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의 책 소개 : 다미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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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의 책 소개 : 다미주 이론 | 스티븐 W. 포지스 지음, 노경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코로나 때문에 2주에 한 번 열리던 심심 공부모임도 못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공부모임 단톡방에 노경선 선생님께서 새로운 책을 번역, 출판하셨다는 소식이 올라왔더군요. 앗, 이런 코로나 정국에도 선생님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조용히.... 쭉.... 꾸준히.... 하고 계셨구나, 라는 깨달음(!)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혼자 조용히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사왔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드리려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제목은 "다미주 이론" (스티븐 W. 포지스 박사 지음, 노경선 옮김)이고, 부제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애착과 소통의 신경생물학'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다미주'라니, 이게 뭘까. 이 말이 생소한 게 저 혼자만은 아니겠지요. 영어제목(The Pocket Guide to Polyvagal Theory)을 보고 사전을 찾아보니, '다미주'란 '여러 개의 미주신경'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미주신경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작년 3월, 저희 세종로정신분석연구회의 10주년 기념식에 노경선 선생님께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그 때 들었던 강의가 생각나면서, 선생님께서 이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계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강 기억하는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통의 위험이 닥치면 사람들은 대부분 '싸우거나' '도망'을 가지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때로 '기절하거나', '죽은 듯 가만있기'라는 방어가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어 또한 우리의 몸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적응적인 반응이므로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책에 나와 있네요.

 

60대 후반의 한 여성에게서 자기 경험을 얘기한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10대일 때 어떤 괴한이 그녀를 목 졸라 죽이려 한 후 강간했다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녀는 이 사건을 딸에게 말했는데, 그 때 딸이 “왜 싸우지 않았어요? 그 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더군요. 엄마인 그녀는 당황스러웠으며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당신의 다미주 이론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결백하다는 것을 느끼고 지금 울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p,202)

 

책에는 바로 이 '기절하기'나 '죽은 듯 가만있기'가 어떻게 우리 몸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진화론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부분이 꽤나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우리가 파충류로부터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파충류의 방어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셧다운(부동화 방어체계) 양식입니다. 도마뱀이나 거북이 등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위험이 닥치면, 숨을 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지요. 

파충류로부터 진화해온 포유류에게도 이러한 셧다운 방어체계가 깊이 새겨져 있으나, 자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른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포유류의 방어체계는 기본적으로 싸우기/도망가기(가동화 방어체계)입니다. 위험하지 않다면, 우리는 기능적으로 더 오래된 (파충류의) 방어체계를 억제하고, 가동화 방어체계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셧다운 방어체계로의 전환 같은 신체반응이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 너머에 있는, 반사적이고 자발적이지 않은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책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60세 여성에게 "당신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것은 신경생물학적으로 최고의 적응적 반응이고, 당신의 몸이 당신을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행운입니다. 당신이 싸웠다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책에는 우리가 (신체의) ‘사회참여체계’를 사용하여 타인과 상호교류하고, 사회적 유대를 멪는 것 자체가 성장과 건강, 회복을 돕는다는 내용이 반복하여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참여를 하는데 '안전'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전제조건인지, 또 우리의 신경계가 어떤 조건에서 '안전'을 느끼는지 등을 설명합니다. 긍정적인 운율이 있는 목소리가 신경계를 안정시킨다는 것을 음악과 연결하여 설명하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속으로, ‘내담자들에게 나는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걸까’ 싶어지더군요.

쓰고 보니 '미주신경'에 대해서는 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네요. 미주신경이란 간단히 설명하면 뇌와 신체 내부기관들을 연결하는 통로라고 합니다. 내장에서 느끼는 감각들을 뇌로 전달하고, 뇌에서 운동명령을 내장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2개의 미주신경(셧다운과 관련된 무수미주신경, 포유류의 유수미주신경)이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방어체계와 사회참여체계에 깊이 관여한다구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다미주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들'이라는 부분이 앞에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은 잘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50년 넘게 의알못(의학을 알지 못함)으로 살아온 저의 뇌가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튕겨내는 것을.... 슬프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본문을 읽는데 큰 장애는 없는 것 같으니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2장부터는 주로 포지스 박사와 인터뷰어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여러 내용들이 설명되고, 앞에 나왔던 내용들이 뒤에서 계속 반복되며 확장되는 형식이니까요. 

  

이런 책을 읽으면, 얼마나 사람이 ‘몸’에 기반을 둔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평소에는 내가 주로 ‘머릿 속’에서 사는 것처럼, 혹은 나의 ‘의식’으로 ‘몸’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거든요. 그러나 ‘의식’ 밖에서 나의 신경계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그런 것이 얼마나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 겸손해지는 일이기도 하고 마음 놓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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