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제주 이야기 2 - 제주를 만나는 길 제주를 지키는 길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제주 이야기 2

 

 

제주를 만나는 길 제주를 지키는 길 1부
 

코로나19 바이러스 발병으로 제주공항은 한산했다. 너도나도 마스크를 쓴 채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20시 45분 102번 버스를 기다렸다. 한림성당까지 가야 했다. 탈 때 물어봤으니 기사님이 어련히 알려주겠지 했지만 내릴 곳을 한참 지나서야 다시 묻고는 거기에서 내렸다. 함께 내린 제주 아주머니가 목적지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었지만 내가 할 일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세실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제주의 겨울밤은 버스 정류장 박스를 제외한 사방에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후 하얀 전기차가 깜박이를 켜고 섰다. 세실이었다. 세실은 나를 태우고 한림성당 근처 시장 통으로 갔다. 거기엔 그 날 애월에서 한림까지 도보순례를 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술과 밥을 사주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테이블 위엔 익힌 석화가 몇 개 남아있었다. 초저녁 김포공항에서 식용유 범벅 오므라이스로 요기를 한 내게 제주의 맛은 짭조름하게 다가왔다.

2020년 1월 31일 금 한림~고산 제주길
아침 9시 20분, 제주시 북제주군 한림읍 한경면 옹포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제주제2공항반대도보순례 <제주를 만나는 길 제주를 지키는 길>(이하 제주길)은 마을과 마을 사이를 차로 이동하고 각 마을에 내려서는 가가호호 우체통에 전단지를 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 날의 인도자는 고성환이었다. 그는 각 마을에 도착할 때마다 마을 해설을 해 주었다.  10시에 도착한 협재리는 브로콜리 농사를 주로 지으며 일제와 흥망성쇠를 함께 한 마을이었고, 12시 30분에 도착한 한경면은 애월, 한림과 더불어 농사로 부를 이루어 땅값이 높고 사막이 있고 방사림이 조성되었으며 60~70년대는 밀항으로 먹고 산 곳이라는 식이었다.
협재리-금능-월령-금등-판포-두모-신창-용당-용수-고산까지 첫 날 내가 본 제주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바람이 많아 지붕은 낮고 돌담 위로 선인장이 피어난 집들은 한 채 한 채 그림 같았으며, 그 집들 우체통마다 전단지를 끼워 넣는 제주민들은 어찌 그리 바지런하고 열성적인지. 그들의 잰걸음 바쁜 손마다 고향 제주를 사랑하는 애절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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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만나는 길 제주를 지키는 길
 


이 날 숙소인 제주교구 신창성당 조수공소에서 제주3대 테리우스 홍기룡의 사회로 시민토의가 있었다.
부모님 고향이 고산이라는 김수홍은 서울 거주자로 이번 제주길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으로 스스로 뒤집지 못하는 거북이처럼 생긴 제주가 제주제2공항 사태를 뒤집은 시작은 제주도민의 승리라고 했다.
오창현 수산리 청년회장은 대학 때 학자투로 삭발투쟁까지 했으나 이후 돈을 벌어서 활동가를 돕는 선에서 살자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제2공항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철학에세이>를 다시 읽었다고 했다.
“저희 부모님이 두 분 다 수산초등학교 7회 졸업생이시고 저는 38회 졸업생이에요. 수산초등학교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요.”
그의 시 ‘활주로의 북쪽’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시가 되었다.
우리 마을을 공부하니 역사가 보이고 그 안의 슬픔과 아픔이 보였다고 했다.
“돌담을 보면 슬픔이 보여요. 밭에서 꺼낸 돌들을 쌓은 게 담이거든요.”
오창현은 무밭 15,000평과 한라봉, 천혜향, 수루미 하우스 3,000평 등을 가진 농부다.
“나를 위해서라면 제2공항 싸움 시작도 안 했어요. 돈 없는 삼촌네, 할망네들 때문이에요. 서울 광화문에 가보니 뒷골목에 도시빈민, 영세상인, 거지들이 보였어요. 제주제2공항이 되면 동네사람들도 그들처럼 되는 거예요.”
오창현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현재 제주병원에 근무하는 아내가 퇴직하면 하우스 옆에 공판장을 지어서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제2공항이 들어서면 하우스도 초등학교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대구에서 제주로 이주한 지 8년 된 그린미나는 샴푸도 치약도 거의 쓰지 않으며 자연환경을 보호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선택한 곳인 제주가 제2공항으로 망가질 걸 생각하면 노후가 너무 슬프다고 했다.
박찬식 상황실장은 어려서부터 정치적 성향이 강했으나 자신은 참모 스타일이라고 했다. 서당 같은 연구소를 차려 책도 쓰고 연구도 하려고 귀향했는데 제2공항투쟁하면서 정치적 인물이 돼버려 고민 중이라고 했다.
홍기룡 조직위원장은 제주제2공항투쟁은 도전해 볼 수 있는 싸움이라고 했다. 오늘은 우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니 다음은 도민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되어야 할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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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길 도보순례

 

 

2월 1일 토 신도1리~모슬포 제주길
남방큰돌고래를 지키는 해양동물 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에서 두 명, 한살림 생산자회에서 세 명, 제주시 신성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 두 명이 왔다.
신도1리부터 신도2리를 거쳐 모슬포까지 걸었다. 전날 참가자들의 열과 성에 감동한 나는 이날 카메라와 함께 전단지를 들었다. 나도 그들의 손발에 보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도는 성산과 더불어 공항예정지였다. 그래서인지 공항 부지를 뺏겨 개발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주민이 있었다. 그는 전단지를 나눠주던 내게 따졌다. 내가 대답을 하자 그가 화를 냈다.
“왜 제주 사람도 아닌 외지 사람이 와서 이래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있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김수홍이 와서 무마해주었다.
“삼춘~”

그 한 마디면 제주에선 통한다. 같은 제주 사람이면 훨씬 우호적인 게 제주의 특징이었다. 제주 말 한 마디 못 하는 나는 어쩌다 마주친 주민의 박대는 그러려니 하며 신도의 지질과 환경을 유심히 보았다. 공항은 건설되어서는 안 되지만 굳이 짓는다면 허허벌판에 띄엄띄엄 주택이 대부분인 신도가 예정지로 적격이었다.
2012년 수행된 ‘제주 공항개발 구상연구’에서 “환경과 소음피해가 가장 적고 오름도 절취할 필요가 없으며 삶의 터전을 떠나 이주해야 하는 가구도 거의 없는 곳”으로 평가됐던 신도리 해안은 그야말로 유리한 후보지였다. 그런데 왜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예비후보지 31곳에 들지 못했을까? (참고도서 <제2공항 너머, 시민의 대안>, 정영신, 김학준, 이희준, 노민규 지음, 진인진) 그리고 결정된 곳이 왜 하필 그 영험한 성산 일출봉이 있는 성산일까?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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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예정부지였던 신도

 

 

18시 30분 제2공항·송악산 개발 중단을 위한 대정문화제가 있었다. 
그날 밤 강정마을로 갔다. 작년 11월,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 전면취소! 생명과 평화의 섬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9일기도> 때 청와대 옆에서 만난 잔다크를 강정공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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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망가진다 개발 철회하라

 

 

2월 2일 일 수산초등학교 진안할망당 청소
무속인에게서 날을 받았다고 했다. 그곳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 기념할만한 날에 공교롭게도 제주에 내가 있었다.
제주시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방어유적으로 3성 9진에 속하는 ‘수산진성’안에 있는 학교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인 수산진성은 성곽 둘레가 352.72m, 높이는 4.84m로 도내 9개의 진 중 원형에 가깝게 보존이 된 곳이며, 북북동쪽에는 성 축조할 때 부역을 대신에 죽은 아기 넋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진안할망당’이 있다.  
수산초등학교 오른쪽 옆 귤밭을 지나면 빽빽한 나무 사이에 자리한 진안할망당.
오창현이 들려준 그곳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조선 세종 때 수산진성을 시축할 때 지역 주민들 모두 부역을 하거나 공출을 내는데 유독 한 여인이 너무 가난해 아무 것도 낼 게 없었어요. 관리가 독촉을 하는데 아이가 울자 여인은 집에 아무 것도 없으니 아이라도 데려가라고 했지요. 관리가 그냥 갔는데 그 다음부터  성을 쌓으면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거예요. 그 때 한 스님이 그 때 그 원숭이띠 아이를 잡아다 바치면 된다고 해서 관리는 그 여인의 아이를 데려다 바쳤대요. 그러자 성이 무너지지 않고 완공됐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후로 밤마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대요. 어느 날, 동네 한 여자가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그 자리에 갖다 놓으니 아기 울음소리가 그쳤대요. 그 곳이 지금의 진안할망당이에요.”
마을 청년들은 땅을 파고 쓰레기를 걷어냈다. 한 포대 두 포대 서너 포대……. 지난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마을사람들이 진안할망당에 드나들었는지 쓰레기는 나무뿌리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그 중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1992년에 한라산 소주로 바뀐 한일소주병들이었다. 진안할망당은 마을사람들의 추억과 역사가 묻혀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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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할망당 청소하러 모인 마을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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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할망당

 

 

수산초등학교는 진성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기념물 급이었다.  
교목인 소나무를 팔면 학교 건물을 다시 지어주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수려한 소나무와 교화인 백동백나무, 진성 너머로 키를 높여 도열한 팽나무와 비자나무들이 있는 학교는 1992년 ‘전국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소년한국일보사)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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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초등학교

 


수산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율급식 학교였다. 진안할망당으로 가는 길에 있던 귤밭은 학부모들이 공동투자한 과수원이었고, 거기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식재료를 사서 돌아가며 자녀들 점심밥을 담당했었다. 1975년 문교부 지정 자활급식학교로 급식소를 신축했고,  1979년 문교부 지정 시범 급식학교가 되었다.  

할망당 청소를 마치고 공항 예정지인 철새도래지 오조리에 가보았다.
‘조류 및 야생동물 충돌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공항주변 13km이내에 조류를 유인할 수 있는 시설의 설치나 부적합한 토지이용을 방지하게 되어있다. ‘조류를 유인하는’ 과수원을 지나 성산일출봉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철새들을 바라보니 비행기에 치여 죽기 전에 물과 흙이 망가져 터전을 잃어버릴 수백 수천의 생명체들의 운명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희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니?’
저 멀리 붉은 포크레인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내 한숨을 새들은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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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일출봉 앞 오조리 철새 도래지

 

 

공항예정지를 부감으로 조망하기 위해 독자봉 전망대까지 올랐다. 빽빽한 수풀과 그 아래 습지, 오름들이 초록으로 무성했다. 그 나무들과 오름들을 베고 습지를 메꿔 공항을 만든다고? 마른 땅에 평평해서 건설하기 훨씬 수월한 신도를 놔두고?
현재 제주공항을 중심으로 양쪽의 거리는 눈대중으로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안개일수의 차이 때문일까? 강정해군기지와 중국과 미국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혹시 부동산 투기를 노리는 대기업 소유지가 공항예정부지 근처에 있지 않을까? 그 땅을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본 이상 나의 의구심은 성산을 중심으로 제주 전역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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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예정부지 성산

 

 

돌아오는 길, 공항예정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한라봉과 천혜향 과수원에 들렀다. 수산리 오만탁 전임 이장에게 공항부지와 보상에 대해 물었다. 그가 말했다.
“보상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평생 농사짓던 사람이 어디 가서 무얼 해요?”  
제주 땅에서 일궈낸 과실로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그를 키웠다. 그리고 이제 그와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자손들을 키우고 있다. 이미 공항이 하나 있는데 제주 사람들에게 생명을 허락한 땅, 그 땅을 또 다른 활주로로 만들겠다는 이 나라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지친 몸과 마음으로 강정공소를 찾았을 때 잔다크가 부엌에 앉아 자잘한 게들을 절구에 빻고 있었다. ‘깅이죽’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잔다크의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던 음식이라고 했다. 거무죽죽하고 보드라운 깅이죽을 목에 넘기며 제주의 정기를 빨아들였다. 제주가 내 몸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2월 3일 월 강정마을
겨울 아침 7시는 아직 어둡고 추웠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00배를 하기 위해서였다. 바닷바람 속에서 밧줄로 현수막을 묶고 깔개를 폈다. 지난 해 11월, 청와대 옆에서 9일기도를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활동가들이 절을 했다. 그 옆에 돌하르방처럼 서 계신 문정현 신부님 뒤로 해군기지가 떡하니 있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강정싸움’은 제주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강정해군기지와 제주제2공항은 같은 맥락에서 강행되는 개발이다. 강정해군기지를 막지 못했어도 강정의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제2공항을 막지 못한다면 역시 제주는 그와 같은 이주민들을 살게 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그리 쉽게 물러날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개발의 삽날 위에서 천민자본주의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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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절이 끝나자마자 공소에서 잔다크의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마신 후 출발했다. 세실이 운전하는 렌터카를 타고 한라산을 넘어 공항으로 향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한라산이 나를  불렀다. 한번 와 보라고. 언젠가 한라산에 갈 날을 기약하며 나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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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해군기지 앞 STOP! 제2공항

 

 

제주를 만나는 길 제주를 지키는 길 2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제주를 만나는 길, 제주를 지키는 길’은 지난 번 참여했던 대정에서 중단되었다. 2주 후 17일부터 재개한 도보순례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20일 저녁에 제주도로 향했다.
대정과 중문과 강정과 서귀포시를 지나 남원읍에서 표선면, 신산리에서 시흥리를 끝으로 성산읍사무소 앞에서 19시에 ‘도보순례 경과보고 및 제2공항 반대 투쟁 승리 문화제’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남원수녀원에 도착했을 때 집행부는 이틀 남은 도보순례를 잠정 연기했다. 제주도에서 확진자가 나온 탓이었다.

다음 날인 2월 21일 오전 8시 이전에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주용기 교수를 만났다. (사)갯벌연안보전포럼 이사와 생태문화연구소 소장을 연임하고 있는 그는 제주제2공항을 막고자 제주의 철새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오창현 수산리 청년회장과 함께 전날 서귀포를 거쳐  남원의 철새를 보았다. 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괭이갈매기, 뿔논병아리, 바다 직빠구리, 왜가리, 중대백로, 흑로, 재갈매기 등등 가는 곳곳에서 수많은 새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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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철새를 연구 조사하는 주용기 교수 

 

 

오후 한 시, 신양 항구에서 ‘새와 생명의 터’ 대표인 나일 무어스 박사와 새 촬영을 하는 예원과 비자림숲을 지키고 있는 키미를 만났다. 우리는 성산 일출봉 뒤편을 보기 위해 다함께 배에 올랐다. 출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연기념물 제450호 뿔쇠오리 한 쌍을 보았다. 환경부가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새였다. 성산 일출봉 뒤 바닷물에서 자맥질하는 뿔쇠오리 한 쌍을 보면서 제2공항이 생기면 새들은 세상을 잃는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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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일대를 탐사하는 제주 철새 조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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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을 한 바퀴 돌며
 


그날 밤 배를 탔던 사람들과 그 일에 관심 있는 제주 사람들이 동부종합사회복지관에 모였다. 나일 무어스 박사의 설명과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새를 사랑한 나일 무어스 박사는 비자림로 난개발 때문에 제주에 왔는데 나무, 새, 물고기, 곤충 등을 각각 이해하면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일례로 저어새 등 생명을 보존하면 다른 가치도 보존할 수 있으므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와 조류 충돌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닙니다. 멸종과 생물 다양성의 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다른 미래로 가는 길도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비전을 제시하며 싸워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새를 공부하고 촬영해 온 예원은 이날 5~6시간 동안 성산동부지역 해안지역 탐조활동을 했다. 하도 앞바다부터 12개 마을의 포구, 용천수, 해안을 돌아보면서 7천 마리 이상의 개체수를 보았고 대정에서는 저어새 6마리를 50미터 거리에서 보았단다. 그런데 관광객이 와서 사진을 찍자 새가 섬을 돌아 반대편에 앉았다고 한다.
“새가 있으면 사진 찍어야지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줘야지 했으면 좋겠어요.”


키미는 멸종위기보존에서 생물다양성보존과 서식처보호로 생태계 전체를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자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넓고 위대한 생태계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관찰 목표를 정하고 둘째는 자연보호를 해서, 새가 안심하면 가까운 거리에서도 볼 수 있어요. 좋은 디자인을 하면 제주를 더 잘 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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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생태계를 사랑하는 사람들

 

 

2월 22일 제주 본향당 굿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 7시부터 마을 할머니들이 수산본향당에 단체로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입고 모여 앉았다. 수산본향당은 수산1~2리, 고성, 오조, 동남, 성산리 등 여러 마을에서 본향으로 모시는 통합형 신당이다. 당집에는 나무로 만든 남녀신상이 있는데 예전에 술 취한 마을 청년들 내기로 목이 달아났다고 한다. 물론 신상의 목을 잘라간 그 청년 집안은 몰락했다는 소문과 함께.   
굿당 앞에 신이 들어갈 길을 하얀 천으로 묶어 내었다. 신을 부르는 깃발과 함께 태극기가 꽂혀있었다. 한국전쟁과 관련 있을 거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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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당 굿

 

 

굿당에서 상도 없이 마을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한 오용부 집서관은 마을 주요 인물들과 군인과 공무원과 주민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아무 데서도 4·3제주항쟁에서 당한 일을 말할 수 없을 때 오직 굿판에서만은 무당의 입을 통해 그 일을 거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을굿은 주민들의 속풀이 한풀이의 장이었다.
나는 오후 다섯 시까지 이어질 굿을 뒤로 하고 한라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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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굿

 

 

가는 길에 ‘우리가 사랑하는 숲’ 비자림 로에 들렀다. 시민모임으로 막아낸 도로, 지켜낸 숲 속에서 ‘함께 살자 성산’과 ‘제주제2공항반대’를 보았다. 작고 작은 삼나무 집에서 기거하며 온몸으로 숲을 지켜낸 키미와 그린씨를 그려보았다. 비자림 로를 따라 성산 제2공항으로 불도저와 포크레인을 끌고 들이닥칠 개발 폭력 앞에서 맨 몸으로 항거하는 연약한 인간의 숭고한 투지. 나는 숲에 남아있을 그들의 숨소리와 떨림에 귀 기울여 보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이 결국 우리를 지켜줄 거라는 진리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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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숲에서

 

 

성판악 입구에서 한라산에 발을 들였다. 나를 받아주는 한라산에 감사하며 한 발 한 발 고도를 높였다. 속밭 휴게소에서 숨을 고르는데 나무 위 까마귀 한 쌍이 서로 부리를 부비고 깃털을 솎아주고 있었다. 사람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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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까마귀 한 쌍처럼

 

 

그곳에서 정상은 다음 기회로 남기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거의 다 내려올 즈음, 야트막한 나무 사이에서 기척을 느꼈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보니 뿔 달린 노루였다. 노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둘의 네 눈동자가 마주쳤다. 제주의 자연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나 비록 작고 유약하지만 이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지키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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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눈이 마주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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