 process를 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 복이 있다!’

자신이나 사건을 고요히 본다(See) 자기발견(Self-discovery) ▶ 자기성찰(Reflection) ▶ 자기변화(Transform) ▶ 성화(Santification) ▶ 일상적자기캐랙터형성(Create a character) ▶ 당신 생의 Documentary에서 이 주인공을 놓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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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허티(가운데), 그리어슨(오른쪽)

 

 

‘다큐(Documentary)의 창시자들’

이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글을 끝내기 전에 다큐의 선구자들을 소개한다.

‘Documentary’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영화감독 죤 그리어슨(John Grierson)이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1926년 “The New York Sun”지에서 미국의 기록영화 감독이자 다큐의 아버지로 알려진 플래허티(Robert J. Flaherty)의 작품을 언급하며 처음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영국에 돌아가 기록영화 운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를 ‘실제를 창조적으로 다루는 작업’(a 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y)이라고 정의하였다. 현실이 대상인 다큐도 주관적의도와 선택을 배제 할 수 없는 모순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Docu Journal을 위한 Tip’

마지막으로 독자들께서 다큐적 감각(Docu Sense*)으로 사물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Docu Journal’ 작업을 하실 때 아래 소개하는 다양성이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2001년 

빌 니콜스(Bill Nichols)가 분류한 6가지 양식들이다. 새로운 것을 첨가 할 여지는 항상 있다. 

각자의 선택과 자기다운 style을 발전 시켜보기 바라며 실천을 기대 해본다.

1. 시적(Poetic)

2. 설명적(Expository)

3. 참여적(Participatory)

4. 관찰적(Observatioal)

5. 자기 반영적(Reflexive)

6. 실천적(Performative)

 

*’Docu Sense’와 ‘Docu Journal’은 없는 말로 알고, 필자가 필요해서 

처음 만들어 낸 어휘이다. 영어라 유감이나 새로운 생각에는 새 단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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