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림, 아들의 이야기 4. 역사화 읽기

아버지의 그림, 아들의 이야기

4. 역사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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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리 작전>, Oil on canvas, 1982

 

 

작고하신 아버지가 남긴 미술작품을 정리하면서 아들은 흥미로운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찍은 사진이 되겠다. 전쟁기록화인 <진동리 작전>이 그것이다. 한국전쟁 개전 2개월 후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온 인민군은 마산 쪽으로 돌아 부산으로 진격하기 위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였다. 이를 한국군 해병대가 진동리에서 저지하며 승리한 전투로 이후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총반격전을 펼치는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전투였다. 

아버지가 남긴 이 진동리 작전 역사화는 2개의 버전이 있었다. 완성한 작품을 일단 사진으로 찍어서 남겼고, 그 후 최종 납품하기 전에 수정한 것을 사진으로 다시 한번 찍은 것이다. 두 버전에서는 여러 군데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유독 두 부분이 눈에 뜨였다. 군인 한 명이 배낭에 태극기를 꽂고 있는데 첫 사진에는 꾸깃꾸깃 접히고 헤지고 지저분했던 것이 나중 사진에는 새하얗게 세탁되어 빳빳하게 펴져서 휘날리고 있었다. 전쟁터 한복판에 이처럼 깔끔한 깃발이라니!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첫 사진에서는 적 진영에 터진 폭탄으로 그림 상단 쪽이 어둡게 처리되어 전쟁의 비참함이 느껴졌는데, 나중 사진에는 그곳이 환하게 폭죽놀이처럼 되어 있었다. 이런 변화는 그림 제작을 의뢰한 쪽에서 요구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쟁을 몸소 겪으셨던 아버지가 피와 살이 튀고 죽음이 지배하는 전쟁터의 참혹함 대신에 승리의 불꽃놀이를 그려 넣으면서 얼마나 참담함을 느끼셨을까?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는 그렇게 생계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역사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실제 역사가 담긴 것도 아니고, 화가의 시각이나 해석이 담긴 것도 아니고 오로지 권력자의 입맛만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사화는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부친도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역사화를 남겼지만 우리 기억에 새겨진 을지문덕, 강감찬, 권율, 이순신 등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는 모두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되는 역사화를 통해서 각인된 것들이다. 그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쉽게 여기서 헤어날 길이 없다. 우리나라 역사뿐만이 아니다. 서양 역사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도 대부분 역사화를 통해 형성된 것들이다. 이런 시각적 이미지의 영향력은 다른 역사책들을 열심히 읽어대도 결코 쉽게 씻겨나가질 않는다.

역사화는 역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구미에 맞게 역사를 ‘창조하는(또는 왜곡하는)’ 것이다. 역사화를 통해 화폭에 담긴 형상으로 ‘실제’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그런 식으로 그리도록 만든 권력자의 세계관과 욕망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려진’ 형상이 아니라 ‘그린’ 사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너무 궁색한 것 아닌가? ‘실제’ 역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역사 이미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실제’ 역사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미술의 역사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본래 역사란 것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물론 사료라는 객관적 실체가 남아 있고 이것을 근거로 역사를 쓰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사료가 생성되었고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남아 있다는 것만이 객관적일 뿐 그 사료가 실제 역사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사료와는 반대쪽을 가리키는 더 많고 더 정확한 사료가 불행히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면 남겨진 사료를 객관적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역사가들은 이 모든 문제를 고려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인내심과 철저한 검증과 비판적 시간과 판단력으로 실제의 역사를 복원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고 그 결과로 우리는 많은 부분 과거의 역사를 마치 실제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직한 역사가들은 늘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한 조개껍질 하나로 사막의 역사를 해석하려 들기도 한다는 것을. 또는 반대로 너무나 사료가 많아서 사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시점에서 대충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솔직한 역사가는 단 한 문장의 역사를 쓸 때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역사화를 통해서 역사에 ‘접근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어떤 객관적인 실체로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라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접근하는 방법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역사화에 담긴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것이 출발점이다. 그려진 것을 본다는 것은 때론 거기에 마땅히 그려져야 하는데 그려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이 그려지지 않았는가? 이것이 또한 중요한 주춧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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