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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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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24 - 삶을 치유하고 이끄는 것에 대하여

posted Ja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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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24 : 삶을 치유하고 이끄는 것에 대하여
 


이십대 중반에 겪은 지독한 회의의 시간 이후 거의 삼십 년 만에 비슷한 아픔이 할퀴고 지나갔다. 익숙한 것에 관한 환멸에서 비롯된 아픔이었다. 어둠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어떤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였을까?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언어와 논리에 종교의 낌새나 해방의 기운이 비치지 않은 건 놀라운 일이었다. 생의 신성한 기원에 대한 감각을 잃은 정신의 비극은 단지 자본에 잠식된 영혼에만 뿌려진 건 아니다. 그 비극을 걷어내고자 나선 발걸음 역시 유사한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삶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목소리를 들을 순 없을까? 고통에 물든 삶에는 혼돈과 신비가 교차한다. 아니 고통은 그저 혼돈일 뿐, 신비란 말은 어쩌면 실재의 깊이에 대한 암시라기보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현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고통의 심연에서 신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 해방의 문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단어 하나가 온 삶을 끌고 오는 경우가 있다. ‘소명’(calling)이라는 말이 그렇다. 우리가 소명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자기 삶의 목적을 더 깊고 더 충만한 인간이 되는 것에 두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성한 목적에 관한 직관’을 갖고서,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다. 신학자 존 니프시는 그것이 인간이 지닌 여러 갈망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갈망’이라고 한다.
자신의 방향을 성숙한 삶에서 찾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자신의 소명을 식별하는 것과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어디에서 무엇을 통해서 성숙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인간의 성숙에 관한 성서의 이야기 가운데, 새로운 방향을 얻기 위해 씨름한 야곱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는 신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개인적 번민이든 사회적 고통이든 인간의 성숙이란 상처와 고통에 대한 대처에 있다.
고통은 이중적이다. 인간을 더욱 성숙하고 현명하고 자비롭게 이끄는 잠재성을 가진 반면, 무감각하고 모질고 이기적으로 만들 가능성도 갖고 있다. 따라서 ‘참된 자기’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심리적 정직성이 필요하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별력 있는 태도 말이다. 그렇게 불완전한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능력은 타인에 대해 더 성숙하고 관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 
성숙한 인간의 행위는 넘치지 않고 적절하며, 그의 존재는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다.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를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경청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도와 명상을 동반하는 그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정의와 겸손을 분별하는 것이다. 식별의 기준은 깊이, 진정성, 관대함에서 찾을 수 있다. 더 깊이 있고, 더 진정하며, 더 관대한 인간의 길을 물어야 한다.
오늘날 신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명한 장소는 동료 인간의 고통이다. 구티에레즈가 말했듯이, 가난한 이들의 ‘가난’이 의미하는 것은 종속, 부채, 손실, 무명, 모욕, 수치 등의 고통이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겪는 영적 위험은 이 고통에 대한 망각이다. 그 위험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과 만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고통 속에서 신의 꿈을 발견하는 상상력이 인간을 성숙하게 이끈다. 신의 꿈은 사람들이 “의롭게 행동하고, 부드럽게 사랑하며, 겸손하게 걷는 세상”이다. (미 6:8)
우리의 선택에는 위험과 실수가 있다. 완벽한 식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절대적 지침이란 없다. 필요한 것은 기꺼이 진리실험을 하는 것이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의 과제는 ‘부름’을 받아 이끌리는 곳으로 따라가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여기서 필요한 실천적 지침은 ‘간디의 부적’이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올바로 하고자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가라’는 것이다.
고요함 속의 용기와 모호함 속의 믿음은 항상 필요하다. 믿음이란 단지 어떤 신조(creed)에 대한 인지적 확신이 아니다. 믿음이란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꺼이 따르려는 태도이다. 어떤 것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온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신념이 전하는 가장 위대한 신비를 깨달았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사랑 속에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구원받기 위해서는 보는 것이 중요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꿈꾸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것 속에서 성스러움을 보는 것, 자신과 타인에게 숨어 있는 가능성을 직감하는 것, 절망적인 것 속에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갸륵한가! 잠잘 때 꾸는 꿈들(dreams)이 깊은 내면세계로부터 혹은 우리를 초월한 곳으로부터 오는 소통의 형태라면,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으로서의 ‘꿈’(Dream)도 있다. 그 꿈은 소명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서 의미, 목적, 열망의 방향을 정해주는 상상의 가능성이다. 젊은 시기에 이런 꿈을 품는 것은 운명과 방향에 관한 감각과 에너지를 주며, 모호성과 시련 속에서 단호하게 나아갈 용기를 준다.
강도당한 사람의 절망적 현실에서는 희망을 말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절망에 대해 함께 절망하는 이들의 존재는 늘 희망이다. 희망이란 새로운 세계에 관한 가능성의 감각이다. 이 가능성이 절망적 현실의 비밀스러운 핵심이다. 모든 절망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부를 때 응답하는 소명이 있는 한 용기와 확신과 고요가 그를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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