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카메오 19 - <5 to 7> 에드워드 호퍼의 굳어진 자아

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19. <5 to 7> - 에드워드 호퍼의 굳어진 자아

 

 

<5 to 7>. 이 매력적인 애정 영화, 아니 가슴 저미는 이별의 영화는 미국을 죽음의 문화로 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말하자면 사랑을 사랑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기고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틀에 가두어 둔 채 삶을 척박한 고독과 절망으로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인 여주인공 아리엘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며 사랑을 찾아 나선다. 두 아들의 엄마인 그녀에게 가족은 가족이고,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녀의 남편은 더욱 노골적이다. 그는 아내와 친구들의 모임에 자신의 애인을 데려오곤 한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러한 프랑스적인 사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영화는 전반부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아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는 에드워드 호퍼를 만나게 된다. 뉴욕의 거리에서 마주친 에리엘과 작가 지망생인 남자주인공 브라이언은 첫 번째 데이트 장소로 미술관을 찾아간 것이다.

20세기 전반기 미국 도시인의 삶을 고독감과 절망감으로 표현하여 큰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한 명으로도 꼽힌다. 그는 아주 사소하고 흔한 장소에 얼굴 표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그렇기에 극도의 무표정으로 표현되는) 한두 명 정도의 사람을 등장시킨다. 아주 밝고 화려한 자연광 또는 인공조명이 늘 비추어지지만 그 빛은 마치 밀랍인형처럼 굳어있는 인물들과 대조를 이루며 내면적인 소외감으로 파고든다.

그가 표현해낸 이러한 도시인의 고독과 소외는 노먼 메일러의 소설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영향을 주었으며, 추상 미술이 풍미하던 시절에 그가 고집스럽게 부여잡고 있던 단순화된 사실주의는 1970년대의 팝아트와 신사실주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처음 보는 그림이라도 한 눈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가 화폭에 담아낸 분위기는 매우 독특하다. 특별한 대상이나 기묘한 묘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림을 접하는 순간 “헉!”하고 침묵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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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호퍼의 작품에 대해 영화의 여주인공 에리엘은 한층 더 떠서 “죽음과 위협에 관한 그림”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는 남녀주인공이 나란히 서서 호퍼의 두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나는 <Long Leg>(1930)라는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호퍼의 대표작인 <Nighthawks>(1942)이다. 특히 ‘밤샘하는 사람들’로 번역되는 후자의 작품에 대해 에리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두 죽은 사람이에요. 맞은편 가게는 문을 다 닫았고 위층 아파트에는 아무도 안 살아요. 세입자들은 쫓겨났고 건물은 폐허가 됐죠. 이 호퍼란 사람이 미국 화가의 전형인가요? 그렇다면 미국은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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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하는 죽음의 문화는 간단히 말해서 생명감이 없는 문화를 말한다. 생기가 없다는 것이다.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면서 남녀 관계의 질서와 한계를 규정하는 것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에리엘이 주장하고자 하는 생기 있는 사랑의 문화와 에드워드 호퍼의 소외와 고독의 딱 들어맞는 대비라고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 전편에서 에리엘이 자유롭게 호흡하고자 하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로 사랑을 완성하려고 하는 브라이언의 지속적인 어긋남을 적절하게 드러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쓰라린 이별이다. 그런데 그 이별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의 이혼, 브라이언과의 재혼, 아이들의 새 아버지로서의 브라이언을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결심을 했던 에리엘이 다시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어떤 통속적인 얽매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남편과 결혼하면서 약속했던 말 때문이다.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

I will hold your heart more tenderly than my own.

 

이보다 더 적절한 사랑에 대한 정의는 없을 것이다. 한 때의 화려한 유희, 육체적 확인과 쾌락, 서로에 대한 친절과 배려, 삶의 뒤섞임과 얽혀짐, 제도적인 틀과 사회적 공인. 이 모든 것에 앞서서 그리고 그 밑바탕에 두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걸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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