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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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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트레킹 1부 - 트레킹 시작 전 사흘간의 기록

posted Ma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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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트레킹 1부 - 트레킹 시작 전 사흘간의 기록
 


#Dolomiti Day -2 (2018년 8월 9일, 목)
아직 젊다고.. 천만에 말씀..


7월 몽블랑 트레킹을 마치며 이어서 8월 돌로미티 트레킹에 대해 예고하였다. 하지만 돌로미티 트레킹에 대해 글 쓰는 건 몇 번이고 주저하였다. 기실 몽블랑 트레킹을 하면서도 기록을 남기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글쓰기는 파리에서 출발하는 TGV를 타고 샤모니로 내려가던 중에 풍경 사진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몽블랑 트레킹을 시작하는 샤모니 근처에 다다르니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산을 유독 좋아하는 동기들 모임에 이 멋진 경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열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찍어 친구들에게 SNS를 보내면서 시작한 톡질이 발전하여 몽블랑 트레킹 전체 여정을 중계하듯 글쓰기가 이어졌다. 이번에 기록하기를 망설였던 것은 지난 몽블랑 트레킹을 돌이켜보니 여정 중에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자판에 너무 코 박고 집중하였던 시간이 많지 않았나하는 반성 때문이다. 하지만 돌로미티 트레킹 시작하는 날 아침 이탈리아 북부 산악 마을인 코르티나담페초 숙소 근처를 산책 하는 도중에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이 움직여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보고 배운 게 의식을 규정하듯 이십 대 중반 이후부터 오십이 되도록 도시계획과 교통이라는 학문 언저리에서 서성이다보니 여행지로 향하는 교통수단 선택에도 영향을 받는다. 파견지 파리에 와서 일 년 동안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던 교통수단으로 이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기야 가족들이 여름방학 기간에 한국으로 가는 바람에 단출하게 내 몸 하나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니 비교적 선택에 제약이 없기도 했고, 가성비 높은 수단이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희망도 있었다. EU 출범 이후 영국을 포함한 유럽 대륙 내에서는 국경의 의미가 느슨해지고, 육상 이동의 경우 거의 모든 제약이 사라졌다. 국경을 넘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버스 노선들이 생겨났고, 웹과 모바일에서 검색, 예약, 결제, 발권까지 이루어져 버스 운영회사의 입장에서 상당한 비용절감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들 노선들은 대부분 일찍 예매하면 상당히 저렴한 금액으로 도시 간 이동이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이 버스로 파리에서 당일치기 브뤼셀 여행을 일인당 10유로 정도의 비용으로 다녀온 적도 있다. 다만 장거리 노선은 중간중간 들리는 도시가 서너 군데 있어 각 구간마다 옆자리 동행자가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옆자리에 홀쭉 또는 풍만이 바뀌어 찾아오는 복불복 여행이 되기 십상이다.

파리에서 트레킹 출발지인 이탈리아 북부도시 코르티나담페초까지는 승용차 최단거리로 1,113km, 비행기를 타더라도 베니스 공항에서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다. 기차를 이용한다 해도 두세 번 환승은 기본이고, 코르티나담페초가 기차역이 없는 동네라 마지막엔 꼭 버스로 접근해야 한다. 환승시간까지 고려하면 16-18시간 걸리는 대장정이다. 장거리 버스를 이용해서 국경을 넘기로 하고 빠리-바젤-베니스를 거쳐 트레킹을 시작하는 산악지역 마을인 코르티나담페초까지 가기로 결정하였다. 두 번의 밤샘버스 그리고도 한 번 더 갈아타야 하고 탑승 시간만 24시간 걸리는 긴 여정이다.

이왕가는 길에 경유하는 도시인 바젤과 베니스를 둘러보기로 하고 파리-바젤 구간 그리고 바젤-베니스 구간은 오버나이트 표, 베니스-코르티나담페초는 낮표를 구매하고 트레킹 시작 이틀 전에 출발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나이에 야간 버스는 애당초 해당사항에 있어서는 안되는 옵션인데 만용을 부렸다. 사단은 여기서부터다. 이십대에나 해야 할 야간버스를 그것도 일주일 산행을 앞두고, 하루도 아니고 이틀 밤이나 연속으로 타고 가는 무모함을 시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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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밤 동안 타고 다녔던 Flixbus, 승객들이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오늘의 사족 1. 이 글은 2018년 8월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역인 돌로미티를 일주일간 트레킹하며 기록한 글이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썼던 여행기를 길목에 다시 연재한다. 2. Life is uncertain, so have your Party NOW! 어디선가 본 문구가 이번 트레킹 기간 내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3. 새벽에 옆자리에 새로운 승객이 타서 자리를 옮기다 손목을 잘못 짚어 삐끗했다. 덕분에 생전 처음 온 스위스 바젤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손목 아대를 산 일이다. 앞으로 트레킹 여정의 고난을 암시하는 듯하여 잠시 우울했으나 보시다시피 아점으로 시킨 피자에 맥주를 곁들여 먹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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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아대, 피자 그리고 맥주

 

4. 내 자리 앞뒤로 다양한 인종들과 조우하여 이제 열 시간 동안 버스 안은 냄새공동체다. 그들도 나에게  향기로움을 기대하지 않겠지만 나 또한 견디기 위해 애쓰기는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종이 풍기는 체취의 스펙트럼 안에서 한국인의 냄새는 페로몬에 가깝다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5. 전체 일정은 2018년 8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흘간이었으며, 이 글은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트레킹을 시작하기 위해 파리에서 버스를 타고 스위스 바젤, 이탈리아 베니스 그리고 트레킹의 출발지인 코르티나담페초까지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하여 썼던 것이다.


#Dolomiti 트레킹 Day -1 (2018년 8월 10일, 금)
바젤, 살면서 이 도시에서 한나절을 보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어젯밤 늦게 파리에서 탔던 버스는 새벽에 바젤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우선 손목 아대가 필요하다. 사람이든 도시든 첫 인상이 중요하다. 버스 터미널이 바젤역과 붙어 있고 고풍스런 바젤역사 안에 있는 약국의 약사는 친절하고 영어로 소통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시큰한 내 손목에 적당한 아대를 골라주었으며, 위로의 웃음을 건네는데 미모까지 갖추었으니..

카페인이 필요하다. 역전 카페에서 그란데 사이즈 커피를 시키고 늘 하던 바대로 검색을 시작했다. 몇 군데 갈만한 곳이 보인다. 대충 루트를 짜고 있는데 옆자리 앉은 친구가 바젤에 왜 왔냐고 묻는다. 이렇게 시작한 대화 덕에 바젤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강으로 가보란다..

강수욕
점점이 강물에 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가? 바젤의 여름은 역시 강수욕이다. 도시를 관통하는 라인강은 폭도 상당, 깊이도 상당.. 아침 열시부터 강변에 보이기 시작하던 젊은 연인, 늙은 연인, 어린 연인, 가족단위 수영객에, 십대 친구들은 무더기로, 때론 우아한 솔로.. 오후에 접어드니 여름 강을 즐기기 위한 시민들이 떼 지어 나오고 해 질 무렵엔 강물위에 마련한 무대에선 밴드 공연까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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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의 시민들은 여름 한철 라인강으로 몰려나와 강수욕을 즐긴다! 강물에 점점이 떠 있는 사람들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오리 가족을 만난 건 강변을 어슬렁거리며 강물 위에 점점이 떠있는 연인들의 물놀이, 사랑놀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여우와 어린왕자가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지..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야생동물들이 사람들을 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동네 한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여기 바젤의 오리들도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가져온 간식거리를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새끼 오리들이 너도나도 몰려와 서로 먹으려고 성황이다. 엄마 오리도 근처를 맴돌 뿐 아기 오리들이 나와 어울리는 걸 말리지 않는다. 따로 몇 조각 떼서 엄마 앞에 던져 주었다. 아마도 바젤 사람들과 오리 사이에는 서로를 친구나 이웃으로 여기는 관계가 형성되었나보다. 오리를 친구로 만든 이곳 사람들의 심성이 급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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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올려놓은 빵조각을 먹기 위해 달려온 새끼 오리들.. 여린 오리 부리의 감촉이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바젤에서 만난 거장들
여기서 퐁텐블로파 작품을 만날 줄이야! 이건 자세히 풀 재주가 없으니 나중에 루브르에 걸려 있는 것하고 비교해서 언제 한번 다시 쓸 일이 있기를 바랄 뿐이고.. 더불어 피카소 할배가 그린 ‘쿠르베 이후 세느 강변 아가씨들’ 앞에서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피 할배가 굳이 쿠르베를 작품명에 언급한 이유가 있을 텐데.. 게다가 말로만 듣던 파울클레 작품까지 보았으니 이만하면 바젤을 알지도 못하면서 경유지로 바젤을 정하고 아침에 도착해서 이 도시에서 도대체 뭘 하면서 한나절을 보낼까 했던 아침녘의 의심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던가 하며 살짝 바젤한테 미안함이 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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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퐁텐블로파, 피카소, 파울클레, 앙리루소의 작품

 

Code name WHITE
이제 다시 버스 타러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걸어서 도시를 둘러본 덕에 도시 지리에 대해 대충 감이 생겼고 이를 의지해 버스 터미널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저 너머 흰색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시간은 남았고 바젤 사람들은 뭐하고 노는지 궁금도 하고 해서 무리 쪽으로 다가 갔다. 족히 이삼백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모두 흰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추고 야외에 차려진 파티장에서 흥겹다. 친구들과 카페 빌려서 이러고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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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바젤 사람들이 야외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다

 

 

오늘의 사족 1. 트레킹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바젤을 걸어서 투어를 했더니 삼만 보나 되었다. 오늘 밤샘 버스 안에선 잘 잘 수 있으려나? 2. 손목은 아대를 둘렀더니 시큰거림이 덜하여 지내기에 불편하진 않다. 이대로 잘 버텨주기만 하면.. 3. 글을 올린 직후 ‘쿠르베 이후 세느 강변 아가씨들’은 피카소의 쿠르베에 대한 오마쥬라는 설명이 금세 댓글로 달렸다.


#Dolomiti 트레킹Day 0 (2018년 8월 11일, 토)
Climb NOW, work later


바젤에서 밤버스를 타고 베니스에 아침에 내렸다. 새벽 베니스는 아직 더위가 시작하기 전이지만 습기를 가득 품은 눅눅함으로 밤새 달려온 피곤함과 겹쳐 개운하지 않다. 당연하게 컨디션은 어제보다 좋을 리 없다. 예전에 베니스 운하 곤돌라에서 어떤 친구가 오솔레미오를 목청껏 부르는 걸 우연히 옆을 지나가던 동기가 듣고 웃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으나 오늘은 저조한 컨디션으로 인해 만사가 흥미롭지 못하다. 더구나 도시를 점령한 듯 밀려들어온 관광객들로 - 물론 나도 그중 하나지만 - 어지럽기 짝이 없다.

어찌어찌하여 버스터미널에서 베니스 시내가 있는 섬으로 들어 왔으나 몰려다니는 관광객 사이에 금세 지쳐 뒷골목 몇 군데 들렀다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여기서 출발지인 코르티나담페초까지는 160km 남짓하나 버스 시간은 세 시간 넘게 잡혀있다. 예상대로 휴가철 토요일 오후 고속도로는 막히고 중간중간 있는 소도시를 들러서 가는 완행스타일에 세 시간에 한 시간을 더하여 겨우 해떨어지기 전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북부 이탈리아 산악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이 모든 걸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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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도착한 코르티나담페초를 산책하면서 풍광에 압도당하다

 


다시 늙어감에 대하여
숙소도 찾았고 이틀 냄새공동체에서 빠져나온 기념으로 시원한 샤워도 하였고 이제부터 본격 동네 탐방 시간이다. 길 양쪽으로 도열한 이백만 년 전 판 충돌로 융기한 산맥을 바라보고 걷자니 이틀 제대로 잠자지 못하였던 것은 별일도 아니다싶다. 벤치에 앉아 석양을 즐기는 은발의 연인을 보고 있으니 문득 혼자 어슬렁거리는 내가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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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은발의 연인들.. 어쩌면 부부일지도..

 

 

산책에서 돌아와 숙소 앞마당 선베드에 누워 동네 가게에서 산 이탈리안 맥주를 마시며 하늘을 보다 든 생각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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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왔으니 이탈리아 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사족 1. 장사는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 체크아웃 하는데 백바지에 흰 티셔츠 입은 숙소 주인장이 3유로를 더 내라는 것이다. 어라! 결제는 이미 웹사이트 통해서 다했다고 했더니, 3유로는 시청이 가져가는 돈이란다. 코르티나담페초 시청, 의문의 일승이다. 인두세를 받는 곳이 여기에도 있다니! 빠리만이 아니라 관광객 많은 도시들은 하는 짓이 거의 비슷하구나 싶었다. 2. Climb Now, work later!! 동네 어슬렁거리다 어느 산악용품점 앞에서 마주친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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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용품점에 붙어 있던 간판 “Climb Now, work later”

 

3.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전에 없던 난리 통을 겪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특히 확진자도 많고 사상자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 연대와 연민의 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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