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목사의 수도원 맥주를 탐하는 지식
열하나, 당신의 송년과 신년을 응원하며
(이맘때 쯤 마시면 좋을 맥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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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번 순서는 “맥주 종주국 영국, 그리고 수도원”을 주제로 수다를 떨려했다. 이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졸던 중, 그것보단 요즘에 마시면 좋은 맥주를 소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후다닥 들었다. 벌써부터 ‘생각이 나질 않으니 이젠 별 짓을 다 하는구먼!’이라며 혀를 차는 분들의 비난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부디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의 변명을 읽어주시길!
사실 한국과 같이 라거가 절대 대세를 이루는 지역에서 추운 겨울이 되면 맥주의 매출은 수직 하락한다. 특히 모스크바나 알래스카를 제치고 북극권 추위의 진수를 보여주는 요즘에선 제 아무리 맥주 마니아에 그 할머니라 하더라도 차가운 맥주보단 뜨끈한 국물에 쐬주 한잔이 더 간절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는 비단 맥주 뿐 아니라 관련서적이나 각종용품 등 맥주 산업 전체의 정체로 이어지기 십상이며 올 겨울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한국맥주발전에 있어 일의 영향력도 없는 나지만, 한 달에 한 번 맥주가 어쩌고 하는 글을 끄적이는 입장에서 그래도 무언가 기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국충정(憂國衷情)’에 비견할 만한 ‘우주충정(憂酒衷情)’이 아니겠는가? 하여 두 종류를 준비해 보았다! 이맘때 쯤 마시면 좋을 맥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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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추울 땐 복 비어(Bock Beer)를!
대개 맥주하면 5도 미만의 저알코올 술을 떠올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동안 술의 구분을 도수로 규정하는 법률이 집행되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맥주 뿐 아니라 막걸리 등의 한반도 술 역시 다양성이 말살된 채, 법적 요건을 위해 애써 만든 술에 물을 타서 휘휘 저어야만 했다. ‘인류’라는 집단 속에도 매사 여유로운 이가 있는가하면,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가? 맥주에도 역시 저알코올에 부드럽고 시원한 목 넘김의 맥주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알코올에 무척 파워풀한 맛을 소유한 녀석도 공존한다. 그 중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복 비어! 복 비어는 일반적으로 독일의 아인벡(Einbeck)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복’이라는 이름 역시 아인벡의 ‘벡’에 대한 독일남부 바이에른 식 발음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아인벡 기원설은 복 비어의 처음에 대한 여러 설 중 하나이다. 심지어 복과 동음인 단어 중 야생염소나 산양을 뜻하는 말도 있어서, 이 동물들의 거친 야생성을 이름에 담았다는 설도 있다. 뭐 아무튼 이러한 이야기들은 복 비어가 독일 남부지방에서 많이 소비되었고, 그 맛은 상당히 거칠다는 것을 말해준다.
복은 도수가 대개 7~9도 정도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접했던 맥주들에 비해 상당히 강한 맛을 느낄 수 있고, 견과류나 훈제된 곡물의 맛이 중후한 풍미를 전해준다. 이 때문에 복 비어는 한 잔 들이켜는 순간, 추운 날씨로 웅크렸던 가슴과 어깨를 쫙 펴줌과 동시에 깊은 맛과 향 가운데에서 차분히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된다. 한국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복 비어로는 바이헨슈테판에서 출시한 ‘비투스’와 파울라너가 내놓은 도펠복(Doppelbock), ‘살바토르’가 있다. 복 비어를 생맥주로 접하고 싶은 분들은 옥토버훼스트가 생산하는 복 비어를 통해 현지에서 맛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어두운 불빛이나 촛불 아래에서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고 싶은 분, 한두 명의 절친한 벗과 함께 그간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 추위와 삶의 무게로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복 비어를 권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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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좀 더 여럿이 한 잔하고 싶을 땐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
스타우트 계열에서 러시아와 연관된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예카테리나, 표트르 등 러시아를 서방과 대등한 국가로 발돋움시켰던 전제군주들의 공통된 특징은 영국식 맥주에 영혼을 팔았다는 것! 그(녀)들은 서방순방을 통해 접했던 영국 에일에 흠뻑 빠진 나머지 비싼 값을 마다하지 않고 연일 엄청난 양을 수입했다. 돈 많은 VVVIP고객 앞에서 영국 맥주업계가 흥분했을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답 나오는 상황이었을 터! 문제는 원거리의 항해와 육로 수송, 그리고 북방의 추위에서 버틸 수 있는 맥주를 만드는 일이었다. 궁리 끝에 맥주 양조사들은 얼어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맥아를 쏟아 붓고, 부패 방지를 위해 홉을 다량 투하한 맥주를 빚어냈다. 이 새로운 형태의 맥주는 종래에 경험하지 못한 맛을 만들어냈고, 곧 러시아의 황실은 물론, 귀족들의 사교문화, 더 나아가 러시아 일대의 맥주문화 전반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러시아 황실을 위해 시작된 맥주였기에, 임페리얼(Imperial)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 맥주는 당당히 겨울 맥주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무리 기가 막힌 맥주라 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이면 나와 무슨 소용이랴?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 중에 ‘올드 라스푸틴’을 추천한다. ‘노스 코스트’라는 캘리포니아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이 맥주는 알코올도수가 ‘9’에 이르는 만큼 강력한 첫 인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내 깔끔한 커피향이 그 강력한 맛과 어우러지면서, 입안과 정신을 시원하게 잡아준다. 올드 라스푸틴을 만들어내는 노스 코스트는 마크 루드리히가 설립한 양조장인데, 마크는 영국인 연인을 따라 이주한 영국 땅에서 접하게 된 맥주에 폭 빠진 나머지 아예 양조기술을 익혀 술집을 열어버린 사람이기도 하다. 올드 라스푸틴은 그 활달한 양조사를 닮아서인지 앞서 언급했던 복 비어에 비해 좀 더 왁자지껄한 술집이나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 어울린다. 음력 송년회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 여러 친구들과 함께 활기찬 신년모임이나 겨울 파티를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올드 라스푸틴을 만나보시길!
혹시 아직 에일에는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분들을 위해 사족하나! 스타우트는 아니지만, 파워풀한 러시안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발티카9’을 추천한다. 숫자로 맥주의 장르를 구분하고 있는 발티카 계열에서 가장 도수가 높은 발티카9은 8도를 자랑하는 강력한 라거다. 이 녀석은 그 깔끔한 맛을 살려주기 위해 조금 기름진 음식들과 배치하면 딱 인데, 이 둘을 충족시키는 음식점으로 동대문 롯데 피트인 뒤 ‘스탄거리’의 중앙아시아 음식점들을 추천하고 싶다. 그곳에서 유목민들이 차고 다니던 칼을 연상시키는 꼬챙이에 구워져 제공되는 양고기를 한 덩어리 우물거리다가 목일 막힐 때쯤 발티카9을 들이부으면!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듯한 여유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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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나만 그런 건진 모르겠으나,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아쉬움과 후회도 많을 것이다. 다시 주어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진 않을 것 같은 시간들.......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간 속에서 적어도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란 점이다. 또 설령 결과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삶은 살아낸 것 자체로 존중, 아니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 2018년을 살아낸 당신, 정말 고생 많으셨다. 이제 겨울의 알싸한 바람을 닮은 맥주 한 잔 하며, 새로운 시간으로 나아가 보자. 당신에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Beery Christmas and a Hoppy New Year!
열두 번째 이야기: 맥주 종주국 영국, 그리고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