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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아트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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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9 - <브로큰 임브레이스>, 알모도바르의 원색의 향연

posted Nov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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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9. <브로큰 임브레이스>, 알모도바르의 원색의 향연
 


스페인의 ‘국민감독’으로 인정받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는 화려하다. 늘 원색 특히 짙은 빨강색이 화면의 일부를 차지하며 긴장감과 자극을 일으키는 것은 그 화려함의 일부이다. 자살, 포르노, 기괴한 유머, 동성애, 약물 등이 뒤범벅이 되어 도발적이고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 화려함의 일부이다. 2~3년에 한 편씩 꼭꼭 약속처럼 만들어내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벌써 22편에 이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만 해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키카>, <비밀의 꽃>, <라이브 플래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 교육>, <귀향>, <브로큰 임브레이스>, <내가 사는 피부>, <줄리에타> 등 10여 편이나 된다. 이들 영화들은 대부분 각종 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알모도바르 특유의 스토리는 약물이나 성애 등 몇 가지 점만 제외한다면 TV드라마에 익숙한 한국의 관객에게 쉽게 다가간다. 알모도바르는 영화의 초반부터 관객의 호기심과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2시간 정도 스토리에 빠져 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가 되면 약간 당황하기도 한다. 이런 싸구려 에로영화 같은 스토리에 내가 깊이 빠져버리다니! 라는 느낌말이다. ‘출생의 비밀’ 등 TV드라마의 단골 메뉴도 종종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가 강한 인상을 남기고 평론가들의 호평과 주목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어떤 직접적인 정치적인 메시지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보수적 세계관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반항이 짙게 깔려 있고 아울러 이에 대립되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의 표출을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때문일 터이다. 또한 이에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이다. 종종 음악, 미술, 연극, 무용, 영화 속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그의 영화에 녹아져 있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2002년의 <그녀에게>에서는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대표적인 작품인 <카페 뮐러(Café Müller)>와 <마주르카 포고(Masurca Fogo)>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사랑의 비애를 진하게 남기는데 이는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에 낯선 사람에게 조차도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아울러 중간에 삽입된 카에타누 벨로주의 작은 노래 공연에서 불린 스페인 작곡가 토마스 멘데스 소사의 유명한 <쿠쿠루쿠쿠 팔로마>은 또 얼마나 애간장을 녹이던가?

 

 

talktoher.jpg

 

 


2009년에 개봉된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에는 스페인 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거의 50점에 이르는 무수한 미술작품이 등장한다. 게다가 특별히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억만장자의 집이 무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게 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 작품들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시선을 두지 않는다. 단지 몇몇 작품에 대해서만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카메라가 뚜렷한 응시를 보낸다. 앙리 마티스의 <블루 누드(Blue Nude -Souvenir de Biskra, 1907)>, 앤디 워홀의 팝아트 총 시리즈(1981), 그리고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의 <Je t'aime No.2, 1955> 등이 그것이다.

앙리 마티스의 <블루 누드>는 인종과 식민주의와 관련되어 비판을 받았지만 야수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브라크와 피카소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영화에서 대저택의 1층 구석진 자리에 걸려 있지만 두 차례에 걸쳐 교묘한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분명하게 부각이 되었다.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후미진 곳에 걸려 있으면서 겉보기에 젠틀한 억만장자의 숨겨진 원시적인 욕망을 언뜻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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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은 1968년 권총 습격을 받는 사건 이후 이에 대한 심각한 후유증을 가지게 되었는데 1981년에는 총과 칼을 팝아트의 ‘가벼운’ 소재로 삼으면서 한편으로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담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릴린 몬로나 캠벨 수프처럼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침투해 있는 살인 무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앤디 워홀의 총(Gun) 시리즈와 칼(Knife) 시리즈는 영화 속 대저택의 커다란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워낙 큰 그림들이 거실을 둘러싸고 있기에 등장인물이 차라리 왜소해 보일 정도이다. 이는 억만장자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향한 공격적인 시선과 태도를 그대로 표출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집요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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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등과 함께 뉴욕스쿨의 멤버로 세계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로버트 마더웰의 <Je t'aime No.2, 1955>는 대저택의 침실 머리맡을 꽉 채우고 있다. 달콤한 속삭임이어야 할 “사랑해!”라는 말을 격렬한 외침과 협박 또는 절규로 표현한 이 그림은 돈으로 사랑을 구매하고 또 그 사랑에 엄청난 집착을 가진 억만장자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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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모도바르 감독의 의도를 분명하게 표출하는 이러한 그림들 외에도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벽에 붙인 작은 사진이나 프린트물까지 스쳐 지나가는 많은 미술 작품들…… 이러한 풍성함을 영화 속의 미술관이라고 할까 아니면 영화 속 명화 숨은그림찾기라고나 할까.

만약 사랑과 욕망과 집착이 뒤엉키는 이 영화의 스토리에 이러한 미술 작품들이 전혀 동원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쩌면 B급의 통속 멜로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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