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거리와 존중의 함수
지난 길목인 글을 기고한 이후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년간 코로나로 인해 장기 해외 체류 계획이 무산되었고, 저에게 아주 큰 즐거움을 주었던 취미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제 인생에 예상하지 못했던 큰 변화가 일어나 그에 적응하느라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러느라 간신히 회복했던 몸의 이곳저곳이 또 고장이 나서 수술 및 치료하느라 힘들었고, 정기적으로 바쁘게 하던 일들을 놓게 되어 게으르게 보내다 보니 작은 것에 예민해지고, 긍정적인 것들 보다 부정적인 것들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 9월을 기점으로 다시 바빠지면서, 오히려 바쁜 일상에 감사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난 1년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일들을 통해 느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지 않다는 것,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기호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들이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요즈음 들어 더욱 절실하게 느낍니다. 남들도 다 나와 같이 느낄 거라고, 나와 같이 느끼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 마음에 공감은 해 줄 수 있지 않으냐고, 그런 건 상식 아니냐고,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요구하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것, 그 다름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결국은 받아들여야 하는가, 조금씩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요. 특히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 경우, 그 어려움과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다시 업무에 복귀하여, 가르쳐야 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비대면으로 진행하여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학생들의 마음과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불편하지는 않은지 알아내려고 나름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매 수업이 끝나면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그리고 목이 쉴 정도로, 수업에 저의 100% 이상을 쏟아붓습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마 그러한 저의 노력으로 학생들 일부는 제가 좋은 선생님이라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불현듯, 왜 이런 마음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내지 못할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업을 하는 학생들과 매일 24시간, 일주일 내내 붙어있는 관계라면, 아마 그런 저의 노력과 배려는 불가능할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매일 붙어있는 사람을 한결같이 친절과 애정으로 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해 주는 것이 직업인 정신의학과 의사나 상담하시는 분들에게마저도 매우 힘든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나하고 자주 만나지 않으며 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가장 밑바닥의 모습을 보여주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참 서글펐습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이런 모순에 고통을 받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정말 어느 분 말씀대로, 예수님이나 부처님에 맞먹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존중해주고 참아주는 건 불가능한 걸까요. 결국 누구에게나 관계의 거리와 존중의 함수는 반비례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생각합니다. 비록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만큼까지는 못되어도, 그 반의반이라도 가까운 사람들과 아름답게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바라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면 안 되겠지요. 무수한 연습과 대화, 시행착오, 용서와 화해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도 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편안해질 수 있는 순간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