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cac8d6

Act Ⅹ 노란조끼 10번째 시위: 거리는 텅 비었다. 나는 조바심으로 읽혔다

posted Jan 31, 2021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Act Ⅹ 노란조끼 10번째 시위: 거리는 텅 비었다. 나는 조바심으로 읽혔다

 

 

다시 돌아온 토요일 오후,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개선문 광장을 향하였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한 지난주 9번째 시위 장소인 개선문 광장에 모여든 노란조끼 시위대 위로 터지며 우아한 브라운 운동으로 최루 가스가 퍼져가던 모양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탓일까? 아니면, 파리의 도시 공간을 들먹이며 역사의 축 이야기를 끄적거렸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까? 어쨌든 시위를 조망하러 나서긴 했다지만 어디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할지에 대한 확인도 없이 그저 휘적휘적 나섰다. 샹젤리제 거리에 이르러서야 노란조끼를 입은 시위대는 보이질 않고 관광객들만 오가는 모습을 보곤 나의 아둔함을 탓한다.

그제야 유튜브로 실시간 송출되는 시위대의 영상을 찾아보고 오늘 노란조끼들은 앵발리드 근처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젠 화면에 나오는 거리만 봐도 대충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는 정도의 반쯤의 파리지앵이 되었나 보다. 지난번 이야기한 파리 역사의 축에 루브르박물관과 개선문 사이에 콩코드 광장이 있다. 앵발리드는 콩코드 광장 맞은편에 있다. 따라서 앵발리드를 가려면 개선문 광장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서 콩코드 광장까지 가서 세느강을 건너기만 하면 된다. 오랜만에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이방인 관람객 기분이 되어 보기로 하고 슬슬 걷기 시작하였다.

 

 

텅-빈-가로_resize.jpg

텅 빈 가로, 나는 이 텅 빈 가로에서 프랑스 정부의 조바심을 보았다

 

 

앵발리드(Les invalids, the injured), 부상병 진료를 위해 병원이 세워진 이후 군사 관련 시설들이 근처에 입지하였고, 지금은 군사박물관, 나폴레옹 묘소, 육군 군사학교 그리고 파리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공원 등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앵발리드 역시 파리의 중심에 위치한 상징적 공간이고 남북 방향으로 축이 설정되어 샹젤리제의 동서축과 서로 직각으로 만난다. 오늘 시위대의 위치는 파악되었고 나는 샹젤리제에서 세느강을 건너는 알레산드 3세 다리에서 앵발리드 지구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중간 중간 앵발리드로 향하는 길목 마다 텅 빈 거리만 보이고 세느강 보행로에서 앵발리드로 올라가는 모든 계단은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로 막혀 끝내 나는 시위대와는 조우하지 못하였다. 

 

 

시위-현장으로-가는-모든-길이-봉쇄되다_resize.jpg

세느강변에서 올라가는 다리는 원천 봉쇄 중

 

 

멀리서 최루탄 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앵발리드 근처로 가는 가로에 가까워지자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 접근을 막는다. 몇 군데 시도해 보았으나 한결같이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아마도 단단히 교육들을 받은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세느강변으로 내려와 다른 다리로 우회하여 앵발리드로 접근하려 하였으나 어림없는 수작이다. 개미만 지나다닐 수 있을 뿐이다.

 

 

마크롱은-물러나라_resize.jpg

세느강변 보행로에 우수관으로 보이는 입구에 ‘마크롱은 물러나라’라고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가 씌어있다

 

 

자동차가 사라진 넓은 가로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프랑스 정부가 드디어 시위대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구나. 나 같은 이방인,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도 시위대 근처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여 시위대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방송을 타거나 영상으로 전파되는 걸 두려워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크롱이 직접 나서서 시장들과 대화를 하고 총력을 다해 국가 대토론회(Grand débat national)로 시민의 관심을 돌려놓고자 한다. 어쩌면 대화와 토론으로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자 하는 것이 소위 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공화제와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시비를 걸거나 까탈스럽게 보는 것이 아니다. 애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노력 앞에 마크롱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전제를 달았는데 그게 다름 아니라 부유세 경감에 대한 철회는 없다는 것이다. 대토론회 하자고 해놓고, 모든 사안에 대해 열린 토론을 하자면서 핵심은 양보 못 한다고 미리 선수를 친다면 앙꼬없는 찐빵에 누가 관심을 가지랴.. 나는 다음주 토요일 11번째 시위가 더 과격한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쯤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진정 폭력을 사주하는 자는 누구인가?

 

오늘의 사족 1. 시위대 구호는 간단하다. 마크롱 데미시옹을 2+3 박자로 맞춰 외친다. 2. 집에서 홍차 우려내는데 거름망 집게 안에 들어 있는 찻물을 털어 내는데 나도 모르게 2+3박자로 치고 있었다. 모든 리듬은 중독성이 있구나!

 

김영국-프로필이미지.gif

 


  1. 노란조끼 14번째 시위: 투석전

    노란조끼 14번째 시위 : 투석전 고향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열한 시간 반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공항철도로 서울역까지 그리고 지금은 KTX 안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세수도 하고 밥도 먹고 우연히 서울역 엘리베이터 앞에서 직장동...
    Date2021.05.30 Byadmin Views196
    Read More
  2. 노란조끼 13번째 시위: 불타는 바리케이드

    노란조끼 13번째 시위: 불타는 바리케이드 지금은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보다 한 세대 위는 도리우찌라는 표현을 흔히들 쓰곤 하였다. 물론 일본 강점기에 형사들이 쓰고 다녀 뒷맛이 개운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모자를 쓰고 나름 멋을 부린 사람들도...
    Date2021.05.03 Byadmin Views222
    Read More
  3. 노란 조끼 12번째 시위: 컬렉션의 힘

    노란 조끼 12번째 시위: 컬렉션의 힘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다. 일상의 비루함, 욕망과 허위의식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같은 공간에 있으며 엇갈리는 동선을 배치하여 이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한 영화적 문법에 열광했으나 한때의 열정은 식게 마련이며...
    Date2021.03.31 Byadmin Views186
    Read More
  4. 노란조끼 11번째 시위: 프랑스의 옹졸함을 보다

    노란조끼 11번째 시위: 프랑스의 옹졸함을 보다 2019년 1월 26일 토요일, 열한 번째 노란조끼 시위는 계속된다. 마크롱의 핵심이 빠진 대처와 대중의 외면으로 개혁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여론이 돌아가는 형국을 자기편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Date2021.03.01 Byadmin Views165
    Read More
  5. Act Ⅹ 노란조끼 10번째 시위: 거리는 텅 비었다. 나는 조바심으로 읽혔다

    Act Ⅹ 노란조끼 10번째 시위: 거리는 텅 비었다. 나는 조바심으로 읽혔다 다시 돌아온 토요일 오후,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개선문 광장을 향하였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한 지난주 9번째 시위 장소인 개선문 광장에 모여든 노란조끼 시위대 위로 터지며 우아...
    Date2021.01.31 Byadmin Views175
    Read More
  6. Act Ⅸ 노란조끼 아홉 번째 시위: 여든여섯 살의 레지스땅스

    Act Ⅸ 노란조끼 아홉 번째 시위: 여든여섯 살의 레지스땅스 오랜만에 맡아본 최루가스는 1987년의 기억을 소환한다. 혁명을 통해 공화정을 실현한 나라의 최루가스는 내 기억 속의 최루탄 강도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최루가스임이 분명하다. 눈물, 콧물을 흘...
    Date2020.12.30 Byadmin Views247
    Read More
  7. Act VIII 노란 조끼 여덟 번째 시위: 자본에게 죽음을 요구하다

    Act VIII 노란 조끼 여덟 번째 시위: 자본에게 죽음을 요구하다 그들은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연말 지나고 2019년 첫 주말인 1월 5일 토요일의 8번째 질레죤느(jilets jaunes, 노란 조끼) 시위는 그 규모가 반등하였다. 데모의 영어...
    Date2020.11.30 Byadmin Views216
    Read More
  8. Act VI & VII_노란조끼 여섯번 & 일곱번째 시위 : 그들은 유쾌하고 발칙한 시위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Act VI & VII_노란조끼 여섯번 & 일곱번째 시위 그들은 유쾌하고 발칙한 시위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세상일 치고 강제적인 것이 달콤할 리가 만무하다. 다만 예외적으로 휴식이 강제된다면 이는 받아들일 만 하다. 연말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일주일...
    Date2020.11.01 Byadmin Views215
    Read More
  9. Act V_노란조끼 다섯 번째 시위: 상징적 두 장면

    Act V_노란조끼 다섯 번째 시위: 상징적 두 장면 2018년 12월 15일 노란조끼 5번째 시위가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졌다. 지난주 마크롱 대통령의 특별담화 이후 처음 맞이하는 토요일의 시위 양상은 이전 시위와 비교하여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시...
    Date2020.09.29 Byadmin Views200
    Read More
  10. Act IV_노란조끼 네번째 시위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Act IV_노란조끼 네번째 시위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노란 조끼(Gilet Jaune, Yellow Vest)에 관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형광색 노란 조끼는 프랑스 운전자라면 누구나 차량에 비치하고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입어야 하는 법률적 규제 사항...
    Date2020.08.28 Byadmin Views22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
위로