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목사 시즌2
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6
슬프도록 붉은 별, ‘빈탄부사르’를 아시나요?
(조선인군속, 빈탄맥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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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년 쯤 지난 후, 대한민국 근현대사 수업 중 2020년의 사건을 언급하게 된다면....... 그 중 단연 탑은 코로나19가 아닐까? 2019년 12월부터 이어지던, 친환경적 생활과는 대척점에 있는 내게도 염려될 만큼 따뜻했던 겨울, 중국 우한 일대에서 시작된 바이러스성 폐렴은 순식간에 중국을 집어삼킨 후,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뻗치더니만, 곧 전 세계로 펴져나가기 시작했다. 초기, 중국과 관련된 모든 존재가 바이러스의 숙주라도 되는 것 같은 두려움에 우한교포들의 격리수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집회가 있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이제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확진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지거나, 마스크를 잘 쓰고, 손 씻기를 잘 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공포는 사회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백인들의 사회에서 이 공포는 때로 황색피부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비단 중국인 뿐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 전반에 대해 가해지는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폭력은 점점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크게 확산될 위험성이 있는데, 만약 전 유럽에서 창궐할 경우, 동양인에 대한 혐오는 그간 터키 등 유색인종에 대해 드러냈던 불편함과 더해져 더욱 공격성을 띨 가능성도 있다 하겠다.
휴우....... 우울한 이야기를 계속 끄적이려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럴 때 반가운 벗이라도 만나 한 잔 하며 수다 떨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연달아 모임이 취소되는 통에 우울함을 한 자락 더하게 되기 일쑤다. 그러니 할 수 있나, 홀로 동네 편의점이나 기웃거릴 밖에.......
자! 우울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요즘 편의점 맥주 칸은 바라볼 맛이 난다. 일단 만원에 네 캔의 벽을 넘어 다섯 캔 혹은 여섯 캔 묶음 할인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대형마트 정도에서 중요시즌 때나 접하던 가격을 집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로 5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접한다는 건 분명 흥미롭고 신난다. 국적이 다양해진 것도 재미있다. 종래 일본, 중국, 유럽, 미국 정도에 한정되었다면, 지금은 ‘아니, 이 나라에도 맥주가?’ 싶은 아시아국가의 맥주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독일, 체코, 베네룩스3국, 영국 및 아일랜드 등 한국에 잘 알려진 유럽국가 이외에도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에서 태어난 녀석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처럼 다양한 국적을 자랑하게 된 데에는 아마도 해외여행 경험에 기인하는 수요증가 혹은 주세변화에 따른 수입단가를 맞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주를 찾아 진행되는 국가다변화 등의 이유가 있지 싶다. 실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할 수 있는 편의점 맥주 칸에서도 유독 요즘 내 눈에 들어오는 맥주가 있다. 그건 ‘빈탄(Bint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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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라는 뜻의 빈탄은 썰을 풀어갈 맥주의 이름인 동시에, 적도 부근에 위치한 섬 이름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영토 중 수마트라 섬의 북쪽 바다에 위치한 빈탄 섬은 슈리비자야, 촐라 왕조 등의 영향아래 불교문화에 편입되었으나, 13세기부터 발흥한 이슬람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다. 이중 17세기초반까지 해상왕국으로 맹위를 떨쳤던 아체는 술탄 이스칸다르 무다(1607~1636)의 치세 중 당대 유럽 최강국이었던 포르투갈의 함대를 빈탄 앞바다에서 궤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통치권 다툼으로 급격히 쇠락한 이슬람왕조는 끝내 지금의 인도네시아 전역을 수중에 넣은 네덜란드에 의해 명운을 다하게 되었다. 이후 오래도록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빈탄은 잠시 일본의 수중에 놓이기도 했다. 1945년 일제의 항복이후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 독립투쟁이 성공하게 되면서 빈탄역시 독립 인도네시아의 일원이 되었다. 1945년은 빈탄맥주의 시작연도이기도 하다.
분명 인도네시아에 속해 있긴 하나 말레이반도에 바싹 다가서있는 통에 본국보다 동남아 최대 경제 강국인 싱가포르에 더 가깝다. 모두가 알고 있듯 싱가포르는 돈 많고 땅 좁은 나라! 이에 국가를 넘어선 싱가포르자본은 인접국가의 부동산을 향한 공격적 투자에 나섰고, 싱가포르의 경제적 자장 아래 있던 빈탄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후 빈탄에서는 크게 두 부류의 싱가포르인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놀러온 관광객이거나 각종 시설의 관리자거나....... 그 섬 사람들은? 거대자본의 종업원이나,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이 되어갔다. 빈탄은 자본에 의해 형성된 세계적인 관광지인 동시에 ‘국제적 계급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연원을 지니고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빈탄은 사실 맛의 특성이 크진 않다. 더운 국가의 라거맥주가 대부분 그렇듯 탄산기 가득한 청량감이 가볍게 스친다. 목을 넘어갈 때 약간의 쓴맛이 느껴지지만 이 역시 그리 강하진 않다. 이 맥주의 강렬한 인상은 맛보단 외장에 있는 붉은 별이다. 예수 다음으로 체게바라를 존경하는 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도네시아어로 붉은 별을 뜻하는 ‘빈탄부사르’로 불렸던 조선인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땅에 갔으나,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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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7일 하와이 진주만, 일요일 아침의 한가함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일본군 폭격기들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실제 피해보다 본국이 공격당했다는 충격의 도가니탕에 미국인들을 빠뜨리며 시작된 태평양전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동남아시아를 넘어 호주 북부지역까지 무리하게 전선을 확대한 일본군은 사로잡은 포로관리와 밀림 속 기동로 확보를 위한 건설인력 부족에 허덕였다. 이에 점령지역 전역에서 ‘포로감시원’모집을 시도했으나, 목표인원에 턱없이 부족했다. 곳곳에서 ‘응하지 않으면 배급 등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이 이어졌고, 청년남성들을 반강제로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조선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약 두 달 정도의 형식적 교육 후 그들에게 주어진 명칭은 ‘군속’, 최하계급인 이등병들에도 수시로 구타와 각종의 인권유린을 당했을 만큼 그들의 위치는 낮았다. 심지어 군마나 군견보다 하찮게 여겨질 정도였다. 조선인군속 다수가 배치된 곳은 인도네시아 전선이었다. 변변한 계급도 없이 그저 모자에 빨간 별을 달고 있었기에 현지포로들은 ‘붉은 별(빈탄부사르)’이라 칭했다. 그곳에서 조선인군속들은 포로수용소 관리 뿐 아니라 도로 및 군사시설 건설, 군수물자 운반 등 일본군이 필요로 하는 일들 모두에 동원되었다. 적도인근의 더위와 습도 속에서 겪는 상상초월의 노동 강도 속에서 많은 이들이 건강을 잃거나 죽어갔다.
그들의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의 항복 이후, 인근을 재점령한 백인들에 의해 열린 전범재판에서 살아남은 129명의 조선인 군속 중 14명이 사형을 당했고, 나머지 전원이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포로의 사망률이 높았던 것을 근거로 포로수용소 관리자 모두를 전범으로 처리한 결과였다.
점령군 백인들의 눈으로 보기에 조선인군속은 그들이 죽도록 혐오하고 미워했던 일본군에 다름 아닌 존재들이었기에, 징역형을 받은 이들은 일본 스가모 형무소로 보내졌다. 자신들은 강제로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들이라는 내용의 석방탄원을 냈지만, 미군정에 의해 간단히 기각 당했다. 형기를 마친 이후에도 그들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전범낙인이 찍힌 그들에게 돌아갈 고향은 없었다. 기본적 생활을 위한 기반이나 능력도 없었던 그들의 남은 삶은 이국 땅 어둔 거리에서 죽을 때까지 비참히 이어졌다.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들에게도 비극은 이어졌다. ‘전범가족’에 대한 혐오는 비난을 넘어 물리적 적대행위를 낳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조선인 군속의 아내와 자녀들 중 상당수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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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냐?’라는 상투적 투덜거림이 있다. 적어도 일제 강점기 인도네시아로 끌려갔던 조선인군속들에게는 그 어떤 국가도 정말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었다. 무너진 대한제국은 그들을 비참하게 했고, 일제는 그들을 잔인하게 이용했으며, 연합국은 그들의 가녀린 숨통을 조였고, 대한민국은 그들을 외면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세상을 바꿀 힘은 없다. 그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은 ‘기억과 연대’가 아닐까 한다. 힘 있는 이들이 장기판의 졸처럼 쉽게 이용하곤 폐기처분해버린 이들, 그 감춰진 이름들을 끝까지 기억하는 것, 강고한 혐오의 물결 속에 작은 존재들 하나하나를 느끼며 만나가는 것 말이다. 사는 자리 곳곳에 위치한 편의점 맥주 진열대 속 빈탄의 붉은 별은 어쩌면 지금 우리들에게 그 별을 달고 피 흘렸던 이들, 빈탄부사르를 기억해달라는 외침이 아닐까한다. 그것은 한편 어려움에 처한 존재를 손쉽게 혐오하려는 자들에 맞서 우한, 중국, 대구의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의 ‘찐 삶’을 느끼라는 것이기도 하겠다. 뭐, 그렇다고 맥주를 마시며 너무 인상을 쓰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빈탄은 한 잔 쭈욱 넘기는 순간, 요즘처럼 흉흉하고 서늘한, 그 편찮은 느낌을 청량감 진하게 날려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