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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아트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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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10 - <퐁네프의 연인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그림

posted Nov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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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10. <퐁네프의 연인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그림


“또 알렉스야.”
1991년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첫 번째 대사이다. 파리의 대로 한가운데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주인공 알렉스를 보며 노숙자 관리자들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대사는 중의적이다. 거리의 노숙자 알렉스가 또 길에 뻗어 있군! 이라는 뜻과 이번에도 영화배우 드니 라방이 분한 주인공의 이름은 알렉스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첫 대사를 듣는 순간 관객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돌았을 지도 모른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드니 라방이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가 연출한 작품에 등장하는 세 번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결국 ‘알렉스 삼부작’이라 말이 만들어졌다. 1984년 까락스 감독의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 1986년 <나쁜 피>, 1991년 <퐁네프의 연인들>이 바로 ‘까락스-드니 라방’이 알렉스라는 주인공 이름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레오 까락스 감독은 장 자크 베네, 뤽 베송 감독과 함께 198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휩쓴 ‘누벨 이마주’라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한 마디로 ‘이미지’ 즉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시각적 효과를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끌어올린 작가들이다. 그는 알렉스 삼부작 이후 활동이 뜸하다가 2012년 영화사에 길이 흔적을 남길 <홀리 모터스>를 만들어서 다시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물론 여기서도 영화배우 드니 라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더 이상 이름이 알렉스는 아니었다.

드니 라방은 거리의 부랑아 내지는 노숙자라고 하면 딱 어울릴 외모를 가지고 있다. 키도 작고 어느 모로 보나 비호감일 수밖에 없는 얼굴, 웃는 얼굴조차 괴이하게 뒤틀리고, 늘 어디로 튈지 모를 품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애수와 멜랑콜리가 깃든 드니 라방은 카메라에 담기자마자 관객에게 불안감, 불편함, 그리고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타자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드니 라방은 워낙 강렬한 캐릭터를 발산하기 때문에 그의 상대역으로 줄리엣 비노쉬 정도는 되어야 여주인공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균형을 맞출 수가 있다. 줄리엣 비노쉬는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상대역을 맡았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미셸(줄리엣 비노쉬)은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시력이 점점 쇠퇴하여 장님이 되어 가는 불치병에 걸려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자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거리에 홀로 나돌다가 알렉스를 만나게 된다.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어 암흑의 삶에 접어들기 직전에 그녀가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한 지 한 시간 쯤 지나서 삶을 달관한 듯한 노인 노숙자의 도움으로 루브르 미술관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급격히 출렁이기 시작한다. 미셸은 루브르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수 있 도와주는 노인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대가를 치르고, 그 노인은 그 후 센느 강에 몸을 던지고, 알렉스는 미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알렉스은 방화를 하여 사람을 죽게 만들고, 미셸은 알렉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이렇게 영화는 흘러간다.

그런데 눈으로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미셸이 보고 싶어 한 루브르 미술관의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화가가 꿈이었던 미셸이 시력을 상실하며 삶을 비관하면서 어떤 이미지를 기억에 남기고 싶었을까? 개구멍을 통해 루브르에 잠입한 미셸이 처음 맞닥뜨린 작품은 거대한 크기를 가진 제리코의 명작 <메두사호의 뗏목>이었다. 30대 초반에 삶을 마감한 화가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은 죽음 직전에 가느다란 희망을 부여잡고 구조를 애타게 갈망하는 군상을 담고 있기에 미셸의 처지와 유사성을 가지지만 그저 무심히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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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이 노숙자 노인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작품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었다. 미셸이 손으로 그림을 만지면서까지 애절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소년 넬로가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 올려지는 예수> 발치에서 늙은 개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 죽는 장면이 떠오른다. 화가가 꿈이었던 넬로와 미셸. 그림은 그들의 스러져가는 삶을 어루만진다.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담는 자화상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흔한 일이어서 특별한 것이 아닐 수가 있다. 하지만 렘브란트 이전에는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독립된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흔치 않았다. 렘브란트는 단지 자신을 그럴듯한 모델로 내세워 근사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젊고 활력 있는 때부터 늙어서 파산하여 죽어갈 때까지 마치 글로 자서전을 남기듯이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 렘브란트는 화가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그림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였다. 그렇기에 비평가 존 버거는 형식적인 면을 차치하고 본다면 렘브란트가 최초의 ‘근대 화가’라면서 렘브란트는 “개인의 비극적 고립을 반복해서 자신의 작품 주제로 삼았던 최초의 화가이며, 또한 자신이 속했던 사회로부터 상당한 소외를 경험한 최초의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예술사회학자인 아르놀트 하우저 또한 자신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렘브란트는 “일체의 객관적 사물이 주관적 의식의 단순한 인상이나 체험으로 보이는 현대적 상황으로 나아가는 도상에서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렘브란트가 남긴 많은 자화상 중에서 미셸이 어루만지며 바라본 것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렘브란트 말년, 화가로서의 명성을 다 잃어버리고 고단한 삶을 지탱하면서 그린 늙고 초췌한 모습의 자화상이었다. 1669년 렘브란트가 삶을 마감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낡은 화구뿐이었다. 초상화가인 그에게 더 이상 그림 주문이 오지 않았기에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모델료를 줄 필요도 없고, 그림에 대해 누군가의 간섭이나 시비를 받을 필요도 없고, 어차피 시장에 내다 팔 가능성도 없기에, 자화상을 그려대는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렘브란트가 상식적인 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때론 노골적으로 추한 것을 그렸다면서 “조화와 아름다움 보다는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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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가지는 이러한 의미들을 곱씹으면 레오 까락스 감독의 선택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영화에서 약 2~3초 동안만 보여지는 삶의 고뇌가 담긴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퐁네프의 연인들>에 담겨진 수많은 인상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한 순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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