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목사 시즌2
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4
늘 있는 것들의 소중함 - 기네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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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해 보면 어제 떠올랐던 태양이 지고, 또 다시 오늘의 하늘을 밝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옛날부터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일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도 고정된 현상은 신적영역으로 격상되기도 했고, 문학과 예술 속에서 찬양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뿐인가? 태양의 열기가 정점에 이르는 여름,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라거를 향한 열망도 극에 달한다. 태양이 잠시 사라진 시간, 즉 밤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느낌을 선사했던가? 그렇게 뜨고 지기를 365회 반복한 후, 2019년은 2020년으로 이름을 바꿨다. 2020년....... 초등학교 꼬맹이 미술시간 중 ‘미래를 상상해 보세요’라는 주제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우주선 같은 걸 타고 다니고, 옆집 가듯 다른 행성이나 깊은 바다 속으로 여행가는 모습으로 그려졌더랬다. 어느덧 그리 상상하던 때를 살고 있는 지금, 성능 좋은 탈 것이나 멋진 곳으로의 여행은 시간이나 기술력이 아니라 자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곤 못내 쓴 웃음을 짓곤 한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자먹으러 이탈리아를 가고, 초밥이 땡길 땐 일본으로 날아가진 못한다 해도 2019년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그 각자의 삶은 과거의 태양처럼 숭배 받아 마땅할 것이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비록 오늘 마주한 태양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겠으나, 새해는 그리 일상적인 하루의 시작과는 다른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태양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늘 주어지는 것들, 공기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가끔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새해는 참 ‘이쁜’ 시간인 것 같다. 갑자기 태양이나 공기와도 같이, 동네 편의점 어디의 진열장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맥주 이야기 하나를 하고 싶어진다. 그건 기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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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양조장 문을 닫고 있었다. 맛있는 맥주로 인근에 제법 알려졌던 이곳이 폐업할 밖에 없었던 것은 아일랜드를 점령한 잉글랜드의 고관세 정책 때문이었다. 국내 자본의 로비에 따라 잉글랜드는 점령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에는 엄청난 세금을 매긴 반면, 자국산에 대해서는 무관세 정책을 취했다, 그 결과 피지배지역의 양조장은 높은 세금을 떠안은 출고가로 인해 잉글랜드산 에일과의 가격경쟁에서 상대도차 되지 못했다. 이는 견실했던 양조장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닫고 있던 이에게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보세요. 이 양조장을 제가 좀 써도 될까요?”
뒤를 돌아보니 풍채 좋은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사람 참,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통 모르시는구먼. 잉글랜드 에일 때문에 모두 손을 떼고 있는 거 몰라요? 나도 망했소. 이제 아일랜드 맥주는 죽었소.”
“괜찮아요. 제가 한 번 해보지요. 그나저나 여길 빌리려면 얼마나 들까요?”
“에이 어차피 가지고 있으면 손해인데, 공짜로 써도 되니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요? 그래도 공짜는 그러니...... 45파운드를 드릴 테니 한 구 천년쯤 빌립시다!”
“.........?”
이렇게 해서 성립된 희대의 계약을 통해 우리 돈으로 약 10만원 정도에 인수한 양조장으로 맥주사업에 뛰어든 이는 기네스였다. 비범한 느낌 가득한 그는 양조장 운영 초기부터 기인의 행보를 이어갔다. 우선 인근 강물 사용허가를 차일피일 미루는 행정당국에 맞서 직접 강둑을 부순 후 직접 물길을 양조장까지 내곤 맥주을 빚기 시작했다. 또 영국하원을 상대로 불평등 과세에 대해 호기 있게 법정싸움을 벌여나갔다. 국가권력의 절대비호를 받는 런던포터 회사들과 아일랜드 한구석의 지역 양조장 기네스와의 싸움에서 승산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이 세기의 법정 공방에서 기네스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이와 함께 고집스런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런던을 능가하는 독자적 포터를 만드는데 성공한 기네스 가문은 점령국의 수도, 런던을 집중 공략해 들어갔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오히려 런던이 기네스의 주요 시장이 될 만큼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나라의 주권은 빼앗기고 말았지만 에일이 있어서는 당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기네스에 대해 아일랜드인들은 자부심을 가득담은 이름 ‘스타우트포터’라는 이름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눈에 가시와도 같은 기네스에 대해 잉글랜드 자본과 정권의 탄압을 계속되었다. 당시는 아일랜드 등의 주변지역은 맥아 등 주요 원자재를 잉글랜드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영국정부는 자국맥주보호를 명분으로 피점령지역의 맥아 수입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맥아 값이 급등했으나 주요 자재를 잉글랜드에서 수입했던 상황에서 아무리 비싸도 구매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는 기네스를 포함한 아일랜드 지역 양조장의 생산원가 상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 앞에서 기네스는 흔들림 없이 제품연구를 이어갔고, 그 결과 미발아 상태의 보리알을 굽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는 원가 절감과 동시에 기네스 특유의 달콤 쌉싸름한 마법의 맛을 탄생시켰다. 이어지는 시련 앞에서 굽히지 않고 소신을 이어간 끝에 기네스와 아일랜드 특유의 그 어떤 것이 담겨진 맥주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기네스의 이 같은 정신과 족적은 로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캔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기네스의 상징, 하프 문장은 원래 잉글랜드에 의해 스러져간 아일랜드 왕실의 상징이었던 것을 과감히 차용한 것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영국 정부는 없어진 국가문장에 대한 로고 사용금지 처분을 내린다. 일제강점기 중 태극기를 사용치 못하게 했던 조치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에 기네스는 원래의 문장을 반대로 사용하는 기지를 발휘해 점령국 관계자들을 조롱했다. 지금 우리가 자주 만나는 황금빛 하프는 그런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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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창립부터 초국적 맥주재벌과 국가권력에 대해 저항했던 정신을 오롯이 담지 했던 기네스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맥주회사 중 세계최고 수준의 노동자 복지정책을 실현하고 있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양조장운영초기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 기조는 수 세기 전부터 정착된 월경휴가와 정규직노동자 정책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채용된 노동자에 대해 본인 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대해 주거, 의료, 교육 등을 총망라한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운영해 오고 있기도 하다. 2차 세계 대전 중 징집된 노동자들에게 돌아올 때까지 가족에게 기본급을 지급할 것과 100% 복직을 약속하고 이행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자본획득이라는 동일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초국적 기업을 자임하면서도 노조를 박멸해야 될 기생충 정도로 인식하는 별 세계짜리 기업하곤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다. 세계적 맥주를 만든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혹시 이게 궁금하실랑가 모르겠지만.......기네스북과 기네스의 관계를 아시는지? 기네스북은 1955년에 기네스사가 발행한 세계 진기록 수집서다. 이는 설립자 기네스의 4대손인 휴 비버 기네스가 사냥 중에 친구들이 ‘골든 플로버’라는 물새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인지에 대해 벌인 설전을 보다가, 이와 같은 기록을 찾아 수집하면 좋은 아이템이 되겠다고 판단 후 제작된 것이다. 아이디어 하나는 정말 타고난 가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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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드래프트 캔은 거의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만원에 네 캔으로 만날 수 있다. 이처럼 흔하디흔하고 저렴한 존재지만, 그 한 캔에는 수 백 년을 한 결 같이 ‘갠춘한 맥주’ 하나 지켜가기 위해 용기 있게 싸워나간 이들의 열정이 담겨있다. 이 정도면 태양이나 공기와 같이 늘 있지만 참 소중한 가치를 만나게 해 주는 존재라고 말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뭐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지만 추운 겨울이다. 이 시간 당연한 가족의 곁에 있지 못한 채,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과 노동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해, 인간임을 또는 노동자임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선상에 계신 분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게 무척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은 실상 대부분, 엄청난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가야되나 말아야 하나, 때로 귀찮게도 느껴지는 투표가 긴 시간 않은 이들의 투쟁의 결과물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삶의 자리 곳곳에서 새해인 지금, 당연한 소중함을 발견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