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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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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5 - 이웃종교에 대하여

posted Apr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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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5 : 이웃종교에 대하여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며 길거리에 연등이 걸리고 있다. 이즈음에는 오래 전 부목사로 일하던 수유동 지역 한 교회에서 겪은 경험이 껄끄럽게 떠오른다.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화계사에서는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올 때 축하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절 입구에 내걸곤 했다. 그것을 본 젊은 축에 속한 교인들은 답례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냐는 의견을 나누면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교회에 달자는 제직회 안건상정을 모의했다. 하지만 결국 불발되었다. 반대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인정(人情)이 아니라 신학이었다. 자기 종교의 확신을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으로 연결하는 정신습관이 문제였다. 대체로 리버럴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타성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기독교의 위기를 말하곤 하는데, 한국 교회를 미궁으로 몰고 가는 주요 동인은 종교적 배타성이다. 이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어 왔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감리교 신학대학의 학장이 파문된 1992년 이후로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그 문제로부터 자신의 혐의를 지워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게 되었다. 주요 신학연구 기관에서 ‘종교 다원주의’라는 학문은 퇴보를 거듭하다가 논의조차 사라져갔고, 종교적 배타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교회의 움직임 역시 지렁이의 꿈틀거림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 사이에 배타주의의 얼굴을 한 기독교가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거리와 광장마저 채우게 되자, 상식적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움을 넘어 자기정체성을 부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배타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퇴보한 반면, 기독교만이 존재했던 서구사회에서 교회는 이웃종교에 대한 포용력을 넓히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기나긴 세월을 제국주의적 습성에 젖어온 서구교회가 이웃종교로부터 지혜를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얻기까지는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었다.

서구교회의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 성찰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역사학자 토인비가 20세기에 서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가리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이라고 했듯이, 서구교회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회학적 각성을 하였다. 둘째,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후의 식민지해방투쟁을 지켜보면서 서구교회는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침략과 억압을 저질렀다는 윤리적 반성을 하게 되었다. 셋째, 이러한 각성과 반성이 기독교 신학의 변화를 촉발했다. 즉, 신의 보편적 사랑에서 배제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과 종교적 배타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숙고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서구교회를 자기만의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타종교에 대한 관용’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배타적 관계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기독교 종교가 다른 종교와의 교류 속에서 스스로를 확장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선, 성서의 역사가 그렇다. 성서에서 신앙은 부족주의적 관심이나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시작되었지만, 가나안의 문화와 교류하고,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와 이집트의 여러 정신적 자산을 접하면서, 그 가치를 비판적으로 내면화시키면서 자신을 확장시켜갔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러한 유대교의 유산을 자신의 내적 역사로 받아들이며 태동했다. 그리고 최초에 확정된 종교적 신념을 반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역사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운동을 통해서 존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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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고찰만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에 비추어보아도 포용성을 갖지 못한 정신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생명력 있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 논리로써 이웃종교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선적인 태도를 갖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는 소극적인 태도로써는 자신의 건전성마저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포용성이란 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건강하고 포용력 있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이웃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가 촉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종교에 헌신할수록 타종교에 대해서도 관용과 개방성을 갖게 되는 믿음의 논리(logic of faith)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타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 ‘때문에’ 이웃종교에 대한 포용성을 갖도록 요청하는 신학 말이다. 기독교가 포용력 있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을 과거에 형성된 신조에 대한 배타적인 반복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창조적 변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現存)을 찾을 수 있어야 비로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 분을 증언하는 포용적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톨릭 신학자 폴 니터가 ‘부처 없이 나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 (Without Buddha, I could not be a Christian)고 말한 것은 이단선언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종교를 경험한 사람의 그리스도 고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말해서, 다른 종교의 지혜를 배운 사람의 마음 하나 사로잡지 못한 그리스도라면 구원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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