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목사 시즌2
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5
告解聖事(카프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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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이남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학적 남성들은 대개 수다를 떨 줄 모른다. 뭐 겪어보지 못해 알 순 없지만 북쪽사정 역시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 첨예한 이질감 가운데 남성들의 수다능력결여는 실로 분단의 벽을 뛰어넘는 화합의 단초가 되려나? 아무튼! 오랜 남성가부장 질서 속에서 ‘남자는 세 번 운다’는 등, 1의 가치도 없는 말들에 세뇌되어왔으니....... 나를 포함해 이 땅 대다수 남성들은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 마음을 전하는 능력에 있어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하겠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수다의 3요소, 즉 시간, 공간, 친구가 완전체로 갖춰진 곳에서조차 남성들은 시원스레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기껏 하는 말이라는 게 문재인이 어떻다는 둥, 경제가 문제라는 둥, 손흥민 경기를 봤냐는 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재미대가리 없으나마 이어가던 얘기마저 끝나갈 즈음, 누군가에 의해 군 경험담이 시작된다. 그러면 죽어가던 분위기는 갑자기 활기를 띄곤 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화자는 모두 예외 없이 이 땅에서 가장 고생했고, 용맹했으며, 험한 훈련을 견뎌낸 용자(勇者)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허울아래 대개 원치 않는 군 생활을 했을 것이니, 적어도 경험에서만큼은 그 각자의 ‘자신들’모두가 가장 고생한 것임에 분명할 것이다.
병무청이 기억하고 있는 나는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대위’다. 끌려가 군 생활을 한 이들보다 비교적 많은 기간을 군대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대부분의 이십대를 군인으로 지냈고, 그 과정에서 모은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게 비록 서울의 여지간한 곳 전세금보다 낮은 가격에 내놔도 매매가 없는 동네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아는 한, 군은 구성원 모두에게 지극한 피곤함을 안긴다. 그건 충성마트(내 군 생활 중에는 PX였다. 윽! 옛날사람.......) 관리병이나 취사병에서 특전사 대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 당시의 나 역시 그랬다. 30여명, 혹은 백여 명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자, 지휘관의 위치란 권한은 바퀴벌레 뒷다리보다 적은반면, 무한도전, 아니 무한책임을 요구받는 것이었다. 그 같은 부담감은 이십대의 내게 심장위에 양장판 도서 백 권이 쌓인 느낌을 선사했고, 전역 후 수 년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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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안식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에서....... 뭐 이런 말을 해야 되겠으나 그러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말해봐야 믿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한 관계로! 실은 매일같이 이어지던 야근을 마친 새벽녘, 숙소에서 마셨던 한 병의 맥주였다. 모두가 알고 있듯 군에서 유통되는 물품은 면세다. 주세, 교육세 등 엄청난 세금이 빠진 술값을 거짓말 조금 보태 표현하자면 ‘공짜’였다. 1990년대 후반, 내 기억에 달랑 8천 몇 백 원 정도면 맥주 한 상자를 숙소로 가져 올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당시 부대 밖 세상에서는 카스, 라거, 하이트를 넘어 엑스필 등 속속 신상이 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방부대에서는 그저 그때그때 공급되는 맥주에 만족 할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부대 전 간부를 흥분의 도가니탕에 빠뜨린 일이 있었으니....... PX 주류창고에, 자그마치 ‘카프리’가 출현했던 거다. 이 정도 복지수준이라면 정해진 군 생활에 한 삼년은 더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의, 실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일단 카프리는 여러 면에서 색다른 맥주였다. 어두운 갈색 일변도의 병들과 달리 투명한 외관은 매우 고급스러웠다. ‘눈으로 마시는 맥주’라는 카피는 이 투명한 병맥주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손으로 돌려 딸 수 있었던 트위스트 캡 역시 신기함을 넘어 편리하기 그지없었다. 맥주를 마시는데 병따개나 숟가락이 필요 없다니! 무엇보다 분명한 차별성은 맛이었다. 당시의 여느 맥주들에선 느낄 수 없었던 보리 맛, 구수하게 입을 채운 후 맛깔나게 목을 넘어가던 그 느낌은 수년 간 마시던 맥주들과의 이별을 주저하지 않게 해 주었다. 나는 곧 카프리와 사랑에 빠졌다. 나의 카프리 사랑은 그 후로부터 전역 전 날 회식 때까지 이어졌다. 어둔 밤 홀로, 혹은 고민 많아 보이는 부하와 말없이 한 두 잔, 그렇게 카프리는 내 군 생활의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날, 그 밤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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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 믿음직한 부하였다. 중대장 재직 당시, 내 부대의 분대장이었던 그는 성실함과 밝은 성격으로 중대원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병사였다. 은근히 뒤로 빠질 법 한 상황에서도 늘 앞장서 작업이며 청소를 잘도 하곤 했다. 후임병 시절부터 힘든 군 생활 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미사에 참석할 만큼 독실한 가톨릭신자이기도 했다. 때에 따라선 소대장이나 간부들보다 더 믿음직한 그에 대한 내 신뢰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고민이나 상의할 것이 있을 때면 스스럼없이 내게 찾아왔으니 그에게도 내가 아주 싫은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뭐 극히 주관적인 기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같이 중대원들의 취침과 건강상태를 확인 한 후 밀린 일을 하고 있던 밤, 조심스런 노크소리와 함께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를 위해 내놓은 카프리 한 병을 놓고 마주앉은 자리에서 그는 뜸을 들였다. 다른 때와 같지 않은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긴장되던 즈음, 마침내 그가 입을 뗐다.
저.......중대장님....... 저는 게이입니다.
이어서 그간의 삶과 군 생활 중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그에 대한 해결을 요청했다. 한 삼십 여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가 돌아간 후 빈 병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놀라움, 당혹스러움.......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선명한 것은 ‘불편함’이었다. 그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좀 전까지 늘 내 곁에 두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던 부하로부터 몸과 마음이 뒤로 주춤하는 나를 느꼈다. 선배들만큼 자랑스레 밝힐 수 있을 만큼 뭘 해 본적도 없는 나였다. 그래도 사관학교 입대 전까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언저리를 기웃거렸었기에 ‘그래도 쫌 진보적이지’라는 프라이드를 나름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의 커밍아웃 앞에서 일어난 불편함은 ‘찐진보’라는 자부심을 여지없이 부숴버렸고, 그 이면에 감춰두고 있었던 혐오를 직면하게 했다. 처음엔 변함없이 훌륭한 부하인 그에 대해 달라져버린 내 감정의 변화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어 진보는커녕,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가득한 진짜 나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아무튼, 부하가 고충처리를 요청했으니 알아는 봐야했기에 찾아본 군법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지금도 유효한 군법상 성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처벌대상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제대를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려움을 공감해 주었음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사를 감히 받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내 안의 혐오 앞에서 당혹스러웠고, 그의 어려움을 충분히 해결해 주지 못했음이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초급장교이긴 하나 군이라는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자로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처벌조항의 문제점 앞에서 함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가 제대하던 날 밤, 나는 숙소에서 카프리 병이 수북하게 쌓일 만큼 마셨고, 내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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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맥주 냉장고 앞에서 카프리를 볼 때면, 반가움과 함께 그 날, 그 날 밤, 그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몰랐겠지만, 내 삶의 전환을 견인했던, 소중한 스승이었다. 성정체성, 성소수자, 성평등에 대한 내 고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건 혐오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그 오랜 시간동안 나로 인해 마음 아팠을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사죄하고 싶은 마음의 시작이었다. 너무 늦게 인지함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과오....... 그건 내가 가진 그리스도교 신앙의 교리 중 ‘원죄’를 떠올리게 했다. 이성애중심적, 남성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권력적 다수성의 편안함과 우월적 안락함을 누리고 살아왔음을 반성하고, 성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며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 그리 살고 있진 못하지만, 적어도 그리 살아가야하지 않겠냐며, 그게 혐오라는 원죄를 지은 이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아니겠냐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된다.
최근 변희수 하사의 트렌스정체성 커밍아웃과 그에 대한 국방부의 대응으로 군의 성소수자 정책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촉발되었다. 보기에 따라 변 하사의 행동은 엄정한 조직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돌발행동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특히나 상상력이 부족한 군의 특성상 매우 당황했을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변 하사는 군을 사랑하고, 자신이 군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임에 분명하다. 그런 이에게 성정체성을 이유로 그토록 원하는 군복무를 할 수 없게 막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인구가 줄어 군 전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찡찡거리지만 말고, 더욱 많은 이들에게 군문을 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찐 안보, 참 군인정신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변 하사에 대한 강제전역 조치를 철회하고, 발전적 대책 마련을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길 기원해본다. 그 개성 있는 병과 맛이 지금은 수많은 맥주들 중 하나가 된 카프리처럼 세상은 내 존경하는 부하였던 그와 변희수 하사와 같은 이들로의 ‘용기 있는 돌출’로 점점 다양하고 맛깔나게 변화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