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목사 시즌2
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9
아홉: 다양성 있게 좀 살아봅시다!(곰표밀맥주 그리고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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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9일,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발의되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가 처음 시작된 2007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3년을 끌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이번까지 무려 8번이나 발의되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어떤 돌침대는 별이 다섯 개라고 광고하는데, 차별금지법은 무려 8번!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참 좋은 법이 왜 이토록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이번 발의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차별금지법 발의를 주도한 정당은 국회의원이 6명밖에 없는 정의당이다. 그런데 현행법상 발의정족수는 국회의원 10명 이상, 정의당으로선 4명이 부족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부족한 4명을 채우기 위해 다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는데, 마치 시각장애인 심 선생님이 갓난아기 청이의 젖동냥하듯 애절하였도다! 하지만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며 국회에서 무릎 꿇고 쇼를 했던 미래통합당이나 촛불혁명 계승을 자임한다는 더불어민주당 등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문전박대를 하였구나!
국회의원들이 일하지 않는 것이야 한 해 두 해 일이 아니므로 별로 놀랄 것도 아니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토록 꽁무니를 빼는 건 ‘성적지향’. 성 소수자와 약간의 연관성만 있다고 생각되면 도시락 세 개는 싸 들고 다니며 반대하는 개신교 혐오세력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누군가?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 소리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모자라 성 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멀쩡한 목회자를 교회재판에 회부하는 것들이 아니던가? 이렇게 극성스러운 자들이니 지역구에서 표 떨어질까 염려하는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의 ‘차’자만 봐도 꼬리를 빼고 도망쳤던 것이다.
이 답답한 상황을 치켜보다 문득 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한 사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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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1학기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까? 담임 선생님은 유독 조용한 것을 좋아했다. 먼지가 많이 발생한다며 쉬는 시간에도 가급적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문제의 발단은 이러한 선생님의 ‘말씀’에 과잉 복종하는 반장의 행동이었다. 선생님이 시켰다며 쉬는 시간에 우리 모두를 자리에 앉게 한 반장은 이어 모두 책상에 엎드리라 요구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선생님 말씀이라는데’, 다들 숨죽이고 있기를 수일 째.......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친구들 몇몇이 머리를 들곤 옆 친구와 얘기하기를 시도했다. 이에 반장은 교탁에 있던 자를 들고 지나가며 말했다.
고개 숙여! 여기에 머리 닿는 애는 선생님께 다 일러바칠 거야!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통에 갑갑함이 커진 탓이었을까? 탁상용 자, 무언가의 길이를 재는, 일반적 용처와 달리 각종의 체벌 도구로 활용되던 그 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득달같이 달려온 반장은 자로 내 이마를 때린 뒤, 칠판 우측 구석, 떠든 아이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야! 고상균 새마을부장! 임원이 말을 안 들어? 너 선생님께 이를 거야!
생각났다! 4학년 때 난 새마을부장이었다. 지금이야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1980년대에는 그런 신박한(?) 직책이 있었다. 뭐 하는 거냐면? 청소책임자. 새마을 어린이 글짓기대회 참가같이 폼 나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하교 전 분단 별로 돌아가던 청소 순번을 정하고 관리 감독하는 뭐 그딴 거였다. 형식적 선거는 하지만 사실상 성적으로 반장, 부반장이 되던 시절, 고만고만한 학업 성취도를 보였으므로 반장 대상에 오르지 못했던 나는 부장단 중에서도 새마을부장이었던 거다. 뭐 암튼!
반장! 선생님이 정말 자로 때리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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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대들었고, 큼지막한 뿔테 잠자리 안경으로 절반쯤은 가려진 반장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 아래로 고개 숙임 정책’은 조용히 시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어쩌다 던져진 내 질문,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냐’는 문제 제기는 그 이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것이다. 절대 권력의 흔들림에 일순간 학급은 동요했다. 그 뒤 여기저기서 ‘새마을부장 말이 맞다.’ ‘화장실 갈 때도 고개를 숙이고 걸어 나가야 하느냐?’ ‘반장 쟤는 목소리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등등의 민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반장까지 나와 자를 휘둘러도 민주화 투쟁으로 거세게 달아오른 학급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드르륵’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의 굳은 표정을 본 반장은 이내 울음을 터뜨렸고, 이제 당황함은 우리들의 몫이었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 엉엉엉....... 애들이....... 엉엉엉
반장은 마름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 자신은 책임이 없을 뿐 아니라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잠시 반장을 다독인 선생님은 전체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런 느낌 있지 않나? 약속한 것도 아닌데 시선이 한군데로 쏠리는 것....... 친구들의 시선이 갑자기 맨 처음 문제를 제기한 내게 몰렸다.
그게요....... 반장이요....... 자로 애들을 때리고요...... 저도 아팠고요.......
대제사장의 권위에 저항하던 민중이 갑작스레 신을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한국어를 한 사흘밖에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어눌하게 이어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상황을 간명하게 정리하셨다.
반장은 내 분신인데 누가 감히 거역해? 내가 없을 땐 반장이 선생님이야. 그러니 내가 없을 땐 토 달지 말고 반장 말 들어. 알겠어?
나는 그때 느꼈던 것 같다. 권력은 권력의 편이란 것을, 선생님이 의로운 재판관이 되어 줄 거란 기대는 약자의 무력한 희망일 뿐이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4학년 4반 민중항쟁은 이토록 허무하게 진압되어 버렸고, 우린 교장 선생님의 ‘애들이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냐?’는 지적이 있기 전까지 한동안 자 아래에서 숨죽이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학교 현장은 많이 변화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교실 정면 중앙엔 국기가 걸려있다. 국가는 그리 높다랗게 모셔둘 만큼 늘 사랑해야 하는 존재일까?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저항했고, 그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국가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 약속을 지키고 따르는 것은 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규율과 관습에 대한 의문, 혹은 거슬러 행동함은 이 사회를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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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반기, 한국 맥주 업계에서 가장 ‘힙’한 주제는 ‘곰표밀맥주’다.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 상표가 그대로 사용된 외관도 재미있지만, 더욱 신선했던 건 장르다. 대중화된 맥주라인에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서 유럽식 밀 맥주, ‘1664블랑’이라면 더 쉬우시려나? 어떤 이에겐 향긋함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인위적 화장품 냄새 같을 그것 말이다. 맛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라거 일색의 맥주 자본구조에서 다른 결을 내는 시도는 반갑기 그지없다. 게다가 대한제분, CU와 같은 업계 메이저급 간판을 달고 있지만, 맥주를 빚은 것은 세븐브로이라는 크래프트 양조장이다. 2003년 시작한 세븐브로이는 그 걸음 자체가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크래프트 맥주 처음으로 일반 맥주 제조허가를 획득한 세븐브로이는 펍을 넘어 편의점을 포함한 편의점으로 병과 캔 제품을 출시했다. 서울, 경기, 부산 등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있던 크래프트 양조한계를 넘어 강원도 횡성에 생산라인을 구축한 것도 당시엔 놀라운 발상이었다. 2017년, 청와대 공식 건배주로 선택되면서 세븐브로이 뿐 아니라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곰표밀맥주는 이 같은 세븐브로이의 여정, 획일화된 맥주 업계에 ‘신선한 새 길’을 개척해 온 노력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맥주가 다 그렇지 뭐 별거 있어?’, ‘섞어 마시면 다 거기서 거기지.’식의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음주문화에 편승했다면 결코 얻어질 수 없었던 성과다.
곰표밀맥주는 일단 가볍고 향긋하다. 한잔 들이킬 때 곧바로 전해지는 감귤향은 앞서 언급했듯 호불호가 분명하다. 내겐 입안을 채우는 그 향이 재미있다 여겨졌다. 같은 밀 맥주지만 서유럽과 독일 남부지방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바이헨슈페판, 파울라너로 상징되는 남부독일의 밀 맥주는 묵직하게 목구멍까지 밀어붙이는 과일 향과 맛이 일품인 반면, 벨기에, 북프랑스 쪽 밀 맥주는 가볍게 날리는 오렌지나 꽃향기에 더해지는 시큼함과 달짝지근함이 매력적이다. 곰표밀맥주의 맛과 향은 이중 후자에 가깝다. 뭐 솔직히 말해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맥주와 같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토록 개성 있고 신박한 맛을 만원 네 캔으로 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득템이 아닐까? 이게 단순히 신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8월까지의 예상판매량이었던 30만 개가 출시 한 달 만에 모두 소진되었음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겠다. 끈적이는 더위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 지루하게 내리는 비로 축축해진 마음을 산뜻하게 바꿔보고 싶을 때, 만 원 한 장을 들고 편의점으로 가서 곰표밀맥주와 만나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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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표밀맥주가 선풍적 인기를 끌지만, 라거 일색인 세상에서 좀 더 다양한 맛을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 상업적 우주여행과 날아다니는 택시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요즘에도 여전히 종교재판으로 사회적 공공성에 역행할 수 있다 믿는 ‘신앙적 좀비’들이 존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다양성 공존의 세상에 닿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듯 말이다.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제발 유의미한 결과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랬듯, 국회 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표류하거나 주류개신교 등 혐오세력의 입김에 의해 좌초될 가능성은 사실 크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 13년의 세월 동안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점차 변화했고, 청계천 한쪽 구석, 신촌 골목에서 이어지던 퀴어문화축제는 당당히 서울광장에 입성하지 않았는가? 획일화된 세상이 편하다 하는 존재들, 내 어린 시절 쉬는 시간의 고요함이 좋다 여겼던 선생님과 그에 편승한 반장 같은 이들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 계속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신을 포함해 대한민국이 좀 더 다양성 있는 공간이 되게 할 것이다. 종교재판에 선 이, 어렵사리 열 명을 모아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사람들을 응원하며 곰표밀맥주 한 잔!
추신
내용 중 몇 번 언급했지만, 곰표밀맥주의 향에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1664블랑이 편치 않으셨다면 약간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맥주의 세계는 넓으니, 마음의 경계감을 내려놓고 한 잔 해 보시길 권한다.
아 참! 곰표밀맥주는 편의점 중 CU에만 있다. 다른 데 가서 왜 없냐고 연좌시위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