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활동가, 이재경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의 주요 사업은 심리상담 활동입니다. 그래서 길목인 인터뷰를 상담활동(심심)을 하는 분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번에 인터뷰하는 이재경님이 다섯 번째 상담활동가입니다. 2월10일 오후3시 ‘세종로정신분석연구회’가 있는 르메이르종로타운 사무실에 세 명이 마주 앉아 차를 준비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눕니다. 이곳이 길목 ‘심심’ 활동의 현장입니다.
Q : 만나서 보니 모임에서 몇 번 뵌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전 정보가 별로 없어서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가족과 교육 그리고 직업 같은...
A : 듣는 일에 익숙한데 제 이야기를 하려니 약간 어색합니다.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좋은 부모님을 만나 어린 시절을 비교적 무난하게 보냈습니다.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고 교육공학을 전공했어요. 교육공학을 전공한 이유는 방송분야에 취직할 수 있다기에 선택했는데 적성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지금 상담일을 하다 보니 그때 배운 교육심리학이 도움이 됩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27세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 후 30세가 됐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두 분의 죽음이 이후 저를 힘들게 했지요. (부모님 얘기를 하며 눈물이 흘리는 모습에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Q :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은데요?
A : 외국계 회사에서 5년간 비서로 일했습니다. 비서는 임원의 일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마케팅 서비스 업무도 함께 해야 했습니다. 광고 마케팅 부서 소속이었거든요. 다녔던 회사가 글로벌 음료 회사로, 입사했을 즈음에 막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사용하다보니 다른 직원들보다 좀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었어요. 그러나보니 일을 많이 맡게 되었어요. 업무가 많아 그 시절이 개인적으로는 일이 재미없고 힘들게 보냈던 시간으로 기억되네요. 만약 그때 상담을 받았더라면 좀 더 즐기면서 열심히 일했을 텐데, 조금은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Q : 그 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상담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집니다.
A : 젊은 시절에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의 죽음을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니 가슴 속에 응어리가 있었지요. 제가 왜 늘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기운이 가라앉아 있는지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서도 자신을 돌보지 못할 뿐 아니라 아기도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지요. 그러자 아이에게 문제가 나타나게 됐어요. 학교 갈 나이가 되었는데 학교 가기를 싫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어요.
Q : 엄마가 되어서 아이의 학교 부적응 모습이 변화의 계기가 되었나 봅니다.
A : 맞아요. 그래서 아이가 놀이치료를 받게 되었어요. 1년 정도 진행을 하다가 아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문제는 엄마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저도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이은경 선생님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아이도, 저도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놀이치료에 가는 것을 싫어하던 아이가 이은경 선생님과 상담은 재미있어 하고 점점 관계방식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학교도 잘 다니고 교우관계도 좋아졌죠. 저 역시 제가 게으르고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깊은 우울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아이가 변하고, 저도 변하니 가족 전체의 관계도 점점 좋아졌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상담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결국 자기 자신이 얼마나 우울한지,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제 문제가 아이 문제가 되었지요.
Q :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담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이제는 상담 경력이 꽤 되겠구나 싶습니다.
A : 이은경 선생님을 만나서 상담을 받다가 어느 날부터 선생님이 너무 멋져 보이기 시작했어요. 또 오랫동안 궁금했던 문제들을 이해한 순간 제 안에 따뜻함이 번지면서 깨달음 같은 것이 생겼어요. ‘유레카!’ 그 옛날 아르키메데스가 외쳤던 그 단어가 생각났어요. 종교적인 표현으로는 구원받았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날 그 느낌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2005년부터 상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그 이후 여러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도 했습니다. 상담사로서의 경력이 대략 9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Q : 내담자에서 상담사로 변신을 하였네요. 그럼 지금은 상담사라는 직업인인가요?
A :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했던 경력이 있지만 아이 출산 후 전업주부이고 엄마로서 살았는데 다시 일을 가지게 되었지요. 내담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상담이 가진 치유의 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 일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담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Q : 가정을 이루는 일원으로 상담사가 가정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 : 가정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구성 단위로 건강해야 사회의 건전함을 이룬다고 생각해요. 저의 개인적인 가정사가 우울함의 원인이었고 그로 인해 아이를 양육하면서 어려움도 이미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편이나 20대가 된 딸이 상담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문명사회에서는 갈수록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상담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 내담자들에 대한 얘기는 하기 어려운 것으로 들었어요. 자세한 설명은 어렵겠지만 대략이라도 이야기해 주면 상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A : 그렇지 않아도 인터뷰를 생각하면서 내담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첫 번째 내담자는 아는 분의 아들이었어요. 처음이라 제가 긴장이 되어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요. 좀 더 이해하고 도움을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분이었어요. 또 기억에 남는 분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한의대를 자퇴하고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상담을 받았던 분이었어요. 상담을 하면서 로스쿨을 가고 싶다고 했었어요. 2년 전에 상담을 종결했는데 올해 로스쿨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소식을 들으며 저도 너무 기뻤어요.
Q : 자살 충동을 느끼는 내담자는 없었나요?
A :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내담자가 있었어요. 그 분은 상담을 받으면서,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했어요. 그 동안 자신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지 못했는데 그 부분이 나쁘거나 창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되었지요. 그런 분들을 만나며 저 또한 위로를 받게 되지요. 자신의 문제를 알아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자기 문제를 접하면 자기를 탓하는 사람이 많아요.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자기의 약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상담을 꺼리거나 혹시 상담을 받았다가 해결이 안 되면 더 약해질까 걱정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Q : 힘들었던 상담의 경험은 어떤 경우가 있었나요?
A : 심심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 오게 된 내담자였어요. 좋은 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젊은 남자 분이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분노로 가득한 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했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상담시간동안 여러 어려움이 많았죠. 하지만 이런 어려운 경험들을 통해서 이후 비슷한 경우가 되면 그만큼 압도당하지는 않게 되었죠.
Q : 상담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A :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에게 도움이 못 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어렵습니다. 무엇도 해줄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생길 때 많이 힘이 듭니다. 계속 공부하고 있고 경험을 늘려가면서 대처하는 능력도 늘어갈 것이라 기대하지만 상담 현장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마음이 편해진다는 반응을 듣게 될 때는 상담자로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Q : 내담자의 얘기를 듣다가 내담자의 무력감이나 아픔 같이 것이 투사되어 상담자도 힘들지 않나요?
A : 평소 내담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담아내는 훈련을 하지만 내담자의 말과 무의식적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좀 어렵습니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내담자의 무력감과 불안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상담자로서 적절하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내담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또 이런 이유로 슈퍼비전을 받고 있습니다.
Q : 그동안 상담사들을 인터뷰하면서 공부 모임이라고 들었던 ‘세종로정신분석연구회’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 : 2009년에 설립되었고 작년에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은경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았던 분들이 모여 책 읽는 모임으로 시작해서 정신분석적 임상을 공부하고 훈련하는 연구회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읽을 책을 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공부를 하고 있어요. 상담 경험도 서로 나누고요. 여름과 겨울에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특강도 진행하고 있어요. 상담하시는 선생님들은 꾸준히 슈퍼비전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10년 동안 꾸준히 해 왔습니다. 현재 열 명의 정회원이 있고 휴회회원은 네 명이 있습니다.
Q : 상담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요. 대화 이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지요?
A : 상담은 전적으로 대화로 진행됩니다. 대화를 들으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사는 의미 있는 질문을 하거나 내담자의 정서를 소통해줍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50분 진행을 하게 됩니다. 이런 대화의 과정에서 내담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와 솔직한 본심을 얘기하게 됩니다. 심심의 경우 상담의 회수는 통상 20회 정도를 기본으로 진행하지만 경우에 따라 내담자의 요청으로 10회 정도 더 추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특별한 경우에, 내담자가 30회로 미처 자신의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며 상담을 더 요청할 경우에는 별도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Q :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되면서 심심 상담은 조합의 주요 사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A : 길목협동조합이 2013년에 설립되었는데 저는 2014년에 심심 프로그램 준비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2015년부터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현재 세분이 심심 상담사로 함께 일하고 있어요. 사협으로 전환되면서 상담활동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럴수록 부담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 정신분석적 상담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상담사도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이 사협 길목의 주요 사업이 된 것을 계기로 조금씩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외부 여건의 변화를 계기로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Q : 상담사로서 꿈이나 포부가 있으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 마디 부탁합니다.
A : 상담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그 동안 포기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어요. 이 일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이해한 만큼 내담자를 이해하게 되니까요. 그러니 쉽지 않은 과정이죠. 그렇지만 내담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고 그런 역할을 하는 상담사로 남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한 20년 정도 상담사로 일하고 싶어요. 이은경 선생님과 노경선 선생님이 제 롤 모델이죠. 내면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신 이은경 선생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2주에 한 번씩 하는 심심공부모임에서 뵙는 노경선 선생님께도 감사하구요. 노 선생님 뵈면 내공이 느껴집니다. 참 쉬운 말로 편하게 내담자를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서 저도 많이 배워요. 두 분에게 많이 배우며 전문 상담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1시간 남짓 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담소를 나누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부모님 얘기를 하며 몇 차례 눈물을 짓던 모습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 동안 인터뷰를 하며 지나온 삶의 얘기를 하며 눈물 흘리던 조합원들도 다시금 생각납니다. 심심 활동가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상담에 대한 간접적인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에 상담의 필요성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사협 길목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확인하는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