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목사 시즌2

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3

 

날이 추워지면? 만 원을 들고 편의점으로! - 추운 날 마시면 좋은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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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한 달 남짓 남았다.
가을....... 지구가 점점 더 아파지게 되면서부터 오는가 하면 가버리는 것이 봄과 가을 아니던가? 한데 올해 가을은 유독 찬란했기에 그 갑작스런 퇴장이 더욱 서운하지 싶다. 그 이쁘던  가을을 한 순간에 밀어내고 찾아온 겨울을 향해 얄미운 마음 담아 째려보는 요즘이긴 하나 어쩌랴? 오가는 시간이야 막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또 그리 흘러가야 봄이 오는 것을.......
날이 추워지면 맥주소비량은 감소한다. ‘시원함’의 이미지가 강하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알고 계신가?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와 같이 한반도의 추위에 대해 ‘님 좀 장난하는 듯?’이라 여길 동네들에서도 맥주는 엄청 마신다는 거!!! 추운동네 맥주는 비단 먼 동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 바로 위 만주 말이다. 민족주의자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비장한 표정을 짓고, 유사국사학자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빼앗아 와야 될 자국 영토인양 생각할 만큼 가까운 그곳에도 겨울을 대표하기에 충분한 맥주가 있다. 편의점에서 인상적인 녹색 빛 짙은 캔으로 만날 수 있는 그것은 바로 바로....... 하얼빈 맥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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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 유일하게 이 세계적인 국가들을 동시에 하찮이 여기는 나라는? 정답, 대한민국! 아마도 이는 그들 국가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단 오랜 침략과 지배에 따른 역사적 감정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데 인 치나’는 무조건 저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칭따오로 대표되는 중국산 맥주 한 잔 후, 귀한 거 마셨다고 자랑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판매와 시장점유율에 있어 세계 10위권 내에 자국의 맥주회사를 늘 세 곳 이상 위치시킬 만큼 중국은 맥주대국이다. 그 뿐인가? 중국은 맥주보리와 홉의 자체생산이 가능한 국가이고, 1900년에 이미 근대식 대량생산을 통해 맥주유통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중국은 한반도보다 맥주 선진국이다. 이 같은 중국 내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하얼빈 맥주다. 만주의 중심, 하얼빈에 맥주공장이 들어선 것은 청일전쟁 이후 급변했던 동북아시아의 상황 때문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랴오둥(요동)반도를 빼앗는데 성공한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선배 제국주의국가들이 하고 있는 짓을 따라한 결과였다. 하지만 랴오둥의 여러 항구들을 홀랑 가져가는 것에 남다르게 배 아파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정 러시아!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 급격하게 팽창하려는 일본이 꼴 보기 싫었던 독일, 프랑스와 함께 승리에 한껏 들떠 있었던 일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세계 평화는 위해 좋게 말할 때 랴오둥에서 떠나라!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획득을 위해 동북아시아로 세력 확대를 꾀하던 러시아는 말 뿐 만이 아니라 극동함대를 동원해 고베항을 봉쇄하는 군사적 실력행사를 하기 까지 했다. 영국을 제외하곤 당대 가장 잘 나가는 국가들의 압력 앞에서 일본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청은 3국 덕분에 패전 후 쓰레기통에 처박힌 체면을 조금 회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있던가? 러시아는 만주지역 전체의 철도부설권을 청 제국으로부터 반 강제로 얻어갔다.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최단거리 수송로 확보와 향후 만주 전 지역을 강탈하려는 ‘빅 픽쳐’의 일환이었다. 청 제국은 자신들의 발원지인 만주에 대해 사실상의 지배력을 상실했고, 제국주의 열강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으로 전락해갔다. 만주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벽안의 지배자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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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지배자가 된 러시아는 만주지역에 막대한 숫자의 자국민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우선 철도건설을 위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긴 공사기간과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유로 점차 그들의 가족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여기에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파견된 군대와 경찰 등의 공권력도 가세했다. 변방이긴 하나 유럽에 살던 이들에게 있어 당시의 만주는 정말 황량하기만 했을 터!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은 집 뿐 아니라 도로를 포함한 사회기반시설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만주에 러시아식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동쪽과 남쪽을 향한 철도가 만나는 하얼빈은 가장 번화한 러시아식 도시로 성장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일과 후에 뭘 하겠는가?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자리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하지만 당시만 해도 맥주는 원거리 수송이 어려웠던 고로, 1900년에 아예 하얼빈에 공장을 세웠던 것이다. 영화 황해 속 구남이가 낮이고 밤이고 병나발을 불던 술, 하얼빈 맥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시아에서 생산되지만 설비나 재료는 본 러시아, 이런 이유로 하얼빈 맥주는 동북, 동남, 서남아시아 유일의 러시아식 맥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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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맥주의 연원은 영국이다. 그 때문인지 러시아 맥주들은 뒷맛의 여운이 강한 편이다. 라거 맥주도 그렇다. 러시아산 맥주 중 대형마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것으로 ‘발티카’라는 것이 있다. 얘는 스타우트, 밀맥주 등을 각각의 번호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중 7번 발티카가 라거인데 일반적인 라거 맥주들에 비해 탄산감은 약한 반면, 보리의 뒷맛이 여운으로 길게 남는다.
그 정도의 여운은 아니지만, 하얼빈 역시 목 넘김 직전의 뒷맛이 확실하다. 그것이 뭔지 궁금하다면 양꼬치 집에서 우선 칭따오를 한 잔 한 후, 비교해보시길! 칭따오에 청량감은 부족하지만 개성 있는 여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날이 많이 차갑다. 수은주가 내려가면 따뜻한 방에서 나오기 싫고, 그럼 눕고 싶고, 그 다음엔 자고 싶고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또 해야 할 것은 역시나 해야 될 것이니....... 게다가 이제 2019년이 얼마 후면 막을 내리지 않는가? 업무가 아니라도 한 해 동안 미뤄뒀던 어떤 것, 그게 어설픈 사과거나 조심스런 위로일 수도 있는 뭐 그런 것들....... 하기 위해 만날 때 맥주 한 잔 나눠보면 어떨까 한다. 그럴 때 편의점에서 막 사들고 온 하얼빈 맥주, 녹색 캔 속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로 어색한 처음을 열어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