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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아트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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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12 - <하녀> 대저택 속 미술관, 그리고 계급

posted Feb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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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12. <하녀> 대저택 속 미술관, 그리고 계급


2010년 개봉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는 아마도 한국 영화 중 ‘미술’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에 등장하는 ‘미술작품’에 대해서 그렇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부터 살펴보자. 이 장면의 진짜 주인공은 등장인물들보다는 미술작품이다. 거대한 <LOVE>의 조각가로 잘 알려진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채색 실크스크린 작품 <마릴린>이 딸아이에게 생일 선물로 주어진다. 이 작품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50억 원을 호가하는 진품을 직접 공수해서 가져온 것이다. (누가 이런 일을 또 벌이겠는가?) 이 작품은 영화 속에서는 빛이 반사되어 관객에게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마릴린 몬로의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나신은 슬쩍 감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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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생일 이벤트에서 이 작품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야릇하다. 엄마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마릴린 먼로 흉내를 낸다. 케네디 대통령을 위해 Happy Birthday To You를 부르던 마릴린 먼로의 목소리 말이다. 아빠는 딸에게 영어로 “Can you recognize it?” 묻는데 영화의 자막은 “얼마짜리 그림인 줄 알아?”로 번역한다. 이에 딸은 “로베르토”라고 답한다. 그런데 자막은 “인디애나 거니까 엄청 비싸겠지.”라고 번역한다. 이 어긋나는 대사에서 자막은 마치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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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비쌌을 보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감독이 이 작품을 마지막 장면에 등장시킨 것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먼로는 남성들에게 대상화된 섹스 심볼이면서도 이를 자신의 정체성 또는 존재감으로 전환시키는 도발적인 캐릭터이다. 동시에 이러한 어긋난 욕망으로 인해 파생된 비극의 희생 제물이다. 전도연이 연기한 영화의 여주인공은 대저택의 주인과 성관계를 가지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능동적인 자기 욕망의 표현으로 그려진다. 그로 인한 임신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불현 듯 자각시킨다. 여기에 마릴린 먼로만큼 잘 들어맞는 상징이 없을 것이다. 마릴린 먼로가 케네디 아이를 임신한 채 살해당했다는 음모론 말이다.
이 인상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 바로 전에는 전도연의 쇼킹한 자살 장면이 나온다. 거실 한복판 높게 달린 상들리에에 목을 매고 몸에 뿌린 휘발유(?)에 불이 붙은 채 대롱대롱 흔들거리는 장면. 그저 화려한 상들리에로만 보이던 것이 뭔가 특별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들리에는 배영환 작가의 <불면증 - 디오니소스의 노래>라는 작품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상류계급의 자기 과시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깨진 소주병과 맥주병 등으로 만들어진 삶의 서글픈 파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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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환 작가의 작품은 이 상들리에 외에도 더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조각품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피아노 옆에 놓인 조각품은 여러 차례 카메라에 포착된다. 또 하나의 작품이 다소 길게 화면을 채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 작가 나다니엘 웨스트의 소설 <Miss Lonelyhearts>의 다소 유명한 문장을 보일 듯 말 듯 하게 새겨놓은 작품이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They had believed in literature, had believed in Beauty and in personal expression as an absolute end. When they lost this belief, they lost everything. Money and fame meant nothing to them. They were not worldly men.(그들은 문학을 믿었고, 아름다움과 개인적인 표현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이 이 신념을 잃었을 때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돈과 명성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하녀의 방에 걸려 있는 것으로 자살 직전에 감정의 기복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또 다른 하녀(윤여정 분)가 유심히 바라본다. 이 인용구가 영화의 내용과 그대로 합치되지는 않지만 굳이 그럴듯하게 연관을 시켜본다면 “아름다움과 자기표현을 잃게 된다면 세상의 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임신했던 아이를 잃은 전도연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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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마치 대저택이 하나의 갤러리인 양 모든 벽면을 장식한 김재관 화가의 작품들을 살펴볼 차례이다. 1967년부터 현재까지 기하학적 추상회화로 끝임 없는 실험과 도전을 해온 김재관 화가의 대략 20점 정도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700평이나 되는 이 대저택의 거실과 주방과 안방, 그리고 하다못해 딸아이의 방에도 걸려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들은 단순한 소품이나 장식물이 아니라 대저택의 일부로 녹아져 있으며 아울러 대저택의 주인들의 삶을 추상하고 있다. 굳이 이러한 미술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은 영화 관객일지라도 이 대저택이 풍겨주는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현대적 분위기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으리라.
“작품의 근본적 주요 요소인 ‘그리드(Grid)’를 중심으로 평면과 입체, 공간의 확장을 반복 하며 옵아트(Op Art)적 원근법상의 착시나 색채의 장력(張力)을 통해 순수한 시각상의 효과와 더불어 빛과 색, 형태를 매개로 3차원적 역동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즉, 그리드(Grid) 를 단순히 표현 수단 중심에서 다루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우주 생성의 근본 원리로서 공간적 장(場)과 상징적 의미로서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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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 대부분이 능히 그러하듯이 작품보다 난해한 작품 해설이다. 아마도 더 이상 쉽게 표현하기 힘들어서 일수도 있겠다. 화가는 일정하게 공간을 구획 짓는 그리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그로 하여금 질서 있는 이해를 갈구하지만, 존재 자체는 각자의 근원적 생명 욕구와 원초적 욕망으로 그 질서를 해체해 나간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드 속으로 스스로를 속박하고 그 질서에 순종하는 대저택의 주인들 즉 상류계급의 인간형을 언듯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그와는 반대로 그리드를 해체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비극 속으로 함몰하는 하녀들의 계급적 저항을 대비시켜 볼 수가 있겠다.
이러한 이해가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임상수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나오는 대저택의 휑뎅그렁한 분위기와는 다른 공간을 창출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현대미술의 작품들이 상류계급의 ‘돈지랄’로 거기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계급성을 파헤치기 위한 공간적 속성으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그래서 <하녀>는 한국영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화 속 미술품의 존재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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