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정읍 시골집을 황토벽돌집으로 리모델링하여 이사를 하였다. 정읍은 1900년 초부터 시조부모님이 사시던 곳으로 수년간 잡초가 우거진 폐가였다. 거의 새로 짓다시피 하였건만 미비한 곳이 남아 추가 보강공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1월8일 새벽부터 내린 눈은 온 세상을 은백색으로 덮어버렸다. 강원도 산골도 아니고 정읍에서 이런 설경을 보다니! 공사하기로 한 건축업자는 눈이 내려서, 한파가 심해서, 그리고 자재 주문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더니 공사도 다음 주로 미루어졌다.
4박5일간 눈 속에 홀로 갇혔다. 1월 8일부터 12일까지 이렇게 밤낮으로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는 풍경을 보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전북도청, 행정안전부, 고창군청, 부안군청, 정읍시청 등에서 긴급 <안전 안내문자>가 연속으로 들어온다. 대설주의보, 대설경보, 한파경보 및 주의보 등. 기와 밑으로 내려온 기다린 고드름을 본지 몇 십년만이다.
옆지기는 일 때문에 일터가 있는 파주로 올라가고 혼자였다. 아직 TV도 인터넷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누가 쓰다 만 포터블 CD 플레이어로 겨우 전주 KBS FM 방송 주파수를 맞추어 음악을 들으면서 종일 일을 했다. 물건을 새로 사지 않고 있는 것 재활용하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단순한 삶(?)을 추구하건만, 새 살림을 마련하는 데는 소소한 거 하나도 다 필요하다. 리모델링 공사 후 먼지 청소하기, 오래된 가구 먼지 털고 얼룩 지우고 옮기기, 남아있던 중고 가전제품과 그릇들을 다시 쓰기 위해 닦기, 물건 정리하기, 세탁하기, 시골집 천정이 낮아 긴 커튼을 짧게 잘라 재봉틀 돌리기, 커튼 달기. 못 박기 등. 일생 동안 이렇게 집중적으로 가사노동을 해본 것도 난생 처음이다. 잘 때는 안 쓰던 근육들이 아파온다.
앞마당 뒷마당의 눈이 점점 쌓여오고 찾는 사람 없고 밤이 되자 교교한 마을 가로등만이 앞마당 소나무를 비추었다. 흙담에 쌓인 눈이 가지런하게 길게 늘어선 모습이 예쁘기도 정겹기도 하다. 말을 나눌 사람 없이 조용히 혼자 있으려니 방해받지 않고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인터넷과 TV로 인한 전자파와 메일이 차단되고 늘 자동적으로 대응하던 감각의 인풋이 없어지고 온전히 홀로이다. 동안거 묵언수련이 따로 없다. 한편 “이래도 여기 살 수 있겠어?”하고 누가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멋있는 자연 풍광과 고요함을 어디서 누리겠어?”하고 누가 격려하기도 하는 듯하다.
이렇게 정읍댁 시골생활은 눈과 함께 시작되었다. 사실 은퇴하고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것은 나였다. 그냥 자연과 단절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회색 환경은 피하고 싶었다. 자연 속에서 생물의 한 종인 호모 사피언스로서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에서였다. 대한민국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본격적인 은퇴생활이 시작된 생애주기에 새로운 틀 안에서 살고 싶었다. 삶의 자리가 바뀌면 삶의 내용이 바뀔까?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아본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온 가족이 서울 신촌으로 이사 온 이후로 도시생활만 해왔다. 지금까지 사회에 나가서 일만 했지 집안일도 하지 않았던 내가 귀농귀촌하고 싶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모두들 일 년도 못 있고 올라올 거라고 장담을 한다. 시골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판단이다. 환갑이 넘어 내려온 시골에서의 삶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정읍댁 단풍편지도 언제까지 보내질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